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으로 넘보는 인간 신체의 한계
첨단 과학으로 넘보는 인간 신체의 한계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7.12.03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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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첨단 과학으로 넘보는 인간 신체의 한계


스포츠 정신 위배 논란 지속

 

 

 

 

올해 초 인간 한계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벽 가운데 하나인 마라톤 2시간 벽에 도전하는 프로젝트가 육상계의 이슈가 됐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첨단 운동화’를 출시한 것을 계기로 기록 단축 프로젝트 ‘브레이킹 2(Breaking 2)’를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에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해 현재 2시간 2분 57초의 세계기록을 2시간 이내로 줄이겠다던 야심찬 계획은 세계 스포츠계에 ‘기술 도핑(Technology Doping)’ 논란을 다시 불러왔다.


도구와 장비 통한 급격한 기록 향상

나이키는 지난해 기존 운동화에 비해 착지 후 내딛는 힘을 13% 정도 높여주고, 달릴 때의 운동에너지를 4% 절약할 수 있는 신소재 초경량 운동화 개발을 알렸다. 이와 함께 리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엘리우드 킵초게를 비롯한 3명의 정상급 선수를 ‘인간 대표’로 뽑고, 생체역학·생리학·심리학 등 각 분야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전담팀도 꾸려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비공식 경주를 벌인 결과 킵초게가 2시간 25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비록 ‘1시간대 주파’에는 실패했지만 신기록 달성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바스찬 코 회장은 “선수들이 안전하게 운동하면서 부상이 덜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중요시하게 여겨야 할 안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첨단 기술 도입에 사실상 찬성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처럼 기술 도핑이란 스포츠에서 도구나 장비가 기량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의미한다. 수영에서는 용품업체 ‘스피도’가 폴리우레탄을 이용해 물의 저항을 줄인 전신 수영복을 개발한 뒤 한차례 기술 도핑 논란이 불거졌다. 이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2008년에만 108개의 세계 신기록이 경신됐고,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에서도 무려 43개의 세계 기록이 쏟아졌다. 기술 도핑 논란 속에 결국 전신 수영복은 2010년 퇴출당했다. 한편, 발목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남아프리공화국의 장애인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탄소섬유 재질의 스프린터용 의족을 착용하고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를 통해 출전 제한이 부당하다는 결정을 얻어냈지만, 지속적으로 공정성 논란에 휘말려야 했다. 지난해에는 장애인 멀리뛰기 선수 마르쿠스 렘이 의족을 찬 채 리우 올림픽에 나서고자 했지만 IAAF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출전하지 못했다. 
 

  더욱이 첨단 과학 기술은 육체 능력을 높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뇌 전기 자극으로 순발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브레인 도핑’ 기술로까지 발전했다. 운동을 관장하는 두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 자극을 줘 선수의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박성준 문화평론가는 “스포츠는 인간 신체의 탁월성을 겨루는 것이기에 기술이 그 한계를 얼마나 넘어섰는지 판단하는 것이 기술 도핑 여부의 기준이 된다”며 “얼마나 빨리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기록에 대한 도전 정신은 역설적으로 스포츠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엔지니어링’인가, 꼼수인가

나이키의 첨단 운동화에 대해 한 아마추어 육상 선수는 “해당 운동화를 엘리트 선수가 신고 달리면 평지에서도 경사진 내리막을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비약적인 경기력 향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과학자들 역시 용수철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탄력이 향상되기에 ‘기술 도핑’으로 볼 수 있다면서, 공인 경기에서 사용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경기력 향상과 기록 단축을 위한 과학기술과 스포츠의 접목은 훈련과 노력으로 신체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장비나 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인체 능력만으로 경쟁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경제력과 기술이 떨어지는 나라의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명대 스포츠정보기술융합학과의 유상건 교수는 “도핑은 스포츠를 불균등하게 만들어 온 여러 주범 중 하나이다”며 “(스포츠 선진국들이)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허점을 파고드는 신제품 또한 이들 나라에서 여전히 개발·발굴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스포츠 용품업체들과 일부 학자들은 이와 같은 주장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스포츠가 이런 기술들을 수용했기에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육상 트랙이 돌에서 합성고무로, 테니스 라켓이 나무에서 금속으로 각각 재질이 바뀌었듯이 운동화도 마찬가지 추세로 변화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추세 역시 스포츠의 진정성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기술 도입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찰나의 차이로 승부가 판가름 나는 종목이 많은 동계 스포츠의 특성상 내년 2월 개최될 평창 동계올림픽은 새로운 기술 경쟁의 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봅슬레이 선수들은 속도와 가속도를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장비를 기록 단축에 활용한 바 있다. 
 

  과학기술과 스포츠의 접목을 위한 인류의 노력이 관전의 흥미를 더해주는 ‘스포츠 엔지니어링’으로 발전할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꼼수로 변질될지 기술 도핑 논란은 한 동안 체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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