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ashion Industry] 패션산업 현황과 과제
[K-Fashion Industry] 패션산업 현황과 과제
  • 오혜지 기자
  • 승인 2015.03.0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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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50년 한국 패션의 뿌리, 창신동 봉제 골목

홀대받는 봉제사, 지속 발전의 근본 흔들려



최근 K-Pop, K-Beauty, K-Food 등을 포함해 IT, 의료 등 국내 다양한 분야의 산업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4대 패션지로 꼽히는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만큼은 아닐지라도 K-Fashion은 요즘 대세이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뉴욕 패션위크-Concept Korea 같은 패션쇼와 각국의 전시회 참가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패션행사에 해외 바이어의 참석률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K-Fashion 시대

  과거에는 칼라거펠트와 도나카란, 장폴고띠에 등 외국 디자이너가 국내 패션 학도들의 롤모델로 꼽히고는 했다. 하지만 우영미와 송지오, 정욱준 등 해외를 무대로 디자인을 선보이는  국내 디자이너들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 패션학도들의 롤 모델로 자국 디자이너가 선호 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패션 행사에서 한국 디자이너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을 만큼 한국 패션 시장은 성장했다. 디자이너들의 활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 가수와 배우 등 유명인들이 한국 브랜드 패션 아이템을 착장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공개되며 해외 소비자들은 K-Fashion에 큰 호감을 느껴왔다. 비단,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만 주목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패션의 메카라고 불리는 동대문 시장의 제품들도 해외 패션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대문 시장은 인근에 평화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등의 전통적인 도매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거평프레야와 밀리오레, 두산타워, 디자이너클럽 등 현대적인 시장을 형성하며 명실공히 국내 대표적인 쇼핑지로 도약했다.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소매 의류 상인들로 불야성을 이루었고 밀리오레와 두타 등의 대형 쇼핑몰은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투어 코스로 자리 잡게 됐다. 

  국내 패션관계자들은 해외 여행객들이 한국 패션 시장에 방문해 국내 패션 아이템을 만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 단계 더 도약해 K-Fashion을 해외에 전파하기 위하여 신진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3월, 2007년 12월에 철거됐던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프라자가 설립되었다. 해당 건축물은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와 지하 공간 개발에 따른 상업 문화 활동 추진, 디자인 산업 지원시설 건립 등 복합 문화 공간 건립을 목적으로 건설된 시설이다. 동대문디자인프라자는 서울모델리스트콘테스트와 국내 대표적인 패션 컬렉션인 패션 위크가 개최되는 등 디자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역량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 및 육성하기 위해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각종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시민디자인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사회문제 해결과 시민들이 공동으로 필요로 하는 디자인 혁신과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동대문 쇼핑몰인 두타가 ‘어너더 월드(Another World)’란 콘셉트로 변화를 꾀하며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물론 디자이너 매장을 기존 60여 개에서 100여 개로 한층 강화했다. 이 외에도 현대홈쇼핑과 동대문 두타의 신진 디자이너 발굴 및 육성 MOU 협약 등 동대문 상권이나 쇼핑몰에서 국내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대폭적인 지지가 계속됐다. 동시에 동대문 일대에서 각종 패션 행사들이 펼쳐지자 다수의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이 거취를 동대문으로 옮겼다. 현재는 이곳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디자이너와 업체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컨템포러리 캐주얼 브랜드인 플랫분앤코와 캐주얼부터 세미 포멀 룩 등 다양한 여성복을 선보이고 있는 루키버드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 flickr/늘봄


사라질 위험의 봉제골목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K-Fashion에 비해 국내 패션시장의 기반을 다져온 창신동 봉제 골목은 외롭기만 하다.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창신 시장 초입부터 낙산공원 삼거리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까지 봉제공장으로 가득한 이곳을 일명 ‘창신동 봉제 골목’이라 부른다. 외관만 보면 서울의 달동네 주택가의 모습이지만, 대다수의 건물 지하와 1층에는 간판 없는 봉제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1960~70년대 동대문 근로자들의 주거공간이었던 창신동은 평화시장에서 운영되던 봉제공장들이 임대료 상승을 피해 옮겨오며 봉제 골목을 형성했다. 의류제조업이 밀집되면서 전성기에는 공장 수가 3000여 곳에 이르기도 했던 창신동 봉제 골목. 이곳은 원단을 떼오는 평화시장과 동대문 상권이 인접해 있어 디자이너가 주문한 옷을 빠르게 만들어 전달 가능해 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소품종 다량생산 방식의 패션 시장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화하며 창신동 봉제 골목에 위기가 찾아왔다. 대다수 봉제공장이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의류 기업 하청업체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시대가 바뀌며 일감이 부족해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다품종 다량생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자라·유니클로 등 해외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브랜드의 등장으로 더욱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은 층의 봉제사 회피 현상도 봉제 골목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현재 창신동 봉재 골목의 평균 연령대는 50~60대이다. 간혹 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마저 외국인 노동자거나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가족의 일원이다. 젊은 일꾼을 확보하기 힘들다 보니, 새로운 패션 사업을 진행하거나 공장의 규모를 키우는 건 언감생심일 뿐이다.

  최근 의류업계에 종사하기를 원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물으면 10명 중, 8명은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봉제사보다 매체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화려한 디자이너란 직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봉제공장의 작업환경도 그들이 봉제사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부분 공장이 사업자등록 없이 낙후되고 좁은 건물에서 운영되며 4대 보험과 같은 근무 여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적은 주문과 잦은 휴업이 지속되다 보니 객공으로 불리는 비상근 근무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객공이란 임시로 고용한 직공이라는 뜻으로 제품 하나에 일정액의 삯을 받거나 일하는 시간과 능력에 따라 삯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얼핏 보면 공장장이 횡포를 부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저렴한 제품생산비용으로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생겨난 환경이다. 이 때문에 시다(보조)에서 시작해 차곡차곡 쌓아온 봉제 실력을 갖춘 봉제기술 장인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3D 업종이라는 사회적인 이미지도 젊은 층들이 봉제사가 되기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실제로, 일 년 내내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정작 일할 때는 하루에 열댓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내는 것이 부지기수다. 

  과거 봉제업계에는 일 년 중, 6월에서 8월을 비수기라 부르고 이른 봄과 가을을 성수기라 말했다. 봄 상품과 가을옷은 다양한 종류와 많은 물량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납품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온종일 작업해도 시간이 모자라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봄과 가을이 짧아져 봄옷과 가을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현저히 적어졌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불황까지 이어지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다수의 사람은 의·식·주 가운데, 의에 해당하는 의복 관련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절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경기 침체로 불리는 요즘에는 봉제 공장의 일감이 그 어느 때보다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 height.tistory.com


장인이 있어야 발전이 가능하다

  한 패션 전문가는 “봉제 기술을 배우려는 인력이 전무한 현실이 계속되다 보면 20~30년 뒤에는 국내에서 숙련된 봉제 실력을 갖춘 인재를 찾기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전통을 무시한 채 발전이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로 K-Fashion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처럼 유명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의 한국 패션의 장을 가꾸는데 일조해온 봉제 산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반평생 혹은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기술력을 갖춘 ‘장인’이 존재해야 한국 패션의 명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탈리아 패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명품을 말할 때 흔히들 이탈리아 장인이라는 단어가 쫓아다닌다. 그 이유는 14세기 화려한 예술과 인문학의 발달을 이룬 후, 창조성과 예술정신, 뛰어난 퀄리티를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온 이탈리아 장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간과 정성을 담아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아이템은 말 그대로 최고의 품질과 희소성을 지니며 ‘명품’이라 불린다. 현재 패션 시장은 장인의 스토리텔링과 역사가 많이 사라지고 대기업을 통해 산업화가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만큼은 예외이다. 여전히 정성을 담아 옛 방식을 고수하며 그만의 스타일로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패션은 더욱 귀하고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도 한 걸음씩 쌓아온 K-Fashion이란 공든 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인에 대한 보호가 불가피한 시점이다.

  봉제공장과 봉제 장인들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 롱런하기 위해서는 단순 OEM 생산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각각의 자체브랜드를 설립하고 창신동의 기술과 동대문 상권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방안의 강구를 이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패기 넘치는 젊은 의류업계 종사자들의 유입이 절실하다. 하지만 화재위험성과 환기가 잘 안 되는 등의 열악한 작업환경은 젊은 사람들 유입에 큰 걸림돌이다. 제2의 도약을 꿈을 꾸기 위해서는 이러한 낙후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에 ‘창신숭인 도시재생선도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사업 단위업무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로인해 봉제산업 침체와 뉴타운 사업 지연으로 주거환경이 악화된 종로구 창신·숭의동 지역의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봉제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디자이너들의 공동 작업장을 제공하고, 디자인 역량 보완 및 경영 선진화, 우수인력 유인을 통해 지역 봉제산업 매출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동대문패션타운의 배후지역인 창신동의 봉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가와 패션 업계 일원들의 손길로 봉제 장인에 대한 대우와 그들의 역사가 보존되기를 바라며 그것을 통해 실현 될 한국만의 맛과 멋이 담긴 패션의 장이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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