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앓고 있는 대한민국
우울증 앓고 있는 대한민국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5.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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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6명중 1명 ‘정신질환’...병원 치료는 기피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Zoom In] 정신건강의 날 특집

주부 김성주(32·가명)씨는 작년 10월 자택에서 자살을 시도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심한 우울증이라는 병원 진단이 나왔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속내를 털어놓을 가까운 친구도 없었고, 가족조차 김씨의 고민상대가 되지 못했다. 혼자 망상에 잠겨 ‘환청’에 시달리고 충동적인 생각에 곧잘 빠지는 그녀를 도와주거나 상담해줄 사람은 주변에 전혀 없었다. 이는 비단 김씨의 얘기가 아니라 자살 수렁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의 얘기다. 독일·덴마크·오스트리아 등 OECD 대다수 국가는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간 자살률이 30% 이상 크게 떨어졌지만, 한국은 오히려 같은 기간 자살률이 153%나 늘어 우울한 대한민국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2년 2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6명 가운데 1명이 최근 1년 사이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4명 가운데 1명은 평생 1차례 이상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조사됐다. 알코올과 니코틴 사용 장애를 제외하면 10명 중 1명(전체 인구의 10.2%)꼴이 최근 1년 간 정신질환에 걸린 적이 있는 것으로 집게된 것이다. 정신질환 경험자 중 여성은 19.5%로 남성의 9.2%에 견줘 2배 정도 수준이고, 우울증, 불안 등 기분장애와 같은 정신장애는 주로 여성이, 담배나 알코올 중독 같은 정신장애는 주로 남성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평생 한번이라도 정신질환을 앓은 비율은 5년 전인 2006년의 12.6%에 견줘 1.8%포인트 높아졌다.
정신질환과 연계해 평생 한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해 봤다는 비율은 15.6%로 이들 응답자의 3.3%는 자살을 계획해 본 적이 있으며 3.2%는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하겠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해 본 비율은 3.7%로 나타났으며, 0.3%는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를 근거로 한해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국내에서 모두 10만 8천명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자살을 생각해 보거나 시도한 사람들은 정신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았는데, 자살 생각을 한 경우 57%가, 자살 시도를 한 경우는 75%가 1개 이상의 정신장애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우울증·자살 급증
그렇다면, 우리사회에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우울증과 자살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광복 후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빈부격차, 경쟁 심화 등이 많은 국민들을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10년간 IMF금융위기,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사회에 충격파를 던진 초대형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실직자, 미취업자 등 소외·빈곤계층이 급격히 불어났고 그들 중 정신질환자가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도 급격한 서구화 과정에서 자살률이 증가했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높아지는 것이 문제”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서울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조맹제 교수는 “우리나라가 지난 60여 년 동안 압축·고도성장 하면서 사회적으로 취약 계층이 많이 늘었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크게 부족하다”며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빈곤층과 노년층 등 소외 계층을 감싸 안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임정수 교수는 “특히 노인들은 연금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간병이나 보험 등 질병관리 시스템도 미비하기 때문에 생활고(苦)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낙오자를 감싸 안지 않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냉혹한 무한경쟁 사회로 변해가는 것도 자살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초·중·고교생은 극심한 입시·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대학생들과 대졸자들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취직해서도 직장 내에서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낙오하면 패자가 되고, 재기(再起)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차가운 사회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자살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자살 문제가 심각한데도 미약한 예방 시스템은 미약한 실정이다. 자살 예방을 위해 범정부적인 노력을 하는 일본의 지난해 자살 예방 예산은 기금을 포함해 234억 엔(약 3,334억 원)이었지만, 올해 우리나라 자살 예방 예산은 23억 원에 불과하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자살이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낮아 예산 심의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낙인(烙印)’은 병을 악화시키는 주범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불안장애 등을 앓는 정신질환자 7명 중 한 명(15.3%)만이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와 상담을 하거나 병·의원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방식으로 조사한 미국의 2010년 정신의료서비스 이용 비율 39.2%와 비교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우리나라 정신질환자 대부분이 혼자 끙끙 앓다가 자살 시도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병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포털사이트 정신카페에서 만난 아이디 babod***는 “겉으로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죽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며 “상담을 해보고 싶지만, 정신과에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 회사를 다니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이디 fly1***도 “정신질환의 소견이 있는 지인이 보험가입에서 거절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 암이나, 성인병이 많아졌는데 보험가입을 거절당하느니 우울증 정도는 참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해 작은 불씨로 곳간을 태우는 격인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의 진료거부 현상에 대해 사회적 ‘낙인’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하면 ‘미친놈’ 혹은 ‘정신병자’로 취급받는다. 이들은 민간 보험에 가입하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질환자가 병의원 진료를 기피하거나 마치 죄인처럼 몰래 쉬쉬하며 다니기 일쑤다. 조선대 심리학과 김형수 교수는 “한국인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을 알리기 꺼려한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회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높다는 인식도 이 같은 ‘낙인 효과’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2000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백서'에 따르면 교통범죄를 제외한 일반인의 범죄율은 2.5%, 정신질환자는 1.8%로 조사됐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그들이 제대로 된 정신의료서비스를 받아 질병에서 조기에 회복하는 데 최대 방해 요인”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들은 치료만 잘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고려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함병주 교수는 “정신질환 치료제 복용에 대한 주변의 편견과 이해 부족으로 (환자들이)약물 복용을 꺼리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매우 많아 ‘정신질환은 잘 낫지 않는다’는 오해를 부른다”고 말했다. 건국대병원 하지현 교수도 “정신질환은 이제 고혈압·당뇨병처럼 누구나 한번은 앓을 수 있는 신체 질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정신질환을) 외면하고 자꾸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만 하면 정신질환을 더 크게 키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정신과 관련 치료를 받는다는 데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는데, 이것을 전환시키는 것은 전 국민적 과제일 것”이라며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그 뒤로도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단위 정신보건센터 이용 권장
정부는 정신이상 가능성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영·유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진을 확대하고, 직장건강검진에 정신질환을 포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각 지자체에서도 ‘정신보건센터’를 운영하는 등 정신질환 치료와 자살 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정신보건센터’는 전국단위로 이용 가능하고, 24시간 운용된다는 점에서 이용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각 지역별로 마련돼 있는 ‘정신건강센터’는 일반적인 정신질환 상담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관(내부시설)들을 마련하고 있다. 정신보건센터는 지역주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목표로 시도별 보건소나 시청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부서가 나뉘어져 있는데, 대표적인 부서가 자살예방센터이다. 자살예방센터에는 실제로 우울증이나 여러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 걸려오는데 청소년은 물론 주부, 직장인이나 초등학생에게 까지 상담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센터에서 상담을 받아 많은 도움이 됐다는 박희진(가명·24)씨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우울증을 겪게 됐다. 처음에는 내게 우울증이 왔다는 것도, 또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공황에 빠져있다는 것 자체도 너무 창피하고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어 답답했다”며 “우연히 정신건강센터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처음엔 이용을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담을 받은 지금은 ‘왜 진작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너무 홀가분하다”고 전했다.
정신건강센터는 대표전화 1577-0199로 전화하면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24시간 상담이 가능하다. 센터의 상담원은 대화를 하며 피상담자의 자살 징후와 우울증의 정도를 판단하고, 파악된 내용은 지역 보건소나 센터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주변의 여러 여건상 방문이 망설여진다면 인터넷으로 익명 상담이나 자가 테스트를 이용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직접 정신보건센터에 방문하면 더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와 재활훈련이 이어진다”며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을 조성해 미술치료·인지치료 등을 실시하고, 산책을 하는 등의 부담스럽지 않은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용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 6명 가운데 1명이 겪었다는 정신질환과 이에 비례하는 자살률. 그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부의 관심과 정신질환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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