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스포츠 백년대계(百年大計)
우려되는 스포츠 백년대계(百年大計)
  • 이희수 기자
  • 승인 2012.08.29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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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 집착에 진정한 스포츠 정신 어디에
[이슈메이커=이희수 기자]

[Elite Sports Ⅱ] 엘리트 스포츠의 현실

 

무더운 열대야 내내 시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는 박태환이나 손연재 등의 유명 선수뿐만 아니라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주목되어 그들의 경기를 즐길 수 있었기에 그 즐거움은 더욱 컸다. 앞으로도 이 즐거움을 계속 될지는 미지수다. 국제 대회에서의 높은 성적을 목표로 우수 실력의 선수들을 키우는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대회 성적과 실적에 집착하게 된 우리 스포츠의 문제의 중심으로 들어가 보자.

 

금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스포츠꿈나무들
탁구스타로 유명한 양영자 선수의 모교인 전북의 모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다. 이 학교에는 탁구부가 있어 감독을 겸하는 체육교사의 지도 아래 매일 훈련 중이다. 이들은 체육관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단체합숙을 하는데 보다 더 나은 실력을 위해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 이 학교 탁구부의 일원인 신나라(18, 가명) 양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고된 연습이 계속된다. 가끔은 대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실력도 있어서 그래도 매일 힘내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 남녕고등학교 레슬링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원 합숙훈련을 하고 있는 남녕고 레슬링부 선수들은 매일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점호를 받은 후 7시 20분까지 새벽훈련에 들어간다.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몸을 만들기 위한 웨이트트레이닝을 거친 뒤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 기술 연마를 위한 본 훈련을 갖는다. 이후 개인 훈련 시간이 끝나면 오후 10시 취침과 함께 하루일과가 마무리된다. 남녕고 레슬링부 배명환 코치는 “타 시·도에 비해 선수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지난 5월 열렸던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체육고등학교 체육대회서 금메달을 포함해 메달 6개를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며 “올해 전국체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소년 선수들이 미래의 금메달리스트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 스포츠계의 실상은 밝진 않다. 성과 및 승부조작 등의 잡음도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생활고 선수들을 지원하자는 ‘양학선법’을 발안한 문대성 국회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박사학위 논문표절 논란으로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그의 논문에 대해 문대성 당선자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국민대학교는 지난 20일 자체 연구윤리위원회 예비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해당 논문을 ‘표절'로 인정했고, 동아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던 문 의원은 당선 후 이 사건으로 새누리당에서 탈당해야 했다. 문대성 의원의 논란과 관련해 익명의 체육 관계자는 “그동안 체육계에서 논문 표절은 공공연한 비밀로 점차 뿌리뽑혀야할 악습의 하나이다”고 피력했다.


국제 대회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 대한민국에는 스포츠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매년마다 성과와 실적에 집착하는 도덕불감증으로 우리 스포츠계는 잡음을 안고 있다. 매년 이뤄지는 소년체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를 대표해 참가한 어린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올림픽처럼 금메달을 획득하기 않으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를 자녀로 두고 있는 학부모 김영희(가명, 45) 씨는 “소년체전이 금메달 획득 위주로 운영돼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도 눈물을 삼켜야할 때가 있다. 금메달을 따는 선수만 훌륭한 선수고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선수인지 교육청에 묻고 싶을 때가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북에 있는 모 대학교의 이다현(25, 가명) 씨는 조교로 일하며 기말시험 채점 시 야구부나 축구부, 레슬링부의 경우 전국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기말고사 성적을 채점한다고 말했다. 즉, 참여한 대회 성과에 따라 학업 성적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다.
2011년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선수들이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선수 4명이 구속되었고, 11명이 영구제명 당했으며, 연관된 선수 1명이 자살하는 등 축구계에 충격을 안겼다. 2011년 8월에는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준호(47) 씨가 전국 남녀 중·고등학교 쇼트트랙 대회에서 다른 코치들과 짜고 종목별 입상선수 명단을 정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승부조작이 지도학생 대학 진학을 위해 이뤄졌고 이를 통해 입상한 학생은 1명에 불과한 점, 직접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은 없는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운동부를 이끄는 코치들도 곤혹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교의 레슬링선수단 김인수(가명, 50) 코치의 경우 대학교 선수단이지만 성과에 따라 그 다음해 지원이 달라지기도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김 코치는 “전국 대회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이듬해 레슬링선수단 관련 예산이 삭감되거나 지원이 현저히 감소되어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스포츠는 단기적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꾸준한 프로그램으로 훈련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며 지금 당장 눈에 띠는 성과만 요구할 게 아니라 체계적인 지원과 보다 양질의 프로그램 또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야구의 경우 팀 성적에 따라 코치들이 받는 대우도 달라진다. 성적에 따라 코치들의 연봉도 동일하게 조정되는 것이다. 지난해 두산의 경우 일괄적으로 코치 연봉이 삭감된 바 있다. 감독은 다년 계약을 보장받고 선수들은 선수협으로 뭉쳐 부조리와 싸우지만 코치들에게는 별다른 보호 장치가 없다. 신분상 1년 계약의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이다. 올해 처음 코치를 맡게 된 김민석(가명, 39) 씨는 “선수 시절, 선수들의 고민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땀 흘리는 그런 코치를 꿈꿨다. 하지만 막상 하고 보니 현실은 좀 달랐다. 가끔은 내가 정치판에 있는 기분까지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건전한 스포츠 정신으로 이뤄져야 할 경기가 스포츠복권과 관련해 조작되어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검찰과 대구지검은 2012년 2월 20일 경기 조작에 가담한 브로커와 일부 선수가 공식적인 스포츠복권인 스포츠토토 배구 상품에도 베팅한 것으로 보고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세트별 승자와 각 세트 점수 차를 맞히는 ‘매치 방식’이나 연속 2경기 최종 세트스코어와 1세트 점수 차를 맞히는 ‘스페셜 더블’ 방식에 돈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 조작 의혹 수사도 진행 중인 검찰은 이날 투수에게 경기 조작을 제안한 브로커 1명을 소환 조사했다.
원광대학교 스포츠과학부 정상훈 교수는 승리지상주의와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현 실태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선진국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우리보다 적었지만 그들이 다수의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그만큼 일본선수단이 기초에 충실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주로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이 ‘양육’되는 프로그램인데, 대회가 있으면 선수들이 ‘메달 따는 기계’로 여겨져 체육인으로서 씁쓸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김도균 교수는 우리 사회에 있어 건전한 스포츠 문화 정착과 유소년, 장애인, 시니어 스포츠를 육성하는 것도 우리 체육계의 최대 숙제라고 밝혔다.

스포츠정신 없는 스포츠 강국에는 미래 없어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후 한국스포츠는 많은 성장을 거쳐 왔다. 초기 런던올림픽에서 복싱, 역도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한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며 종합 4위까지 치솟으며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스포츠가 특정종목 위주로 오랫동안 강세를 보인 원인은 전략적인 메달중심의 작전을 수립하고 메달 획득에 따른 각종 포상책에서 비롯된 점이 크다. 정부는 1960년대 중반 국가대표 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을 만들어 각종 국제대회에 대비해 철저히 전략종목을 중심으로 집중 훈련을 실시했다. 또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등에서 메달을 획득하면 연금을 지급하고 각종 포상금과 병역면제 및 직장 등의 혜택 등 소련, 동독,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운영하던 엘리트 체육과 비슷한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 김학수 소장은 “정부나 대한체육회 관계자 등이 엘리트 스포츠의 최대 목표를 올림픽에서 성적을 올리는 것으로 삼다보니 ‘성적 지상주의’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한국스포츠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메달 편식현상을 탈피하고 메달종목의 외연이 더욱 넓어져야 하며 전반적인 스포츠 문화도 다양하고, 풍부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 이기흥(대한수영연맹회장) 단장은 8월 9일 “일각에서는 생활체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다음 올림픽 때 금메달을 적게 딴다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엘리트 스포츠 육성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체육대학장 김종 교수는 스포츠 강국은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스포츠가 조화를 이뤄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이 삶의 질 향상과 복지증진을 이루는 국가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 등에서의 좋은 성적과 함께 참여스포츠와 관람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이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 증진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강국이 되는 길이다”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런던올림픽 내내 26개 전 종목 경기장을 가득 메운 영국인들의 모습은 현대스포츠에서 대부분의 종목을 태동시킨 높은 스포츠 문화를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경기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참여하는 건전한 스포츠 문화가 정착되어야만 우리 스포츠의 국격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 스포츠에 있어 우리 체육교육에 대한 제언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최의창 교수는 청소년 체육교육에 있어 생활체육 프로그램과 연계해 학교 차원의 체육 수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수로 기억되는 이가 있다. 바로, 역도의 장미란 선수이다. 그녀는 용상 마지막 시기에서 170kg에 실패한 뒤 조용히 바벨에 손 키스를 남겼다. 장미란 선수는 손 키스의 의미에 대해 “은퇴나 작별을 의미한다기보다 그냥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나도 수고 많았지만 바벨도 수고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녀가 국내 스포츠팬들에게 보여준 아름다움이 결과에 대한 집착보다 체육인으로서의 일관된 성숙한 스포츠맨십이라는 점은 우리의 엘리트 스포츠 현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서양 속담을 보면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말이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다. 우리의 스포츠에 대한 진단이 건전한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스포츠정신이 없이 금메달로 무장한 스포츠 강국이 의미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대목이다.


기획/ 안수정 기자 글/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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