[가족 Ⅲ] 격정(激情)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했던가? 최근 이 말이 무색하리만큼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TV 뉴스를 켜면 ‘친딸 성폭행’, ‘부친 살해 후 암매장’, ‘보험금 노린 아내 살해’ 등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끔찍한 일들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성적 노예로 전락시킨 아버지는 가족사에 참견 말라며 으름장을 내밀고, 패륜 범죄를 저지른 아들조차 부모의 권위의식과 몰이해를 이유로 대며 책임을 회피한다. 물론 이 같은 반인륜적 범죄는 극소수이기는 하나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철저한 자기중심주의가 확대되면서 인륜과 천륜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발생하는 범죄가 말 그대로 급증(急增)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소연(가명) 양은 현재 아버지를 피해 청소년보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 양은 초등학교 시절 누구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다고 회상하며 이내 말을 잇지 못한다. 어머니가 친척집에 머무르는 사이 아버지는 김 양에게 재미있는 비디오를 함께 보자며 거실로 불렀다. 평소 아버지를 잘 따르던 김 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디오를 보기에 이른다. 지금이야 그 비디오가 ‘포르노’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 10살이던 김 양이 내용을 알 수 없을 터. 재미없는 내용에 자리를 뜨려 하자 아버지는 김 양에게 “재미없으면 똑같이 따라해 보자”며 김 양을 안방으로 데리고 갔다. 김 양은 “당시 아버지가 절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절 예뻐해 주시는 줄만 알았죠...”라고 말을 흐렸다.
이후로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외출할 때면 함께 놀자며 안방으로 김 양을 불렀고, 이 지옥 같은 경험은 그녀가 이 사실을 깨닫고 집을 나온 중학교 3학년에 일단락 됐다. 어머니가 알게 됐지만, 김 양의 어머니는 ‘집안 망한다’며 사실 덮기에 급급했다고. 집을 나온 이후 김 양은 아버지는 물론이고 자신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어머니와도 연락을 끊은 상태다.
한편 지난 2012년 12월에는 친딸을 상습 성폭행한 ‘인면수심’ 아버지에게 징역 11년이 선고됐다.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죄(13세미만 미성년자강간,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으로 기소된 조모(50) 씨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조 씨는 2008년 부인이 성관계를 거부하자 초등생인 10대 딸을 성폭행하는 등 2010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앞서 2012년 9월에는 조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킨 혐의를 받고 있는 50대 남성에게 검찰이 구속기소와 함께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했다. 수원 지방검찰청 평택지청 형사제2부는 7년 동안 어린 조카를 성폭행, 임신까지 시킨 혐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로 이모(58) 씨를 구속기소하고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2005년 9월부터 2012년 7월까지 함께 거주하고 있는 15살 조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 임신까지 시켜 출산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입건된 오빠 2명은 현재 군복무 중으로, 군 검찰에서 수사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한다. 사건을 접한 트위터 아이디 good3***는 “세상이 미쳐간다. 가족의 탈을 쓴 악마”라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고, 아이디 zld***은 “가족들이 몰랐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딸 키우는 입장에서 엄마 아닌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믿지 말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된 사회가 슬프다”라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동·청소년 성폭행범 5명 중 1명은 ‘친족’
친족에 의한 성(性)범죄가 극히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동·청소년 성폭행범 5명 중 1명은 친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강제추행을 포함한 전체 성범죄의 절반이 ‘아는 사람’의 범행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2012년 12월 5일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신상정보 등록대상 성범죄자 1682명의 범죄 동향 분석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분석에 따르면 성폭행의 경우 가족·친척 등 친족에 의한 범행은 19.3%로 집계됐다.
사랑하는 딸, 조카를 두고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친족은 일종의 ‘병’을 앓고 있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애정 결핍인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 아내의 가출과 이혼, 가정불화, 실직 등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경우 아이를 성적으로 정복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성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을 때에도 딸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피해 아동들에게 자신의 범행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면서 상습적인 범행을 저지르기를 반복한다.
전문가들은 이 가해자들이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한다. 박승희 성균관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는 이들이 만드는 질환 중 하나가 바로 친족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박 교수는 “가족의 고립화, 축소, 해체의 가속화로 인해 가정 내 성폭력을 감시하는 사회적인 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기 때문에 친족 간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개인의 고립화가 심화될수록 성욕으로 도배되는 성적충동 역시 가속화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피해자 대다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성폭행이 시작될 때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피해자들은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의 성폭행에 반항하거나 주변에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들은 ‘엄마에게 말하면 죽인다’ ‘누가 알면 우리 가정은 끝장난다’ 등의 협박을 자행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가족 붕괴’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게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게 된다.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의 성폭행에 침묵하는 것은 이러한 두려움 때문이다.
앞선 김 양의 얘기처럼 남편의 범행을 알면서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침묵하는 엄마들도 더러 있다. 이들은 딸이 도움을 요청하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면 딸은 어머니나 가족들의 묵인 아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친족 성폭행 사건의 경우 대부분 가족들의 회유로 신고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진상조사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무엇보다 친족 간 아동 성폭행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고가 일어난 즉시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뒤늦게 고소한 가족들에 대해서는 가중 처벌하는 등 관련 처벌도 강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아버지 살해·암매장…통장 돈 유흥비로 탕진
2012년 12월 17일 오후 2시 친부 살해 및 암매장한 사건의 현장검증이 열린 대전 서구 장안동의 한 펜션.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 김모(33) 씨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른 체구와 초췌한 얼굴의 김 씨가 모습을 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이웃 주민과 피해자 지인들은 반인륜적 사건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현하면서도 아들의 잔혹함에 혀를 내둘렀다.
김 씨의 전 범행과정을 지켜본 한 주민은 “당혹스럽다. 같은 동네에서 아들이 친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다니 세상이 무섭다”며 “주민들도 언론을 통해서 범행사실을 접하고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지켜보던 다른 주민도 “어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 있느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다니 끔찍한 일이다”고 성토했다.
김 씨는 지난 9월 28일 오후 8시쯤 서구 장안동 자택에서 아버지(65)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자택 인근에 파묻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범행은 ‘갑자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첩보와 신고를 받은 경찰의 약 한 달간 내사 끝에 범행을 자백하게 됐다. 김 씨는 경찰에서 “내 생활 문제로 평소 꾸지람을 많이 하던 아버지가 이날도 심하게 질책해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한편 장태산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김 씨의 부친은 수십억 원대의 자산가로, 김 씨는 숨진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유흥비 1,000만 원을 탕진했다. 그는 현장검증에서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말에 “아버지께 죄송하다. 용서를 빈다”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자리를 옮겼다.
한편 전북 전주시에서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잠적한 30대 한의사가 사흘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2012년 10월 30일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의 한 수입고기도매센터 앞에 주차된 1t 트럭 적재함에 앉아있는 한의사 김모(34) 씨를 현장에서 붙잡았다. 김 씨는 10월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의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57)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잠적, 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김 씨는 검거된 뒤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악마가 시킨 일이다. 악마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을 자기는 지켜봤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4년 전 한의원을 개업했다가 폐업을 한 뒤 어머니와 잦은 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성이 메말라가고 있는 우리사회 반영
최근 5년간 패륜범죄자는 10만 명을 넘어서고 존속살해건수는 증가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9월 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강기윤 의원(새누리당)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 8월말까지 5년간 친족 대상 패륜 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인원은 총 10만 2,948명으로 집계됐다. 범죄유형별로 살펴보면 살인 1,191명, 강도 145명, 강간·강제추행 1,790명, 절도 2,602명, 폭력 7만 5,880명, 지능(사기·횡령·배임·통화위조 등) 8,021명, 기타 1만 3,319명으로 나타났다. 친족 대상 범죄 가운데 범행 대상에 있어 그 죄질이 무겁다고 보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존속 대상 범죄 중 존속 살해는 2008년 45건에서 2009년 58건, 2010년 66건, 2011년 68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도 8월까지 33건의 존속 살해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고,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8년 4.0%, 2009년 4.2%, 지난해 5.3%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미국(2%), 프랑스(2.8%), 영국(1%) 등 선진국과 비교해 훨씬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살아있는 한국에서 친족을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인륜적 범죄가 극성을 부리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질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와 가족 해체 현상’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족 간의 소통이 부족해지면서 상대방에 대한 화나 섭섭함을 참지 못하고 가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면서 “가족의 기능과 의미보다는 물질이 더 중요해진 현실을 반영한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욕심과 철저한 자기중심주의가 인륜과 천륜을 무시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패륜 범죄가 증가한다는 것은 가족 안에서 개인이 파편화되고 인간성이 메말라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가족 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경찰이나 공공기관이 가정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 하지 않는 점도 패륜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패륜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가족 간에 지속적인 대화와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패륜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과 경찰과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도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회 규범마저 악화하는 시점에서 패륜범죄를 없애기 위한 인간성 회복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할 터. 이에 나보다 가족을 아꼈던 전통적인 가족 사랑을 되살리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