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한반도 운전자론’, 성공 방정식은?
시험대 오른 ‘한반도 운전자론’, 성공 방정식은?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7.11.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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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Cover Story]동북아 외교 ‘슈퍼위크’


 

시험대 오른 ‘한반도 운전자론’, 성공 방정식은?

닻 올린 ‘신(新)남방정책’과 변수로 남은 북핵 위협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분수령이던 ‘정상외교 슈퍼위크’가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를 옥죄는 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까지 7박8일 간의 쉴 틈 없는 강행군을 펼쳤다. 정부의 ‘균형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 발전 관계’를 약속한 점은 소기의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안보 분야에선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는 엇갈린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한·중 관계 급속 해빙, 안보는 ‘글쎄’


APEC 정상회의 기간인 지난 11월 11일 오후(현지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이 개최됐다. 지난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 직전 베를린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 이후 넉 달 만의 대면이었다. 회담 분위기는 냉기가 가득했던 4개월 전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당시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경색된 양국 관계를 대변했던 시진핑 주석은 이날은 밝은 미소로 마주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당초 예정보다 20분을 더해 모두 50분간 대화를 나눈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사드(THAAD) 갈등을 마무리하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 복원을 공식화했다. 시 주석은 “양국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관건적 시기’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회동이 앞으로 양국관계 발전, 한반도 문제 협력에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국에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화답하며 “한·중 관계가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양측이 함께 노력하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틀 뒤 ASEAN 정상회의가 열린 필리핀에서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도 회담을 열어 양국 간 실질적인 협력 관계를 회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순방 과정에서 중국 권력 서열 1·2위를 잇달아 만나 관계개선 의지를 확인하면서 양국 교류는 다시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관광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기업의 대표는 “그동안 정치적 영향으로 어려운 시장 환경에 놓여야했지만, 두 나라 정상이 관계 복원을 선언한 만큼 관련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며 환영의 입장을 표했다.

  
하지만 안보와 관련되어 일각에선 양측이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부분에는 의견을 같이 했지만,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배제된 채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12월 베이징에서 열릴 세 번째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숭실대학교 법학과 전삼현 교수는 “한중관계는 이제 물꼬를 튼 셈이며, 본격적인 관계정상화는 12월의 한·중 정상회담이 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톨이’ 전락한 트럼프, 중국 승리로 끝난 G2 외교


이번 APEC 정상회의의 주요 관심사는 미국과 나머지 회원국들의 통상 문제와 관련된 치열한 신경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보호주의적 양자무역 우선 정책을 강하게 제시했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고 우리나라에는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을 요구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며 다자주의를 통한 협력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자유무역주의와 역행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APEC 회원국 정상들은 ‘새로운 역동성 창조, 함께 하는 미래 만들기’라는 비전의 ‘다낭 선언문’을 채택하며 보호무역 조치를 동결하고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기존 약속을 재확인했다. 이는 지난 G20 정상회의 선언문보다 한층 진보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반대하던 미국 측은 ‘시장 왜곡적 보조금 폐지’ 등 다자무역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항목을 선언문에 포함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미국의 탈퇴로 좌초 위기에 몰렸던 TPP 논의도 진전됐다. 11개국 TPP 당사국들은 ‘핵심 요소’에 합의했다면서, 미국 없이 다자 무역협정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민족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머쓱한 입장이 된 모양새다. 필리핀 드라살대 정치학과 리처드 자바드 헤이다리안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남긴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에 미국이 이 지역에서 수십 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혹평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3개국 방문과 APEC 정상회의 행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대체로 ‘중국의 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에 집착했다면, 시진핑 주석은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고 포용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 주석이 APEC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국제사회 리더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빠진 아시아’가 중국 주도로 순항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실제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에 제동을 걸어 구체적 추진 계획 마련을 무산시켰다. 시 주석은 그동안 공들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연내 타결에도 실패했다. 아울러 필리핀과 베트남과 같은 ASEAN 회원국들이 미국을 이용한 중국 견제에 나서며 등거리 외교를 강화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 공간 확장’ 성과 속 한계도 절감


‘슈퍼파워’ 미국과 중국 양국이 치열한 패권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순방 기간 ‘신(新)남방정책’을 통해 동북아에 묶인 외교적 활로를 뚫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순방을 마친 뒤 필리핀에서 동포 간담회를 열어 “그동안 대한민국 외교가 미·일·중·러 4대국 중심이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순방으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4대국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더 긴밀히 협력해 가기로 했다”면서 다자 안보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다졌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외교 다변화도 결국 ‘우회로’일 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이희옥 교수는 한 칼럼에서 “(미·중 관계의 성격이 변하면서) 미국과 중국 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경쟁적으로 주목하고 있지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며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의 상관성을 만들 전략적 지혜와 다자주의를 창의적으로 제시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북한이 대화와 도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역시 중국과 미국 어느 한쪽으로 쏠릴 위험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슈퍼위크에서 관련 핵심국 정상들은 대북정책의 이견을 좁히는데 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기간동안 고강도 위협 발언을 자제했고,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큰 틀의 결론을 내렸다. 북한 역시 메가톤급 전략도발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자성남 UN주재 북한 대사가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에게 서신을 보내 미군의 전략폭격기 출격훈련을 비판하며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위협하는 등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은 여전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외교전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도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향후 미·중 간 알력 다툼의 무대가 한반도가 될 수도 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한반도 운전자론’을 실현하기 위한 더욱 정교한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열강의 틈바구니 속 우리 정부가 그 힘에 짓눌리지 않고 어떤 지혜로운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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