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이 내 삶을 안내한다”
“나의 글이 내 삶을 안내한다”
  • 이희수 기자
  • 승인 2012.08.2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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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 시인의 역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이슈메이커=이희수 기자]

[Focus People] 안도현 시인

“나의 글이 내 삶을 안내한다”

북항, 시인의 역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폭염이 지나가고 이제 선선한 바람이 찾아든다. 별이 빛나는 밤에 우물을 들여다보는 윤동주라는 사내를 추억하고 싶고, 또 백석 시인과 함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나타샤와 흰당나귀와 뛰어놀고 싶은 나날이다. 고즈넉한 공기에 한 그릇의 국밥 같은 시도 간절해진다. 우리는 시 읽기 좋은 날씨를 핑계 삼아 지친 삶에 녹슨 감수성을 꺼내 닦아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눈 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뼛쭈뼛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며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냐 묻던 안도현 시인. 그가 뚝배기 가득 뜨끈한 국물이 넘치는 새 시집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시골역사를 막 나온 기자는 방학 중이라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우석대학교 교정을 거닐었다.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연구실 문을 두드리니 옆집 사는 푸근한 삼촌의 모습으로 반기는 이가 있었다.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주목을 받아온 안도현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부터 지금까지 아홉 권의 시집을 낸 그는 연어를 비롯한 짜장면, 증기기관차 미카 등의 어른을 위한 동화와 동시집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소신 있는 발언을 통해서도 시인과 현실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그의 열 번째 시집과 작품인생을 들어봤다.

 

 

말과 문체를 갱신해가는 끝없는 시적 모험


열 번 째 시집인 ‘북항’을 발표하시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쉼표 또는 침묵을 즐겨 썼습니다. 말을 대폭 줄이고 형식에 보다 치중한 것이지요. 이번에 펴낸 ‘북항’은 또 하나의 굴곡점입니다. 이전에 펴낸 시집 아홉 권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모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북항’이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에서 특별히 말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북항이라는 항구는 부산, 목포, 인천에도 있습니다. 또, ‘북’이라는 글자는 북쪽이라는 방향을 가리키기도 하고 ‘패배’할 때 ‘배’와 ‘배신하다, 달아나다’ 할 때도 ‘북’자가 들어갑니다. ‘북’이라는 글자가 대한민국 사람에게 단순히 방향만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잖아요. 이념도, 눈물도, 원망도 들어가 복잡다단한 북의 상징과 이미지를 섞어봤습니다”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준비 기간이 길었고, 분위기 또한 달라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셨는지요?
“작품 준비 기간이 길어진 것은 두 가지 이유예요. 보통 시집을 2, 3년에 한 번 내는데 이번에는 오 년 정도 걸렸습니다. 1년 정도 시가 안 써질 때가 있었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북항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명징함과 모호함의 경계쯤에 시를 두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이전의 형식을 되풀이하지 않는, 새로운 미적 형식을 추구하다 보니 그만큼 신작 발간도 늦어지게 됐습니다. 현실에 시가 어떻게 대응하고 형식적인 면에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글자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작품을 통한 대중과의 소통에서 중시하는 사항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고 듣고 숨 쉬고 하는 것을 시로 쓰려 합니다. 주로 초등학생 과학책 같은 도감 종류의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도감에는 시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들이 무궁무진합니다. 과학과 시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여 지는데 저는 시인도 과학자와 같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작품을 통해 제가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을 띠었을 때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설득력과 공감을 줄 수 있는지 오랜 시간 고민하곤 합니다. 저를 시인으로 봐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 대중들에게 알려진 시인이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시인’으로 왜곡되기도 하더라고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시만 쓰는 것으로 비춰지기가 쉽죠. 전 안도현은 안도현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수님의 작품 중 하나가 ‘너에게 묻는다’인데, 이 시는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굳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시는 인터넷 상에서 저를 연탄 시인으로 만들어 준 시이죠. ‘너에게 묻는다’를 쓴 건 제가 전교조 해직교사였던 시절입니다. 당시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스스로를 북돋아주기 위해 ‘너에게 묻는다’를 썼었죠. 작품에 등장하는 ‘너’는 독자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말하는 거였어요. 이 시를 읽으신 분들이 나는 그동안 남에게 뜨거운 사람이 못됐다며 반성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웃음)”

 

최근 백석 시인에 대한 작품을 집필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백석 시인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태생인데, 올해로 꼭 탄생 100주년입니다. 제게 있어 올해는 ‘백석학교 개교 100주년’이죠. 백석 시인의 작품은 한국 서정시의 오래된 학교였으니까요. 1980년대에 시인의 작품이 금서 목록으로 지정됐을 때도 당시의 문청들이 알음알음으로 필사를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선 1988년 이후 백석시인의 시가 본격적으로 읽히기 시작했지만 그 분의 삶에 대해선 여전히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아요.  또, 백석 시인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정리한 평전도 없었고요. 그래서 요즘 ‘백석 평전’을 쓰고 있어요. 내년 초에 발간할 예정인데 이미 알려진 것 외에 분단 이전과 이후의 행적까지 정리할 계획입니다.”

 

 

시인과 현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치지 않는 물음


현 정권 관련 시인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치에 대한 이상향은 무엇인지요?
“저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 때 머릿속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민주화된 나라를 만들어 남북이 화해한 통일된 나라를 만드느냐에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시와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어요. 표현의 자유를 교묘히 감시하지 않는 국민을 배려해주는 정치가 진정한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교과부의 도종환 시인 작품 논란 관련 강경 발언으로 화제가 되셨었는데 그 견해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아마 현역 시인들 중 제 작품이 초중고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려 있을 거예요.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고 난 이후에 시인이 정치인이니 그 시를 빼라는 그 논리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나 독자 입장에서 보면 좋은 작품들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데 국가 기관에서 나서서 미리부터 차단시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 시도 다 빼라는 입장을 보였었어요. 교과부 입장에 대한 반대의견을 트위터로 말하고 나니 SNS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도종환 시인을 19대 국회의원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심사를 할 때 추천을 했는데, 심사위원들이 전원 도종환 시인을 모시자고 했어요. 이 분이 시인이기도 하고, 교육운동을 했던 분이라 교육과 문화 쪽에 새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분이라고 봤죠. 전원 만장일치로 추천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도종환 시인에게 시를 못 쓰게 하는 악역을 맡았죠. 도종환 시인은 시인 중에서도 성실하고 날카로워요. 소는 내가 키울 테니까 몸 좀 버려달라고 설득을 했었죠.(웃음)”

 

요즘 교육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교수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저도 교사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이죠. 이게 바뀌지 않으면 학교는 입시를 위한 학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 교과부에서 하는 대학평가라는 것도 있는데 대학의 모든 일들을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계량화해서 예산을 지원합니다. 이런 방식은 대학 길들이기지 제대로 된 대학교육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해요. 교실이 붕괴된다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선생이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걸 가르치려 하지 말고 끝까지 응원해주는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관심’ 통해 누구나 시인이 되는 요술, 사랑


과거에 비해 사람들이 시집을 사는 경향도 없어졌고 내면보다는 외면에 많이 치중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중들이 시라는 작품을 많이 접하진 않습니다. 워낙 영상 등의 감각적인 매체들이 많이 발달한 것도 있죠. 그러나 시라는 분야가 죽진 않을 것 같아요. 노래나 드라마, 영화 등이 유행을 하는 것은 그 시간이 있지만 시는 생명력이 오래 가죠. 그게 시의 힘이지만 시를 공부하듯이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를 읽으며 새롭게 발견된 것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백일장 심사위원으로도 자주 활동하시고 계십니다. 학생들의 단어사용 등에 있어 가끔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대개 남의 글을 읽지 않고 표현부터 하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글이라는 것은 ‘똥’같은 거예요. 좋은 똥을 누려면 좋은 음식을 먹어야 똥의 질이 좋아지거든요.(웃음)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일단 똥부터 누려고 하는 것처럼 일단 쓰기부터 하려는 게 있어요. 무작정 쓰기부터 하게 되면 글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그냥 겉멋만 부리려 애쓴 글이 나오기가 쉬워요. 그런 점에서 좋은 글을 자주 읽고 고른 글을 쓰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학생들에게 사랑을 해보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고요?
“가장 좋은 게 남녀 간의 연애 감정입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나에게 오는 애인이 특별해 보이는 것처럼 사물을 연애하듯이 바라보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거든요. 써야할 게 가령 나무라면 내가 사랑하는 감정을 가져야 뿌리는 어떤 모양이고, 줄기는 어떤 무늬를 지녔으며 이파리는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관심을 갖고 쓸 수 있어요.”

 

사회가 많이 강퍅해지다보니 현실에 힘들어하는 후배 시인 분들도 계실 텐데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업 작가 생활을 8년 동안 해봤습니다. 그 시기에는 글을 쓴다고 해서 바로 밥이 되진 않아도 힘들지만 그 즐거움이 있었어요. 힘들기만 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도 없을 겁니다. 내가 글을 쓰면 그 글이 내 인생을 안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쓴 글에서 멀리 도망을 못 가는 거죠. 그것도 글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인데 후배 분들이 그 점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습니다.”

 

향후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내년 초에 동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평생 시를 쓰며 살아왔지만 동시를 쓴 건 불과 2년 전의 일이예요. 2010년에 첫 동시집 ‘냠냠’을 냈어요. 내가 한번 제대로 써 보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무엇보다 시의 영역에서 동시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서서 동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동료 시인들에게도 동시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동시집 외에도 앞서 말한 백석 평전도 준비 중이고요.”

 

읍내 시장 해장국집 간이의자에 마주 앉으면 막걸리 한 주전자를 척 시킬 것 같은 삼촌의 모습이지만 인터뷰 내내 안도현 교수의 눈은 현실에 대한 통찰로 날카롭게 빛났다. 기자는 안 교수의 열 번 째 시집, 북항의 표지를 찬찬히 살폈다. 군더더기의 꾸밈없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현실과 시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묻던 그의 우직한 성품이 엿보였다. 그 안에 고요히 들어앉은 시들은 안 교수의 지치지 않는 물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다. 그의 시가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대담/안수정 기자 정리/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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