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영국 재건의 중책 맡은 경제 엘리트 총리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영국 재건의 중책 맡은 경제 엘리트 총리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2.11.14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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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최연소’, ‘최대’의 수식어가 익숙한 영국 지도자 탄생
통합 외치며 영국 명성 되찾아나가다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영국 재건의 중책 맡은 경제 엘리트 총리
 
정치와 경제 모두가 초유의 혼란에 빠진 영국의 새 총리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지난달 25일 57대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취임 당일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한 수낵 총리는 찰스 3세가 승인한 첫 총리로 본격적인 행보를 펼쳐나가고 있다. 영국의 첫 비(非)백인이자 최연소 총리, 그리고 영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총리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는 그의 활약에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www.flickr.com, Number
리시 수낵 영국 총리ⓒ www.flickr.com, Number

 

첫 비(非)백인의 영국 총리 탄생
전임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감세 정책의 대실패로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는 등 영국이 세계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은 데다 막대한 부채 등 구조적 위기가 여전한 영국. 지금 영국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혼란의 시대를 빛으로 이끌어줄 능력 있는 지도자다. 영국을 어두운 터널에서 구원해줄 적임자로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정치인이 낙점된 것이다. 2015년 총선에서 리치먼드 선거구의 국회의원 당선이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던 리시 수낵(이하 수낵) 총리이기에 짧은 정치 경력임에도 총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배경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수낵 총리는 1980년생으로 현재 나이 42세다. 햄프셔주 사우샘프턴에서 인도 펀자브인 힌두교도와 동아프리카계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종교 역시 힌두교다. 그동안 영국 총리 자리는 간혹 유대인에게 돌아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앵글로색슨족이 선출되었기에, 수낵의 총리 취임은 대단히 이례적인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윈체스터 칼리지에서 수학한 그는 스퍼드 링컨 칼리지에서 PPE를 공부,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경제 엘리트다. 졸업 이후 골드만 삭스에서 근무했으며, 후에는 헤지 펀드 회사인 아동투자자금운용(The Children's Investment Fund Management)에서 동업자로 근무했다. 앞서 언급했던 2015년 총선에서 리치먼드 선거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보수당 소속으로 2019년 7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새지드 재비드(Sajid Javid) 장관 밑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대표 인물로 이름을 알린 그는 당선 전까지 영국의 재무장관으로 활동해왔다.
 
 
지난달 25일 영국의 새 총리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57대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www.flickr.com, Number
지난달 25일 영국의 새 총리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57대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www.flickr.com, Number

 

총리 취임은 반전의 드라마
수낵 총리는 재무장관으로 활동할 당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치며 많은 지지층을 확보했고, 부양책으로 발생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법인세율 인상을 추진하는 등 발 빠른 후속 조치로 재무장관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게이트’ 당시에도 내각 중 가장 먼저 사퇴하며 총리와 맞서기도 했는데, 이러한 그의 행동은 영국 의원들의 연쇄 사퇴의 도화선이 돼 존슨 전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이후 영향력을 높여나갔지만, 그가 영국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서리라는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리즈 트러스 당시 외무장관과 맞붙었었지만 패배했었다.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선된 트러스 전 총리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감세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역풍을 맞으며 취임 44일 만에 사임 의사를 밝히게 됐고, 이때 수낵 전 장관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수낵 전 장관이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 단독으로 후보를 등록했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영국의 의원내각제 시스템에 따라 트러스 전 총리의 전격 사임 이후 4일 만에 수낵이 총리자리에 올라섰다. 당시 수낵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영국은 위대한 국가이지만 엄청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경제를 바로잡고 보수당은 통합시키겠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순더 카트왈라 영국미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년 전은 물론이고 10년 전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일상생활과 정치영역에서의 변화”라며 “아마도 영국의 직업생활에서 광범위한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열린 리시 수낵 총리의 첫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제가 이끄는 정부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빚을 우리 아이와 손주 등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www.flickr.com, Number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열린 리시 수낵 총리의 첫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제가 이끄는 정부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빚을 우리 아이와 손주 등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www.flickr.com, Number

 

75년 만에 뒤바뀐 운명
수낵 총리의 취임에 전 세계의 인도인들이 환호하고 있다.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로 있었던 인도의 입장에서 그 후손이 식민모국의 총리가 된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최대 영자 일간지인 인디아 타임스는 ‘자랑스러운 힌두교도 리시 수낵이 영국 총리가 되다’라는 기사를 대서특필했고, NDTV는 ‘인도 아들이 제국을 정복했다’는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수낵이 영국의 차기 총리로 결정되자 자신의 트위터에 “수낵이 영국 총리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리의 역사적 관계를 현대적 파트너십으로 변환하고 있다. 인도와 영국을 잇는 ‘살아있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인도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의 프리티 간디 역시 트위터에 “수낵이 영국의 첫 인도계 힌두교도 총리가 되는 역사를 썼다. 75년 만에 형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느냐”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이 밖에도 인도의 사업가 마노즈 가그는 “수년간 우리를 지배했던 나라가 이제 인도계 총리를 갖게 된 것은 인도의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전했고, ‘브리티시 퓨처’의 이사 선더 카트왈라 소장은 “(인도계 영국 총리 탄생은) 최근 수십 년간 영국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인도의 거리가 축제 현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로이터가 전하기도 했다. 로이터는 힌두교의 축제인 ‘디왈리(Diwali)’를 즐기는 인파들이 인도의 뉴델리 거리에서 런던 서부의 쇼핑 거리에 이르기까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고 전했다. 올해는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지 75년이 되는 해이며, 수낵의 취임 전날인 10월 24일은 인도 최대축제인 디왈리가 열리는 날이었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감세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역풍을 맞으며 취임 44일 만에 사임 의사를 밝히게 됐고, 그녀의 전격 사임 이후 4일 만에 수낵이 총리자리에 올라섰다. ⓒ www.flickr.com, Number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감세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역풍을 맞으며 취임 44일 만에 사임 의사를 밝히게 됐고, 그녀의 전격 사임 이후 4일 만에 수낵이 총리자리에 올라섰다. ⓒ www.flickr.com, Number

 

암호화폐 산업으로부터의 환영
수낵 총리의 취임에 블록체인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수낵 총리가 암호화폐 지지론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미 코인텔레그래프 등 블록체인 매체들은 수낵이 총리로 지명됐을 때부터 암호화폐 산업에 희소식이 될 것임을 예상했다. 이안 테일러 크립토UK 이사는 가상자산 전문 미디어인 코인데스크에 “(수낵의 총리 취임은) 암호화폐와 일반경제에 모두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그동안의 영국 총리들에 비해 젊은 나이의 총리이기에 신산업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과거 재무장관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을 정도로 암호화폐 산업의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수낵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 개혁안을 내놓을 당시 “영국을 암호화폐 자산과 기술을 글로벌 허브로 만드는 것이 나의 야망”이라며 “기업이 영국에 투자하고 혁신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영국 금융 산업이 항상 기술과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도록 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또한 영국 금융 산업의 미래가 가상자산에 있다고 믿고 있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법안 처리와 제안에 지지를 표명하는 등 암호화폐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영국 내에서 리시 수낵 총리가 보리스 존슨 전 총리보다 안정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www.flickr.com, Number
영국 내에서 리시 수낵 총리가 보리스 존슨 전 총리보다 안정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www.flickr.com, Number

 

실용적인 경제 노선, 양날의 검
지난달 26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앞에서 열린 수낵의 첫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제가 이끄는 정부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빚을 우리 아이와 손주 등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감세안으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44일 만에 사임한 트러스 전 총리가 남긴 후유증부터 수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수낵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경제 안정과 신뢰 회복’을 내세웠다. 영국 내에서도 그가 트러스 전 총리보다 실용적이고, 존슨 전 총리보다 안정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모아지고 있다. 다만 짧은 정치 경력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정치적 역량은 그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전문가들은 그가 보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경제 노선을 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재무장관 시절에도 이 같은 모습이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횡재세(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법인이나 자연인에 대하여 그 초과분에 보통소득세 외에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소득세)를 공개적으로 반대했었지만, 일반 가정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과세를 허용할 수 있다며 노선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 대목이 그의 정치적 이미지에 양날의 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환경 정책에 대해서도 2045년까지 영국이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셰일가스 추출과 함께 풍력과 태양광, 원자력 발전 등에 공을 들이겠다고 밝혔지만, 새로운 육상 풍력발전을 어렵게 하는 계획을 발표했던 이력이 있고, 지난해 COP26 유엔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외 원조를 삭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용적인 경제 노선을 택하는 그의 행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국방예산 비율의 경우 이전보다 절약한다는 일정한 노선을 보이고 있다.
 
 
리시 수낵 총리는 한때 영국제국(英國帝國)으로 불릴 정도였던 최강국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영국을 재건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www.flickr.com, Number
리시 수낵 총리는 한때 영국제국(英國帝國)으로 불릴 정도였던 최강국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영국을 재건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www.flickr.com, Number

 

영국 재건의 실현 가능성은?
이처럼 수낵 총리는 합리적인 관리자나 실용주의자에 가깝기에 정치적 투쟁에는 적성이 맞지 않을 수 있어 현재의 영국 상황을 해결해나갈 적임자인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영국의 경제문제뿐만이 아니라 보수당의 위기 해소와 2024년에 있을 총선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젊은 리더로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영국 보수당의 위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첫 일성에서 밝혔던 영국 경제를 살리는 일부터 하나씩 해결해나간다면,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오히려 지지층으로 바뀔 것이다. 한때 영국제국(英國帝國)으로 불릴 정도였던 최강국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영국을 재건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수낵 총리. 2016년 브렉시트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는 영국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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