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 잠재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
극우세력 잠재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7.06.0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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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Cover Story]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극우세력 잠재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

분열 속 중도택한 프랑스, 새로운 역사의 시작점에 서다

 

 

 

 

 

프랑스 국민은 새 대통령으로 좌도 우도 아닌 중도를 표방한 만 39세의 정치 신예를 선택했다. 5월 7일, 프랑스 전역에서 치러진 대통령 대선 결선투표에서 제25대 대통령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당선됐다. 프랑스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의 마크롱 후보는 대선 결선투표에서 유효 투표의 66.06%를 얻어 33.94% 득표에 그친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32.12%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선출직 경험이 전혀 없는 그는 창당 1년 남짓 된 신생 정당을 기반으로 단숨에 대권 도전에 나서 승리를 거머쥐는 이변을 연출했다.


 

제25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미뉘엘 마크롱


프랑스의 새 대통령에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선출됐다. 그동안 프랑스 정치를 이끌어온 양대 축인 공화당과 사회당이 아니라, 불과 1년 전 창당해 국회에 의석이 하나도 없는 신당의 젊은 대표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프랑스 내무부의 잠정 집계 발표에 따르면 마크롱은 전날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에서 유효투표의 66.06%를 얻어 마린 르펜(33.94%) 전 국민전선 당수를 32.12% 차로 따돌렸다. 앞서 결선투표를 이틀 앞두고 집계된 다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24∼26%포인트 차 승리 전망을 뛰어넘는 압승이었다. 비록 상당수 좌파 유권자가 르펜의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에게 표를 던졌지만, 마크롱의 예상 밖 압도적인 승리는 이번 대선의 승자가 유럽과 단일통화 및 자유경제 수호자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결선투표의 유권자는 4,700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등록 유권자 가운데 11.5%는 백지나 훼손된 표와 같은 무효표를 던졌고 25.38%는 기권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세계화, 이주, 문화 다원주의, 유럽 통합을 반대하며 국수주의를 선동한 극우 포퓰리즘이 강세를 보여 유럽 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극우 포퓰리즘 세력인 마린 르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분열 위기에 놓일 수 있었던 유럽사회는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은 5월 7일 밤, 수천 명의 지지자가 운집한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 모습을 드러내 “오늘 밤 프랑스가 승리했다”는 당선 인사를 밝혔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당선이 확정된 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크롱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를 알지 못한 것이다. 앞으로 애정을 갖고 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그는 “두려움에 굴하지 않겠다, 분열에 굴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뒤 “프랑스인이 극단주의를 위해 다시 투표할 이유가 없도록 국정을 운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마크롱 당선인은 “당장 내일부터 진정한 다수, 강력한 다수를 구축해야 한다”며 국민 단합을 촉구했다. 

 

프랑스 대통령 자리에 도전장 던진 젊은 정치인의 행보


마크롱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출된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젊다. 양대 정당(공화당, 사회당)에 속하지 않은 혁신파기도 하다. 그는 1977년 12월 21일, 신경과학자인 장미셸 마크롱과 의사인 프랑수아즈 마크롱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리 10대학을 졸업할 때 논문 주제는 헤겔에 대한 연구였다. 이후 프랑스 정치 분야 엘리트를 대거 배출한 파리정치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27세에 프랑스 재무부 재정감사총국 금융조사관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 사회당에 입당해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인 세고레느 르와이얄을 지원했다. 르와이얄 후보가 패하자 2008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로스차일드은행에 들어갔다.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약하며, 2010년 부사장까지 올라 200만 유로(약 24억8,600만 원)의 연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시 사회당인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들어서자 경제장관에 발탁됐다. 재임 중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소위 ‘마크롱 법안’이다. 이 법을 통해 일요일 노동을 확대 시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업의 집단 해고에도 손을 댔다. 기업이 구조조정 중이거나 법적 청산 과정에 놓인 경우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마크롱은 지난해 여름 장관을 사퇴한 뒤 11월 중도신당 앙마르슈를 창당해 독자 출마했다. 올해 초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마린 르펜 국민전선 후보와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하지만 천운이 마크롱에게 찾아왔다. 피용이 부인을 허위로 채용해 수년간 거액의 공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폭로된 것이다. 피용의 지지율은 수직 하락했다. 마크롱은 르펜의 대항마로 주목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경제장관이던 2014년 한국을 방문해 당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만났다. 2015년 6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주최로 열린 ‘정보기술 파트너십 이벤트’에도 참석했다. 행사에서 손영권 SSIC 사장과 10여 분간 스타트업 창업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대담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마크롱 당선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손 사장이 프랑스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약속하고 삼성전자 연구개발 조직을 파리에 만들기로 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프랑스 외교부

 

 

 

한국 촛불시위와 반대된 마린 르펜 후보의 포퓰리스트적 선거 운동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정당에서 39세의 젊은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기적이라 불릴만하다. 이 기적이 발생한 데에는 프랑스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두 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있었다. 사회당인 올랑드 대통령은 두 자릿수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공화당은 각종 부패 문제를 일으켜왔다. 앙마르슈의 자원봉사자들은 전국의 2만5,000여 명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한 뒤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공약에 반영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는 정부 예산 62조 원을 직업훈련에 쓰고 기업이 내는 세금인 법인세를 현 33.3%에서 25%까지 내리는 파격 정책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을 두고, 극우파 마린 르펜의 포퓰리스트적 선거 운동이 마크롱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10일, ‘정치 운동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일 때와 아닐 때’라는 기사를 싣고, 르펜의 극우파 운동과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시위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포퓰리즘이 극우파에게 대선에서 3분의 1 득표를 가능케 하면서, 역사상 집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했다. 한국에서는 분노한 시위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했다. 뉴욕타임스는 두 나라 국민의 정치 운동이 정치권에 국민을 중시하라며, 국민주권을 주장한 점에서는 같지만, 또한 ‘매우 다르다’며 프랑스 극우파는 포퓰리스트적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극우파는 반이민, 반 유럽연합(EU)을 주장해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제도를 부정했지만, 한국 정치 운동은 사회 계층을 아우르고, 제도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은 외국인의 자국 유입에 반대하고 이슬람교를 배척하며, 반이민 정책을 펴기 위해 EU 탈퇴를 주장했다. 르펜은 “우리는 ‘부르키니’(얼굴 외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용 수영복)가 아니라 브리지트 바르도(프랑스 유명 여배우)다”며 이슬람 여성 폄하, 백인 프랑스인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인들의 시위는 좌파 성향을 띠거나 ‘친박 시위’를 촉발하기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부정부패 비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국민을 뭉치게 했고, 중산층으로 퍼졌으며, 법원 등 박 전 대통령의 잘잘못을 가리는 법 집행기관을 존중했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정치 운동은 극우였고, 제도를 불신했으며, 분열의 정치를 꾀했지만, 한국은 온건 좌파적 성향이었고, 제도를 껴안으려 했으며, 사회분열을 축소하려 했다는 점에서 달랐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의 정치 운동은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발, 대통령 비판, 반부패, 현상 타파, 변화 요구라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포퓰리즘이라는 규정은 프랑스에 적절하나 한국에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젊은 지도자에게 쏠린 기대감과 우려의 상반된 시선


마크롱 당선을 두고 외신에서는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마크롱 후보가 당선된 날, ‘에마뉘엘 마크롱의 놀라운 정치적 성취’라는 기사를 보도하며, “나폴레옹 이후 누구도 그와 같은 속도로 프랑스의 지도자가 되지 못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누구도 그처럼 정당과 의회의 도움 없이 당선되지 못했다”는 말로 마크롱의 당선에 감탄을 표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대선이 ‘프랑스 정치계에 거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표현한 정치학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정치 개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이 기성 정치인들을 몰아냈다. 한 번도 선출된 적 없는 사람이 승자가 되었다”고 마크롱의 당선을 분석했다.

 
마크롱 당선자의 앞날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존재했다. 특히 소속 정당 ‘앙마르슈’가 국회의원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만큼 6월에 열리는 총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뉴욕타임스는 마크롱이 당선되기 전부터 “(두 후보 중 누구도) 국내 선출직 경험이 없고 의회의 지원도 부족하다”면서 “프랑스의 대통령은 그 또는 그녀의 정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해 정책을 지원할 수 있을 때만 강력하다”고 못 박았다. BBC는 논평을 통해 마크롱의 언어와 행동에 대한 재능이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불평 많고, 성내고, 분리된 나라라는 현실에서 그의 말들이 (선거 과정에서와)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정부를 운영하는데 엘리트적인 그의 배경과 개인적 신념이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겠냐는 의미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두 정당 ‘사회당’과 ‘공화당’의 무능력에 지친 프랑스 국민은 투표로서 두 정당의 무능력을 심판하고, 새로운 젊은 지도자를 선출했다. 현재 마크롱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혼란스런 사회 내에서 야기하는 긴장을 어떻게 극복하고, 개혁과 치유를 동시에 이룩할 수 있느냐다. 프랑스 국민의 희망으로 떠오른 젊은 지도자의 행보에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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