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는 ‘K-라면’
[이슈메이커]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는 ‘K-라면’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11.0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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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입맛 사로잡으며 사상 최대 호황
라면 업체들 생산 시설 증설에 적극 투자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는 ‘K-라면’

 

라면이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온 지도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국민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라면은 그간 무한 변신을 거듭하며 이제 시장 규모만 3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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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분식 장려운동 계기로 시장 급성장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라면은 1963년 9월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명예회장이 1961년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을 위해 박정희 정권에 5만 달러를 빌려 일본 묘조식품(명성식품)에서 제조 기계와 기술을 수입해 생산한 것이 라면사업의 시작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삼양라면이 출시되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쌀 중심 식생활 문화가 자리 잡혀 있어 라면 활성화에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고, 옷감이나 실, 플라스틱으로 오해를 받는 일도 있었다. 끓여먹는 방법이 생소하다 보니 삼양식품 직원들이 극장과 공원을 돌며 무료 시식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라면은 ‘쌀이 없어서’ 인기 식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기존 쌀을 대신하던 식량은 미국으로부터 원조 받은 밀가루였는데, 정부는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쳐 라면 소비를 권장했다. 구색은 ‘장려’였으나 실제로는 ‘강제’에 가까웠다. 모든 음식점은 밥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해 판매해야 했고 ‘분식의 날’이 지정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라면은 1963년 9월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삼양식품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라면은 1963년 9월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삼양식품

 

이를 기점으로 밀가루와 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며 새로운 음식문화가 만들어졌다. 한국인의 주식이 쌀과 보리에서 쌀과 밀로 변화했다. 삼양라면의 월 판매량 역시 1966년 240만 봉지에서 1969년 1500만 봉지로 크게 늘었다. 매출액은 초창기 대비 300배 증가했다. 이처럼 라면 수요가 늘어나자 수많은 회사가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시장은 삼양이 주도하고 롯데(농심)가 뒤따르는 2파전 형태로 압축됐다.

 

농심은 라면의 발전을 이끈 기업으로 불린다. 삼양보다 2년 늦게 라면 사업을 시작한 농심은 조금씩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좁혀 1985년 추월까지 성공했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연이은 신제품의 성공이 큰 힘이 되었다. 안성에 스프 전문공장을 만들고 스프 연구를 통해 ‘안성탕면’을 만들었고, 기존 면과 스프가 잘 섞이지 않던 짜장 라면의 단점을 보완해 ‘짜파게티’를 출시했다. 최초의 우동 콘셉트 라면인 ‘너구리’도 이 시기에 나왔다.

 

특히 ‘신라면’의 출현은 라면 맛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기존 한국 라면이 일본식 치킨라면에 영향을 받아 다소 느끼했던 반면, 신라면은 매운맛을 첨가해 소비자 기호를 만족시켰다. 인기에 힘입어 농심은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로 선정되며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경기장에서 농심 ‘육개장사발면’을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면서 용기면의 대중화도 이끌었다.

 

 

농심은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로 선정되며 특수를 톡톡히 누린 바 있다. ⓒ농심
농심은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로 선정되며 특수를 톡톡히 누린 바 있다. ⓒ농심

 

1980년대엔 한국야쿠르트와 청보, 빙그레가 후발 제조업체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치열한 ‘라면 전쟁’이 전개되며 덤핑 판매나 판촉 경쟁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신 라면의 상품 경쟁력이 크게 상승해 수출이 확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3년엔 빙그레가 라면 사업에서 철수한 후 지금의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 사의 경쟁체제가 굳어졌다.

 

이제 라면은 우리 국민 1인당 한 해에 77개를 먹을 정도로 생활필수품에 준하는 존재가 됐다. 1989년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긴다는 ‘우지 파동’이나 2000년대 MSG 논란 등은 종국에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점이 확인됐지만, 당시에는 전 국민적 공분을 샀다. 라면이 단순한 기호 식품 너머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삼양식품의 ‘불닭브랜드’는 누적 판매량 50억 개를 돌파하는 등 K-라면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삼양식품
삼양식품의 ‘불닭브랜드’는 누적 판매량 50억 개를 돌파하는 등 K-라면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삼양식품

 

‘배고파 먹던’ 라면, 한국의 수출 효자 상품으로

2000년대 들어 국내 라면기업의 수출 확대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라면 산업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재 135개국에서 한국 라면이 팔리고 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라면 수출액은 4억 4,62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되어 기존 최대치였던 지난해 상반기 수출액(3억 8,328만 달러)보다 16.4% 증가했다. 지난해 총 수출액은 1조 원에 육박했다. 이는 5년 전 3억 8,100만달러에서 2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한국 전체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는 비상 상황이란 점을 감안하면 효자 상품인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간편식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점은 라면산업 성장에 큰 동력이 됐다. 여기에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의 한류문화 확산과 ‘파이어 누들 챌린지’의 유행이 겹치며 해외시장에서 한국 라면은 날개를 달았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해외 수출액이 2019년 2,400억 원에서 지난해 4,800억 원으로 3년 새 2배 늘어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최초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일본 닛산에서 ‘베끼기 제품’을 출시할 정도로 높은 위상을 자랑한다. 농심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1,175억 원 중 50% 이상을 해외에서 거뒀다. 신라면 등 주력 제품이 월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망에서 인기를 끈 덕택이다. 오뚜기도 방탄소년단(BTS) 진을 모델로 내세우며 해외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고, 팔도는 러시아에서 판매 중인 용기면 ‘도시락’이 현지화에 성공하며 점유율 60%에 달할 정도로 ‘국민 컵라면’에 등극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라면기업의 수출 확대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라면 산업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Pixabay
2000년대 들어 국내 라면기업의 수출 확대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라면 산업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Pixabay

 

해외 각국의 수요가 늘자 라면 업체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시설 증설에 나서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5월 수출용 제품을 전담 제조하는 밀양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올해는 이 공장 부지에 2공장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농심은 지난해 미국 2공장을 완공해 공급량을 확대했고, 이르면 2025년 미국 3공장 착공에 나선다. 미국 사업이 성장세를 보이자 농심은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라면시장에서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원재료비와 인건비 등의 비용 증가로 인한 어려움도 존재한다. 매출은 늘어나도 영업이익은 감소하거나 매출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해서 영업이익률이 낮아지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농심의 연간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2021년 4.0%, 2022년 3.6%로 0.4%p 하락했다. 매출액이 17.5% 증가했으나 영업이익 증가율(5.7%)은 매출액만 못해서다. 이는 농심만 겪었던 것은 아니다. 오뚜기의 연결 기준 연간 영업이익률도 2021년 6.1%에서 지난해 5.8%로 0.3%p 하락했다. 오뚜기 또한 매출은 늘었는데, 영업이익이 매출액만큼 증가하지 않았다.

 

삼양식품의 연결 기준 연간 영업이익률도 2021년 10.2%, 2022년 9.9%를 각각 기록했다. 그러나 삼양식품은 영업이익률이 10% 내외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제조사들은 가격 인상을 두고 정부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들썩이는 소비자물가를 잡아야 하는 정부에게 ‘서민 음식’ 라면은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밀 가격이 50% 가까이 하락한 점을 언급하며 라면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업계는 소맥은 라면의 주 원료 중 하나이지만, 다른 원료인 전분, 설탕 등의 가격 상승과 인건비, 전기료, 수도요금 등의 다양한 비용 상승도 고려해야 한다며 난감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정부와 업계가 협력 관계 구축하고, 이를 통한 라면 가격의 적정 수준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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