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친환경 행보에 속도 조절 나선 에너지 기업
[이슈메이커] 친환경 행보에 속도 조절 나선 에너지 기업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4.01.11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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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석유 수요 전망에 초대형 인수·합병 소식까지
국제 유가 급락 시 부메랑 맞을 거라는 지적도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친환경 행보에 속도 조절 나선 에너지 기업
 

글로벌 석유 업계에 초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이 전해졌다. 2023년 10월 11일 엑손모빌이 셰일가스 시추업체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를 595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경쟁사 셰브론이 석유·가스 생산업체 헤스를 530억 달러에 샀다고 전했다. 두 회사의 M&A는 2016년 영국 석유회사 셸이 석유·가스 기업 BG그룹을 70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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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오일’ 두고 기관마다 전망 달라
두 회사의 연이은 초대형 M&A는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확대에 나서면서 머지않아 석유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만든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하루 1억 70만 배럴이던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코로나19 이후 3년 연속 1억 배럴을 밑돌았지만, 2023년 1억 230만 배럴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석유 생산이 최대를 기록한 뒤 꺾이는 시점인 ‘피크 오일(Peak Oil)’에 대한 예측 역시 기관마다 차이가 있다. 피크 오일은 석유생산량이 최대치에 도달해 꺾이기 시작하는 시점을 일컫는 용어다. 1950년대 미국의 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처음 제시한 이론으로 그는 미국 원유생산량이 1970년대 최대치에 도달한 후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예측대로 석유 생산량이 줄자 설득력을 얻기도 했으나 탐사, 채굴 기술 개발로 석유 생산이 계속되면서 피크 오일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IEA는 보고서 ‘오일(Oil) 2023’에서 각국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으로 석유 수요는 2028년 하루 1억 570만 배럴로 정점을 찍은 뒤 2030년 1억 150만 배럴, 2050년 9,740만 배럴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고, 청정에너지 또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실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30년까지 전기차 신차 판매 비중을 50%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문에서 “끝이 없어 보이는 화석연료 성장의 시대가 10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며 “석유 수요는 2030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셰브론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며 “석유 수요는 2030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셰브론

  하지만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전망은 다르다. OPEC은 IEA 사무총장의 FT 기고문이 나오자 반박 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어 하이탐 알 가이스 OPEC 사무총장은 “2022년 하루 9,960만 배럴인 석유 수요가 2045년까지 계속 늘어나서 하루 1억 1,600만 배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중시하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늦추고 있는 데다, 항공유와 석유화학 원료 등의 대체재를 찾기 어렵고 경제성장이 빨라지는 아프리카나 남미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석유 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IEA와 OPEC의 예상 시점에선 차이가 있으나 공통으로 석유 수요는 지금처럼 꾸준하고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을 걸로 내다본다. 헤스를 인수한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며 “석유 수요는 2030년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셉 래시터 전 하버드대 교수는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 발전과 복지를 위해 발전소를 짓고, 정유공장을 건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기에 휘발유 이외의 제품인 납사, 등·경유, 제트유 등을 대체할 만한 제품들은 최근 연구, 개발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사업성은 걸음마 단계로 당장 대체재의 위협도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IEA와 OPEC는 시점에선 차이가 있으나 공통으로 석유 수요는 지금처럼 꾸준하고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을 걸로 내다본다. ⓒPixabay
IEA와 OPEC는 시점에선 차이가 있으나 공통으로 석유 수요는 지금처럼 꾸준하고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을 걸로 내다본다. ⓒPixabay

 

유럽 석유회사들도 방향 전환
석유 메이저의 이번 메가딜로 인해 두 미국 석유기업은 든든한 먹거리를 확보했다. 엑손모빌은 파이오니어를 인수함으로써 석유·가스 생산량을 단숨에 20%나 늘리게 됐고, 셰브론은 헤스를 사들이면서 ‘최근 10년간 발견된 유전 중 세계 최대’이라는 남미 가이아나 해안의 스타브록 광구 운영에 참여하게 됐다. 이외에도 데본 오일의 마라톤 오일 인수설 및 페르미안 분지 내 비상장 생산업체 크라운락 인수전에 엑손모빌, 쉐브론, 코노코 필립스 등의 참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에 막대한 투자를 하던 BP와 셸(영국), 토탈에너지(프랑스) 등의 유럽 석유회사들도 석유·가스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유럽계 석유 메이저들이 다시 석유로 빠르게 유턴 중인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가스값이 급등하며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곳을 찾기 위해 분주했던 반면, 태양광·풍력 발전은 금리 인상과 각종 자재비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이 수익성을 높이고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선 석유 시대에 좀 더 오래 머무는 게 나은 선택이 된 셈이다. 실제 탈 탄소 부문 구조조정도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셸의 경우 저탄소 솔루션 부문(LCS) 인력의 15%를 감원하고, 수소 사업 규모를 축소할 예정이다. 북미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LNG 프로젝트를 탐색 중이라고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는 흐름을 거스르는 결정이지만,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토탈에너지 역시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2028년까지 생산량을 연 2~3%씩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에 집중하던 BP도 2030년까지 석유·가스 생산량을 40%나 줄이겠다는 계획을 수정해 25%만 줄이겠다고 밝혔다.

 

2010년대 이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에 막대한 투자를 하던 유럽 석유회사들도 석유·가스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 ⓒPixabay
2010년대 이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에 막대한 투자를 하던 유럽 석유회사들도 석유·가스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 ⓒPixabay

  다만 석유가 계속 번성할 거라면 파이오니어와 헤스는 왜 기업을 판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외신에 따르면 파이오니어는 엑손모빌에 단 9%의 프리미엄만 받고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헤스 역시 셰브론에 매각되면서 챙긴 프리미엄이 10%에 불과하다. 이전 25년 동안의 에너지 업계 M&A의 평균치(26.5%)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로 인한 ‘왜 회사를 파느냐’는 투자자 질문에 헤스 창업자의 아들인 존 헤스 CEO는 “우리 주가가 꽤 올랐다”고만 답했다. 물론 주가가 5년 동안 161% 상승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나 석유·가스 수요가 계속 늘어서 이 사업이 앞으로도 안정세를 달릴 거라 봤다면 팔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두고 FT는 “셰브론과 엑손모빌의 막대한 지출은 석유 시대의 연장이 아니라, 에너지 불확실성이란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다”고 해석한다. 거대 기업들이 밝은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다고 보고 일단 몸집을 키워 방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사보다 더욱더 싸게 석유를 생산할 수 있다면 나중에 혹시 수요가 꺾이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석유 업계 인수·합병 물결이 석유 시대 번영의 상징인지, 마지막 발버둥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업계 1~2위인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움직임은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걸쳐 BP와 아모코, 엑손과 모빌, 셰브론과 텍사코가 합치며 초대형 오일 메이저사가 된 것처럼 업계에서 초대형 인수·합병이 잇따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M&A를 두고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한 파리협정 실패에 베팅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크 브라운슈타인 환경보호기금 부대표는 “석유·가스 기업들이 에너지 전환보다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마지막까지 수익을 짜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배럴당 80달러를 웃도는 고유가 시기에 이뤄진 M&A라는 점에서 국제 유가가 급락할 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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