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惡人) Ⅲ] 영원한 선(善)도 악(惡)도 없다
[악인(惡人) Ⅲ] 영원한 선(善)도 악(惡)도 없다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5.11.08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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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선과 악의 갈림길 앞에 선 사람들

“악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악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야”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짓을 징계한다는 사자성어인 ‘권선징악(勸善懲惡)’부터 잘못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악인악과(惡因惡果)’까지 악과 관련된 용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란 어렵다. 개인적 견해와 문화차이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악이 선이 될 수 있고 선이 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인이란 정의는 무엇인가?”

 최근 국내 토종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등장인물 ‘둘리’와 ‘고길동’에 대한 상반된 의견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만화에서 둘리와 고길동은 한 집에 살지만 원수지간이라 봐도 무방하다. 빙하기 시절부터 어머니와 헤어져 서울로 오게 된 둘리는 고길동의 아들과 딸인 철수와 영희의 도움으로 고길동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식구가 된 둘리에 대한 고길동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고길동은 둘리를 내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둘리에게 매번 당하고 만다. 당시 만화의 시청자였던 어린 아이들은 둘리를 괴롭히는 고길동이 역으로 골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시청자에게 만화의 주인공인 둘리는 선(善)이었고, 그를 괴롭히는 고길동은 악(惡)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 시청자였던 어린 아이들이 20대 이상의 청년이 되면서 선과 악의 구조가 바뀌었다. 고길동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온 둘리가 가구를 부수고 심지어는 집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이자 시청자들은 고길동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됐다. 최근에는 둘리가 악당이라는 글이 SNS에서 많은 공감수를 받을 정도로 고길동을 착하게 바라보고 있다. 만화 속 등장인물의 선과 악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톰과 제리’ 만화에서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제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톰을 악으로 봤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제리를 악으로 보고 있다. 집에서 쥐가 있으면 당연히 내쫓아야할 고양이의 입장을 시청자들이 이해하게 되면서 매번 당하기만 하는 톰의 편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두 애니메이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악과 선의 기준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14년 9월17일,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간부 4명이 대리운전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새정치연합의 김 현 전 의원과 세월호 유가족 4명은 여의도의 한 음식점 앞 노상에서 대리운전을 하지 않고 떠나려는 대리기사 이모(53)씨를 막고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의원과 유가족들은 대리기사를 폭행해 갈비뼈 골절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에 대중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대리기사를 폭행한 유가족에게 질책을 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자식을 잃은 마음을 이해해야한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법적으로 사건에 연루된 유가족에게 폭행죄가 설립된다. 하지만 대중의 분위기로 형량이 낮춰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건만 바라봤을 때 폭행에 가담한 유가족은 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자식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호 유가족의 심정을 이해하며 그들을 철저한 악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악인

지난 9월 21일에 진행된 서울시 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놓고 공방이 오갔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이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에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해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은 영웅이지 원수가 아니다. 원수라고 규정하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가 잘못된 거지 맥아더 장군을 ‘원수’라고 부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하며 교육현장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을 실현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박 의원은 약 10년 전 진보단체들이 인천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운동을 벌이며 ‘6.25 전쟁 때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범죄자’, ‘한민족을 분단시킨 원수’라고 발언한 것을 지적하며 조 교육감에게 “인천상륙작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맥아더 장군은 영웅이냐 원수인가”라고 질문했다. 
 

박 의원은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여가 교육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시간도 아닌 수학시간에 교사가 ‘100년 전쟁 박정희’라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학생들에게 틀어주며 민족을 이용하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고,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북 지뢰도발 사건에 대해 남한소행일수도 있다는 내용을, 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지리 선생님이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조작이라고 말한 내용 등 이런 것에 대해 제가 교육부에 자료를 요청했다”라며 “교육부에서는 지난 2013년에 진행된 일이고 확인되지 않았다는 답변서만 보내와 사실여부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언론 보도를 인용해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박 의원은 조 교육감의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를 언급해 “조 교육감이 과거 박정희 정부의 공에 대해 ‘평준화’, ‘그린벨트’, ‘의료보험’을 꼽으며 이런 잘한 점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는 공과 과는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며 “국사교과서에도 공과 과가 함께 실려야 한다는 뜻도 되느냐”고 질문했다. 전문가들은 맥아도 장군을 영웅과 원수(怨讐)로 보는 시각의 차이는 악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라고 전했다. 또한, 천안함 폭침사건과 지뢰도발을 남한에서 시행했다고 보는 시선 역시 사건을 바라보는 견해차이 때문에 인해 발생됐다고 설명했다. 인권보호협회의 한 회원은 “국정감사에서 발생된 일에 대해 정확히 누가 잘못했고, 누가 악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이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노인의 범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61세 이상 범죄자는 지난 2014년 15만902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11만1천453명과 비교해 35.4%나 급증한 셈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노인 범죄의 대부분은 성범죄나 경제범죄"라며 "성적인 요구나 경제 욕구는 있는데 기회나 방법이 없으나 성범죄나 경제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령 범죄를 줄이려면 무엇보다 고령 인구가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전문가는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은 범죄자이다. 하지만 그 전에 노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여건이 더 큰 범죄자이다. 증가하는 고령 범죄의 탓을 고령세대에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나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 악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악인인지, 왜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사해보면 견해의 차이가 발생되기 마련이다. 

 

▲선과 악은 견해차이 등의 이유로 달라질 수 있다.

 

 

영원한 선도 악도 없다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2002년 1월 29일에 개최된 연례 일반교서에서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에 대해 ‘악의 축’이라 지칭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악의 축으로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언급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존 볼튼 국무차관이 리비아와 시리아, 쿠바를 악의 축 무리에 추가했다. 이 발언 이후 미국은 2002년 한 해 동안 '악의 축' 국가에 압박을 가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전쟁을 준비하며 이라크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북미 관계도 경색되었다. 결국 2002년 말 북한 핵개발 문제가 터지며 북미 간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불리게 됐던 이란과 북한, 이라크는 13년이 지난 지금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처지가 달라졌다. 이란은 핵 문제를 놓고 협상 파트너로 대접받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난 3월 3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 의회 합동 연설에서 이란과의 핵 협상을 강경 비판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으로 역공했다. 회견에 참여한 잰 샤코스키 하원의원은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이란과의 협상은 2005년 북한처럼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고 했는데 사실은 지난해 이란과의 협상으로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켜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이란과 맺은 공동행동계획(JPOA)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일단 멈추게 했다는 주장이다. 이날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북한 핵 프로그램과 이란은 크게 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에 있어 항상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줬던 미국의 새로운 모습이다. 
 

  한편, 북한에 대한 비판은 미국 조야에서 연일 이어지고 있다. 미국인 억류자를 석방하기 위해 방북한 경험이 있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PBS방송을 통해 “북한은 변화의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현 정권에선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클래퍼 국장은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북한의 KN-08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실전 배치 움직임을 공개하며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악의 축 무리에서 한솥밥을 먹던 북한과 이란이 노선을 달리하게 된 건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깨고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개발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그들은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업적을 이루려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도 이란과 북한의 대접이 달라지는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미국과 이란은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서로 악으로 치부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국제관계가 변화하면서 악의 축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관계가 개선됐다. 현 사회에서 악이란 무수히 존재한다. 절도죄 등의 범죄자부터 직장 상사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악이라는 용어를 붙인다. 중요한건 미국과 이란이 보여주듯 영원한 악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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