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지금도 지하에서 울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지하에서 울고 있다”
  • 김용호 기자
  • 승인 2012.07.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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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국립묘지 논란, 언제까지 지속 될 것 인가
[이슈메이커=김용호 기자]

 

1910년 8월 22일에 일어난 한일강제병합이 올해 102주년이 됐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사명감으로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 이후 국가는 그들에게 독립유공자라는 호칭을 부여했고, 국립묘지 안장이라는 명예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다. 독립 인사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맞서 싸운 이들과 한자리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다른 이름, 국가원로

2012년 8월 15일은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지 67년 되는 날이다. 광복절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피 땀 흘려 독립운동을 편친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국경일로 제정됐다. 우리나라의 친일파는 해방 이후 새로운 이익집단들 속에서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정치와 사회, 경제 전 부문에서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는 불합리가 버젓이 이루어져왔다. 친일파들은 해방이후 뻔뻔히도 나라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후세에 친일파라는 평가가 아닌 국가의 원로로서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한 14명과 친일 행위로 인해 서훈이 취소된 인사 10명(중복 3명) 등 21명(서울현충원 11명, 대전현충원 10명)도 안장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들을 합치면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안장자는 총 76명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때에 친일부역 행위를 밝히고 민족정기를 세우자는 취지의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국립묘지 안장자 심사 기준을 엄격히 하고, 나아가 행적이 인정된 친일인사들에 대해서는 강제 이장까지 가능하도록 특별법 제정 등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이규봉 교수는 2001년부터 대전 국립묘지 장성묘역에 묻힌 김창룡 등 친일행적이 있는 인사에 대한 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수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는 “김창룡의 묘가 국립묘지에 있는 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조선총독부에 있다”며 당국과 유족들에게 묘지를 이장해 줄 것을 호소했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 받는 김창룡 묘 인근에, 백범의 모친과 큰 아들이 함께 안장돼 있어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는 친일파 백낙준이 묻혀있다. 백낙준은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앞장섰던 대표적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일본의 대동아전쟁을 찬양하는 강연에 나서기도 했던 인물이다. 대사급인 황종률은 같은 묘역에 안장돼있는데, 황종률은 1932년 만주국 정부 관리 양성 기관인 만주대동학원 3기생으로 1975년 일본 수상이 된 기시와 손잡고 한․일간 인맥을 형성한 대표적인 친일인사다. 제2장군묘역에는 이응준의 묘가 있는데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생으로 일제의 징병제가 공포되자 조선인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한 인물이다. 애국지사 묘역 177묘비의 주인공은 친일 승려 이종욱이다. 이종욱 은 창씨개명을 하고 전국 사찰에서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를 독려하는가 하면 2차 대전 말기에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사찰의 범종과 쇠붙이 등을 거둬들이는 등 친일 행각을 펼쳤다. 제3장군 묘역에 묻힌 정일권의 경우는 일본육사 55기로 만주군 헌병 대위로 활동한 인물로 정치와 군사 부분의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지난 1994년에 역시 국립현충원 장군묘에 안장됐다. 이 밖에도 동작동 묘역에는 엄민영(제1유공자묘역 3묘비), 최창식(애국지사 묘역 194묘비), 조진만(제2유공자 3묘비), 이종찬(제3장군 묘역 4묘비)의 묘가 조성돼 있다. 이들 9명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인사들이다.

대전 국립 현충원에도 대표적 친일 군인인 김창룡과 김응순의 묘가 있다. 특히 김창룡은 일제시대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를 학살한 전력 때문에 그 동안 각계로부터 줄기차게 묘지 이장 요구를 받아온 인물이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 받는 김창룡 묘 인근에 백범의 모친과 큰 아들이 함께 안장돼 있어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친일인사들이 국립묘지에 있는 것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그들 나름의 공적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혐의만으로 국립묘지 안장에 불이익을 줄 수는 없는 것이고 권한 있는 기관이나 기구에서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서 서훈이 치탈될 경우에는 이장 조치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둘러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보훈처는 과거 일제에 의해 옥고까지 치른 조동호, 김시현, 장재성 등 독립투사들에 대해 한 때의 좌익 운동 경력을 들어 독립유공자 선정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은 특히 많은 무명의 독립열사들에게도 좌절감을 안기고 있다. 독립군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못 배운 탓에 선친들의 행적을 입증하지 못해 독립 유공자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1993년 별세한 마지막 임시정부 요인 백강 조경환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겨 친일파 국립묘지 안장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친일파의 묘 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국립묘지 안장 관련, 관련법 개정 시급

현재 국립묘지법의 안장대상자 선정과 국립묘지의 관리운영에서의 제도적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안장 대상을 규정한 사항 중 친일파 이장에 관한 사항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제5조(국립묘지별 안장 대상자) 4항(제1항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개정 2012.2.17.) 5호(그 밖에 제10조에 따른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榮譽性)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와 제22조(관계 기관의 협조) 2항(국가보훈처장은 제5조제4항제2호, 제3호 또는 제5호에 따른 국립묘지 안장대상자를 심사하거나 국립묘지 영예성 훼손 여부를 조사하기 위하여 관계 기관의 장에게 범죄경력자료에 대한 조회요청을 할 수 있다. 개정 2011.8.4.) 등이 있지만, 국가보훈처는 제7조(이장) 1항(국가보훈처장이나 국방부장관은 유족이 이장(移葬)을 요청할 경우 안장 대상자와 그 배우자로서 국립묘지 외의 장소에 안장된 사람의 시신이나 유골을 국립묘지에 이장할 수 있다)을 이유로 들며, 유족의 요청 없이는 이장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친일파로 인정한 경우, 즉 서훈을 공식 박탈한 경우는 이장을 강제하도록 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정옥임 새누리당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11년 8월 10일 ‘친일행적 등으로 독립유공에 대한 서훈이 취소된 경우 국립묘지 외의 장소로 이장(移葬)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친일행적 등이 인정돼 독립유공에 대한 서훈이 취소된 경우가 있었다”며 “반민족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이 높은 상황에서 그 중 일부는 아직까지 국립묘지(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독립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외면 받는 배경은?

친일파청산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이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어 정치적 주류로 재등장시킴으로써 일어나게 됐다. 친일파들이 득세해 눈에 가시 같던 독립운동가와 임시정부 요인들을 용공세력으로 몰아 숙청했던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족문제 연구소는 ‘국립묘지’안장문제와 관련된 배경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첫째는 독립유공자 예우와 보상에 관한 서훈제도가 친일파 군인들이 주축이 돼 탄생했고,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인 1962년 처음 제정돼 시행되다 보니 과거 이승만 정부의 보호와 지원 속에 성장해 온 각계 친일 세력들의 부당한 압력과 간섭으로 제대로 재정 될 수 없었다고 설명 했다. 두 번째는,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들 중에는 친일 경력을 가졌거나 독립운동 변절자 같은 인물이 9명이나 포함돼 있어 공정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드골은 나치협력자들을 청산해, 후대에 민주 프랑스를 건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의 철저한 과거청산 본받아야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문제는 드골 대통령 때 철저하고도 준엄하게 집행했음에도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드골의 나치협력자청산은 2차 세계대전 후 페탱의 비시 프랑스 정권에 복종한 국가 반역자와 매국세력을 추방하고 좌․우파를 망라한 레지스탕스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도덕적이며 정의롭고 청렴하고 민주적인 프랑스를 건설함으로써 유럽의 평화와 선진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프랑스는 1960년대에 자국형법에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법을 병합해 국가반역죄와 반인권범죄 그리고 인종차별범죄에 관해 시효가 없이 체포해 재판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미테랑 대통령의 좌파정부는 1983년 레지스탕스 영웅 쟝 물렝을 고문 살해한 리옹 지역 나치게슈타포 바르비를 남미 볼리비아에서 체포해 재판했다. 바르비에게 사형이 폐지된 후 최고형인 종신징역형이 선고됐다.

1992년에는 드골의 나치협력자 숙청 때 도주해 2차례나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폴 투비에가 체포되어 반인도적 범죄 공범죄로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바르비와 투비에는 모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 “죄진 자는 결코 자기 침대에서 눈을 감지 못한다”는 프랑스 격언을 몸으로 체험했다.

특히 21세기에는 전 프랑스 경찰청장이었고 예산장관을 역임한 모리스 파퐁이 나치협력자임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90세의 고령임에도 10년 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으나 유럽의회의 재판절차상 이의제기로 석방됐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대법원은 파퐁에 대한 유죄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외에도 덴마크는 1만 4000명, 노르웨이는 2만 명, 네덜란드는 4만 명, 벨기에는 5만 명의 나치협력자들을 과거 청산을 위해 사법처리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사례를 연구하여 빠른 시일 내에 친일파 문제와 ‘국립묘지’안장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비록 현재 법 개정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애국지사들이 친일 인사와 국립묘지에 나란히 누워 있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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