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제도에 땀 흘리는 서민들
낡은 제도에 땀 흘리는 서민들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6.09.05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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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전기료 누진제


낡은 제도에 땀 흘리는 서민들

 

 


늘어나는 전기료, 떨어지는 발전 단가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여름으로 기록됐던 1994년 8월. 당시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도심 속 ‘노숙 피서 족’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후 두 번째로 무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2016년 여름은 어느 때보다 많은 노숙 피서 족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이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22년 전과 달리 많은 가정과 사무실에 에어컨을 비롯한 냉방용품이 보급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 반영 못한 ‘전기료 누진제’

대전광역시에 거주 중인 직장인 김모 씨. 김 씨는 최근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더위와 싸우고 있는 처가 어르신들 때문. 무더운 날씨에도 전기료 폭탄의 우려 때문에 거실 한쪽에 고이 모셔둘 수밖에 없는 낡은 스탠드형 에어컨이 사위 입장에서 큰 골치라고 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신형 에어컨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에어컨을 가동하자니 다음 달 청구될 전기료 부담에 이마저도 저극 권해드릴 수 없는 상황. 여기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으며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일반 가정에서 전기를 아껴 쓰고, 형편이 어려운 서민층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도입된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기 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이 최대 11배 차이가 나는 전기요금 누진제가 에어컨 등 가전제품이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현재의 전력 소비 패턴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규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합리적으로 적절하게 에어컨을 사용하면 전기료 폭탄을 맞지 않는다"며 “도시에 사는 4인 가구가 벽걸이형 에어컨(소비전력 0.8kW, 냉방면적 22.8㎡ 기준)을 하루 3시간 30분 틀면 전기요금이 한 달 5만 3,000원에서 8만 원으로 늘어나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산업부 장관 집무실부터 하루 3시간만 에어컨 틀고 지내봐라’, ‘전기료 폭탄 걱정 때문에 갓난아이가 있어도 에어컨을 못 켜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비난 여론이 인터넷 등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의 손양훈 교수는 “요즘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가면 추울 정도로 냉방을 하는 반면, 가정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며 “70년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가옥 구조가 대부분 아파트로 변하면서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의 가전제품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제도는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MBC 뉴스 캡쳐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새 기준 필요

당초 누진제는 과도한 전력 소비를 줄이면서 전기 소비량이 적은 저소득층 가구의 전기료 부담을 낮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인데,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반 서민 가정집과 그 집에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가장 큰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손양훈 교수는 “누진제 1단계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력이 있는 1인 가구나 비상주가구인 경우도 많다”며 “이제는 누진율을 고쳐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부 김남일 박사는 ‘에너지 취약계층’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하며 “그동안 극빈층과 저소득층을 에너지 복지 대상이라고 봤지만, 폭염주의보가 지속되고 있는 최근에는 노약자, 아이들도 에너지 복지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 취약층을 포용할 수 있는 전기료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최재철 기후변화대사는 “폭염에 대한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왔다”며 “1년에 한 달 가까이 30도가 넘는 상태가 지속이 되는 상황에서 전기료 누진제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갈피 못 잡는 정부에 시민들은 땀 뻘뻘

지난 2011년 9월 15일. 대한민국 국민을 큰 혼란에 빠뜨렸던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사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은 이후 5년간 ‘전력 부족’이라는 인식을 되새기며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이 사건 이후 한국전력은 전력공급예비율(최대 전력 수요량 대비 비축하고 있는 예비전력의 비율)을 20%까지 늘리기에 이르렀고, 5차례에 걸쳐 매번 4~5%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서 국제 유가를 비롯해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 전기 생산 단가도 크게 낮아졌다는 것. 한전은 올해 상반기(1~6월) 매출 28조 9,608억원, 영업이익 6조 3,098억원을 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8% 급증했다. 영업이익률은 20.4%로 거래소 상장기업 평균이익률(5%)의 4배를 넘는다. 현재 한전은 발전소 자회사로부터 전기를 사와 가정과 산업체 등에 독점적으로 전기를 되팔고 있다. 따라서 전기를 싸게 들여와 비싸게 팔면 한전의 경영 실적은 호전되지만, 그 부담은 국민이 져야 하는 것이다. 한전이 수익성을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한전은 늘어난 이익으로 에너지 신산업에 투자하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올해 초 열린 기업공개(IR) 컨퍼런스 콜에서 “에너지 신산업 투자를 산업부와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라며 “주로 (해외보다) 국내에 에너지전력장치(ESS), 태양광 산업 등에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거세게 일자 산자부는 문제점을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누진제로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어떤 구조로 피해를 보고 있는지부터 파악할 예정”이라고 뒤늦게 해명하면서도 “불과 몇 달 전 재계에서 산업용 전기료 인하 요구마저 있었던 상황에서 결정이 쉽지 않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해결될 문제”라고 덧붙였다.
 

  국민을 위한 제도로 출발한 전기료 누진제. 당초 의도에서 어긋나며 여론에 뭇매를 맞고 있는 정부. 한시 완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땜빵용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누진제인지, 또 무엇을 위한 누진제인지 정부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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