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일본과의 승부 통해 성장하다
한국 야구, 일본과의 승부 통해 성장하다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5.12.31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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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야구 한·일전 명승부의 역사 

숙명의 라이벌, 중요한 승부처마다 맞대결

 

▲ ⓒWBC

 

 

토미 라소다 전(前) LA 다저스 감독이 남긴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라는 명언은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14년 만에 두산이 우승을 차지한 2015 프로야구가 마무리된 후에도 야구팬들은 새봄이 찾아오기까지 야구에 대한 갈증을 호소했다. 하지만 한국 시리즈가 끝난 후 곧이어 개최된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그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주었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일본과 미국을 차례로 꺾고 우승까지 거두며 야구팬의 성원에 화답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숙적 일본을 물리쳤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팀 코리아, 사무라이 재팬에 도전하다

1982년 출범한 국내 프로야구는 간간이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 이후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야구 시즌이 개막하면 경기 결과는 물론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언론을 통해 주목받곤 한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야구를 국민 스포츠라 부르며 이에 열광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이며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야구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추어진 것은 물론,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프로리그도 운영되고 있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들이 유독 국가대표 야구 한·일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며, 선수들 역시 양보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펼치기에 명승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21c에 접어들며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 격차는 많이 줄었지만, 이전까지 국내 야구는 야구 선진국이라 불리었던 일본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었다. 일본은 늘 승자의 자리에 있었고 우리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일본을 목표로 그들과 싸우며 성장했다. 해방 이후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아시아 야구 선수권에서 일본을 만나 전패를 당했으며, 심지어 1959년에는 1-20이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할 정도로 일본에 한국은 적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63년부터 한·일전 야구 역사는 새롭게 쓰이기 시작했다. 그해 아시아 선수권에서 일본을 연달아 물리치고 첫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한국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일본과 우승을 나눠 갖는 라이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은 중요한 야구 국가 대항전의 길목에서 마주치며 숙명의 라이벌로 떠오르며 명승부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 시발점은 1982년 한국에서 열린 27회 세계야구선수권이다. 국내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개최된 이 대회는 그 중요성을 입증하듯 최동원, 김재박, 김시진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프로 진출까지 미뤄가며 참여했다. 나란히 결승에 진출한 두 나라는 당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상황이었기에 더욱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승부가 예고됐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0-2로 뒤지며 8회를 맞이했지만 지금도 회자되고 유명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이어진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순간은 수많은 한·일전 명승부 속에서도 아직까지 단연 으뜸으로 꼽히고 있으며 한국의 승리 아이콘인 ‘약속의 8회’라는 말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일전 명승부는 약속의 8회에 시작된다

약속의 8회는 한·일전 명승부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0-0으로 진행되던 8회 2사 2·3루에서 이승엽의 2타점 2루타가 터지며 한국은 야구에서 첫 올림픽 메달을 따게 된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에는 일본 감독과 선수들의 잦은 망언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의가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올랐다. 대회 1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승엽은 1-2로 뒤지고 있던 8회 역전 2점 홈런을 터트리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이어진 대회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이종범은 0-0으로 팽팽했던 8회 2타점 결승 적시타를 쳐내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한·일전 명승부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예선에서 일본을 물리친 대한민국은 준결승전에서 또다시 일본을 만나게 되었다. 이 경기 역시 승부는 8회에 갈렸다. 올림픽 내내 부진을 거듭했던 이승엽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숨 막히는 2-2 스코어가 이어진 8회 극적인 2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 홈런 이후 부담감에서 벗어난 이승엽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고 ‘국민 타자’라는 애칭과 더불어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애칭도 얻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 경기의 승리를 발판으로 결승에서 아마야구 최강자인 쿠바마저 물리치고 전무후무한 9전 전승의 기록으로 올림픽 첫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세계야구 소프트볼연맹이 주최한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도 한·일전 명승부는 계속됐다. 그간의 경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약속의 8회가 아닌 ‘기적의 9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거들의 불참과 스타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최근 대표팀 구성 중 최약체로 평가됐던 이번 국가대표팀은 우려한 바와 같이 예선 경기에서 일본에 맥없이 무너졌다. 4강에서 다시 만난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9회까지 0-3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으나 9회 기적처럼 터진 이대호의 2타점 역전 적시타로 4-3 승리를 거두었고, 결승에서 미국마저 꺾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더욱이 이번 대회는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야구를 다시금 정식 종목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일정과 심판 배정 등에서 꼼수를 부렸지만 한국이 모든 악재를 모두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이다. 
 

한국이 도전자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던 한·일 야구 국가대항전의 역사는 이제 그 누구보다 뜨거운 라이벌로 끊임없는 명승부를 이어가며 양국 야구 인기와 성장의 촉매제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양국 야구 대표팀은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고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두 나라가 만들어내는 명승부가 자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야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전해주길 한국과 일본의 야구팬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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