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끌어온 미궁에 빠진 사건
15년을 끌어온 미궁에 빠진 사건
  • 류성호 기자
  • 승인 2013.01.28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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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은 죄책감도 없이 웃으며 살고 있다”
[이슈메이커=류성호 기자]

[Mystery Murder] 이태원 살인사건

 

 

하얀 세면대 위에 새빨간 선혈이 색의 대비를 이루며 흘러내려간다. 22년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억울한 것인지 눈을 감지 못한 주검이 선혈의 주인임을 나타내고 있다. 유력한 용의자는 말조차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 푸른 눈의 미국인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주검의 한을 풀지 못하고 허무하게 15년 세월이 흘러버렸다. 풀지 못한 미스터리 15년 전의 진범은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한국으로의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

 

22살 청년의 억울한 죽음

지난 199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태원 살인사건’, 1997년 4월 8일 밤 10시경 서울 홍익대 조중필(22세)씨가 이태원의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목과 가슴 등을 흉기로 9차례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력한 용의자들은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었고, 서로 범행사실을 회피하며 검찰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접어드는 듯 했다. 검찰은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 그를 살해혐의로 기소했다. 더불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아더 패터슨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해 재판을 진행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리는 2년에 걸친 재판에도 불구 증거불충분으로 1999년 무죄판결을 받았고, 이후 ‘이태원살인사건’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사회적 여론이 들끓자 검찰은 재수사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2010년 11월 재수사 끝에 아더 패터슨이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미 그는 미국으로 도피한 상황이었고 더 이상의 상황진전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2012년 10월 23일 미국의 LA연방법원이 한국 검찰이 청구한 패터슨의 범죄인 인도청구에 송환을 결정지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997년 사건 발생 이후 공소시효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시효가 완성되더라도 재수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패터슨이 출국한 1999년 8월 이후 시효가 정지됐기 때문에 시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번 패터슨을 송환하더라도 검찰이 유죄 입증의 부담 등이 작용해 살인죄의 성립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이 예상된다. 한국법상 무죄추정의 법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검찰은 패터슨의 유죄의 입증책임을 지고 있으며 당시 수사기관의 조사가 중구난망이었던 점과 1, 2심에서 살인죄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가 다시 법정에 출두할 것인지 문제가 있다. 또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1999년 선고된 에드워드 리의 무죄가 패터슨의 유죄를 증명하는데 법원의 판결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진범으로 지목된 패터슨은 누구인가

1997년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조 씨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당시 화장실에 들어간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 국적 소지자로 에드워드 리는 재미교포였고, 패터슨은 주한미군 아버지를 따라온 상황이었다. 한국 검찰이 수사할 당시 리와 패터슨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미군 CID(범죄수사대)는 패터슨이 범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알려줬다. 당시 증인들도 대부분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한 상태였다. 그 바탕에는 그가 히스패닉 갱단인 ‘노르테 14’의 조직원이라는 증거가 한몫했다. 노르테 14는 LA와 북부 캘리포니아 일대의 유명한 폭력조직이다. 보통 조직원 한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10여 명 이상이 복수를 하는 이 조직에게 마약, 인신매매, 총기밀매 등은 주 수입원이었으며, 살인은 통과의례일 뿐이다. 때문에 미군 CID도 패터슨을 감시 중이었다.

CID의 수사관들은 뒤에서 상대를 급습한 뒤에 목이나 가슴을 흉기로 순식간에 가격하는 ‘노르테 14’의 범행수법이 사건 현장과 동일한 것을 알아냈다. 또한 패터슨이 사건 발생 전후에 대마초와 LSD를 복용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법의학자인 데이비드 특별수사관은 몸에 피가 묻은 형태를 기초로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한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검찰이 리의 수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패터슨은 징역 1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살다 특별사면은 받고 미국으로 떠났다. 반면 에드워드 리는 유족에게 사죄하고 피해자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조 씨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2011년 남겼다. 그 편지의 주된 내용은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미국 검찰에 제출하고 법정에서 증언하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당시 패터슨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며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 조중필을 죽였다고 자랑하듯이 다녔다”고 전했다. 패터슨은 살인을 자랑삼아 얘기하며 흉내까지 낼 정도로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표현했다. 패터슨은 범죄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한국 정부에 처벌받을 것은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한국 정부를 조롱하며 “한국은 아무것도 할수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검찰의 요청으로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LA에서 검거돼 캘리포니아주 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며 한국 송환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패터슨의 수감 사실은 국내는 5개월이 지난 10월경이었으나, 이때 미 법무부는 패터슨이 갇혀 있는 구치소와 재판이 진행 중인 법원의 소재지, 담당 판사 등에 대해서 공개하지 않았다. 이때 당시 미 재판부가 패터슨의 국내 송환을 결정하는 데만 보통 3∼4년 이상 걸리고 절차를 모두 끝내고 국내로 송환한다 하더라도 검찰이 사건을 재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그의 살인죄 공소시효 문제가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패터슨은 구속된 이후 3차례나 보석 신청을 청구했지만 미국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송환명령이 내려지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최근 송환명령이 내려졌다. 송환명령 소식을 접한 트위터 아이디 ‘@free*****’는 “이태원살인사건의 용의자 아더 패터슨이 미국법원이 국내로 송환 명령을 내렸다내요”라며 “정말 늦었지만 다행인 일입니다. 이번에는 꼭 고인의 한을 풀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아이디 ‘@cu*****’는 “검찰 분들 저번처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풀어주는 뻘짓 마시고 이번엔 확실히 범죄를 입증해서 억울한 한 청년의 한을 풀어주세요 반드시”라고 호소했다.

 

 

한 가족을 파멸로 내몬 살인사건

15년이란 세월은 한 가족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아직도 막내아들이 죽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어머니 이복수씨(69)는 하루 빨리 패터슨이 한국으로 송환돼 법의 심판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녀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 벌을 받아야 끝나는 거죠.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정말 억울하게 하늘나라로 간 우리 중필이 한을 풀어주고, 아직까지 죽은 아들 붙잡고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았으니 끝이 난 게 아니잖아요” 막내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뒤, 이 씨는 하루도 마음 편히 누워본 적이 없다. 게다가 범인을 눈앞에서 놓치고, 풀어주고, 결국에는 아무도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머니를 더욱 분하고 서럽게 만들었다. 이어 “지금도 그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온몸이 덜덜 떨려요.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서럽고, 어떤 말로도 제 마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거예요. 가슴에 굉장히 무거운 덩어리를 얹어놓고 사는 기분이었어요. 요즘도 자주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곤 해요”라고 전했다. 경찰의 전화가 걸려 왔을때 “다른 사람에게 잘못 연락한 거 아니냐”라고 되물었던 어머니였다. 언제나 순하고 착했던 아들이 한밤중에 칼에 찔려 영안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제대로 중필이를 보지도 못했어요. 사람들이 아버지만 들어가서 보고 저는 가지 말라고 하도 말려서요. 아홉 곳이나 칼에 찔렸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다들 못 보게 했겠어요. 사실 제 눈으로 확인하면 믿고 싶지 않아도 사실이 될까봐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 얼굴이라도 만져볼 걸 그랬다는 생각에 후회가 돼요”라고 전했다. 위로 세 명의 딸을 가진 그녀에게 막내인 조 씨는 귀한 아들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전부다 걸어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아들을 잃어버린 그녀는 한줌의 재로 사라졌다. 조 씨의 어머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존재였고 항상 웃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가족들 중심에서도 항상 재간둥이였던 조 씨를 잃고 집안에는 웃음이 없어졌다. 가족들은 15년을 눈물 속에서 지내고 있다.

15년 전 수사를 담당했던 김락규 금천경찰서 강력팀장은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니 15년 전 사건의 안타까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빨리 패터슨이 송환돼 한국 법정에 서길 바란다”고 전했다.

 

송환 결정에도 불구, 아직 갈 길은 멀다

2012년 10월 23일 법무부에 따르면 미국 LA 연방법원은 한국 검찰이 청구한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에 대해 1년여의 심리 끝에 송환키로 전날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환까지는 장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법원 캘리포니아 중앙지방형사법원의 마이클 윌너 치안판사는 2012년 10월 31일 패터슨을 한국으로 송환해도 된다는 결정문을 연방 검찰과 패터슨 변호인에게 각각 통보했다. 결정문의 요지는 패터슨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개연성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윌너 판사는 한국검찰의 수사 자료를 토대로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할 정황이 있다는 것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공소시효의 문제에 대해 미국 법원은 결정을 회피하며 송환 결정이 내려졌지만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패터슨은 결정에 불복해 조만간 법원에 인신보호신청을 낼 예정이다. 송환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별도의 재판부가 맡는 인신보호신청 심리도 결론이 나려면 대개 1년가량 걸린다. 또 법원이 인신보호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패터슨은 연방 항소법원에 이에 대한 항소를 제기할 수 있다.

항소마저 기각돼도 미국 연방 국무부 장관의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 송환이 성사된다. 미국의 국무부는 대체로 미국 시민을 다른 나라 사법부에 넘기는 송환을 꺼린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자국민의 신병을 넘기는 데 소극적인 미국 법원이 범죄인 인도재판에서 한국 송환을 결정한 것은 패터슨의 살인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둔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한국의 외교적인 역량이 더욱이 절실해 지는 시점이다. 법무부 조상준 국제형사과장은 “미국 법원이 우리나라 검찰의 증거들을 상당부분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15년 전에 해결되지 못하고 미궁으로 접어든 이태원 살인사건이 최근 패터슨의 송환 결정에 힘입어 다시 재조명 되고 있다. 2009년 당시 영화 ‘이태원살인사건’에 떠밀려 수사를 재개했던 검찰이 이번에 어떤 형태로 진범임을 규명해낼 수 있을까? 억울하게 숨진 조 씨의 원한을 이번에는 풀어줄 수 있을지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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