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Life】목소리의 연금술사 국민성우 '배한성'
【Beautiful Life】목소리의 연금술사 국민성우 '배한성'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2.03.27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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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인생 40년 배한성, 2만명 목소리 열연
[이슈메이커=남윤실 기자]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해서 라디오, 만화 책 등 아무런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소년. 어머니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배우를 꿈꾸던 호기심 많은 소년이 이제는 국민에게 사랑 받는 최고의 성우가 되었다. 형사 콜롬버, 맥가이버, 형사가제트 등을 연기한 배한성 방송인. 그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서울대 공대를 나온 수재였지만 공산주의자였어요. 전쟁 통에 월북을 하셨죠. 어머니는 부잣집에서 자라 일제 강점기에 서울여상까지 다닌 신여성이셨지만 생활력이 전혀 없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린 나이에 가장역할을 해야만 했죠. 중학교 1학년 때 부터 신문 배달 보조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어요. 신문배달 일을 할 당시 알람시계를 살 돈이 없어서 약수터에 가는 행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신문배달 일을 하러 갔어요. 자다가 깨어보니 눈보라가 심하게 부는 날이었어요. 눈보라가 심하게 불어 밖에 행인들이 뜸할 거라고 생각하고 전처럼 신문배달 일을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통금시간이 있었고 도둑이 많아서 동네 사람들이 도둑을 잡으려고 잠복을 섰는데, 저를 도둑으로 오해하고 때린 것이죠. 제가 알림시계가 없어서 시간을 착각하고 밤에 나가서 일어난 해프닝이었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가난함이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힘들지만 계속 어렵고 힘든 건 아닐 것이다. 용기내자’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오프라 윈프리가 한 말이 생각나요. 지금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최고가 된다는 말이요. 꿈을 현실로 이루는 데는 최선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성우의 꿈을 키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비록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성우가 될 수 있는 능력은 어머니가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라디오, 만화 책 등 아무런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본인이 본 영화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 들려주셨죠. 그 얘기가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해서 과연 영화는 어떤 것일까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영화포스터를 붙이는 사람한테 공짜 표를 얻어 영화구경을 하게 됐어요. 영화는 그동안 제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줬고 저한테 꿈이자 희망으로 다가왔어요. 그렇게 영화에 빠져들어 그 집에 신문을 공짜로 넣어주고 표를 얻었어요. 학생 모자를 감추고 사복으로 갈아입으면서 까지 극장을 출입했죠. 그때부터 인기배우였던 허장강, 김승호 같은 분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어요.
사실 고백하자면 16살 때 임권택 감독님이〈두만강아 잘있거라〉라는 영화를 준비할 때 우연히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 속의 소년병사가 하고 싶어서 장문의 글을 써서 지원했었죠. 일주일 만에 사진을 보내달라는 답장이 왔고 남의 옷을 빌려 사진을 찍어 보냈으나 배역에 안 맞으니 다음에 보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당시만 해도 영화배우는 미남이었어야 했어요, 저는 제 분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차선책으로 성우를 생각하게 됐어요.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 것도 영화배우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어렸을 때 영화를 많이 본 경험이 제가 성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현재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배우(俳優)’라는 단어에서 ‘배(俳)’자를 한문으로 쓰면 사람인(人), 아닐비(非)로 이뤄졌는데 뜻을 해석하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다고 귀신이나 동물이라는 뜻은 아니고요, ‘보통 사람보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나이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만 봐도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시죠? 점잖게 정장입고 무게 있게 앉아 있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아요.
동기 형이 제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줬어요. ‘배달민족에 한사람 밖에 없는 성우’라고 말이죠. 그 정도로 성우로서의 재능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어요. 저는 도전에 적극적인 성격이에요. 라디오 자키, 방송진행, 성우,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많이 했어요. 강의를 준비한지 5년 정도 됐는데 강의 또한 저의 인생의 새로운 도전 중에 하나예요. 제 강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여기저기서 글 청탁도 많이 들어와요.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글 쓰는 것에 기쁘게 생각해요.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제가 글을 쓸 줄 알고, 강의하는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이렇듯 저의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저의 저력이라고 말하기 위함이에요.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봉사와 나눔과 희생’ 이 세 가지 정도는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고 해요. 목소리로 자원봉사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참 많아요. 현재 국제기아 홍보대사, 한국실명예방재단 홍보대사, 사랑의 집수리운동 홍보대사 등 을 맡아 활동하며 아주 조금은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어요. 꽤 자주 차를 바꾸며 사치 아닌 사치를 부리기도 했어요. 차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자 자동차 전문지에서 시승기 청탁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맥가이버 시승기’였어요. 이후 배한성의 로드 임프레션 등으로 바꿔가며 근 10여년을 자동차 칼럼과 시승기를 썼어요. 주로 수입차를 대상으로 많은 차들을 시승하며 자동차 생활을 이어갔죠. 자동차와의 인연은 교통방송의 퇴근길 프로그램 MC로 이어졌고 송도순 씨와 함께 진행한 그 프로그램은 교통방송 최장수 프로그램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죠.
또 저는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했어요. 1992년, 국산 경차를 타고 영국을 출발해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체코와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러시아를 거치며 달린 길은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겼어요. 여행이라기보다 모험에 가까운 여정이었죠. 긴 여정은 몽골을 거쳐 중국 베이징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때로 죽을 고비를 넘기도 했고, 국경을 넘기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에 불안해하기도 했어요. 지금 들으니 별것 아닌 여행이겠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사회주의 국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것도 자동차를 몰고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험이었어요.”

강의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생들은 자신들은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내가 성공을 하고 다른 사람도 내가 영향을 줘서 성공하게 하는 것이 하버드 대학교의 모토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거창한 모토는 아니지만 내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눠 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동기부여가 돼서 좋은 쪽으로 변화된다고 하면 저 또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줄 수 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콘텐츠 개발에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기발한 오디오 드라마 ‘배배삼국지’를 출간하셨는데요?
“젊은 사람들도 스마트 폰으로 오디오 드라마를 접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혼자듣기 아까운 오디오 드라마 정보 삼국지, 초한지와 같은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돼 있어요. 고전의 작중인물과 기본 줄거리를 바탕으로 요즘 세태풍자를 곁들인 오디오 드라마예요.”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거기서 두가지 질문하겠다고 했데요. 한가지는 “당신은 지상해서 즐거웠습니까?” 나머지 하나는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었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저는 강의를 할 때 이 말을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왜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했는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내년에 키워드가 ‘위로’가 될 것이라는 글에 공감하고 있어요. 세대 간의 갈등, 국가 간의 갈등 등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토닥거려주고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대표 천의 목소리 배한성!”
한국전쟁 와중에 북으로 가버린 아버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동양방송으로 입사한 그에게 80년 방송통폐합은 방송 생활 중단을 고민해야 할 만큼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다. 잘나가는 성우에 만족하지 않고 일찌감치 프리랜서의 길을 열어나갔고, 그보다 훨씬 오랜 전 어린 시절에는 영화를 통해 꿈을 간직하고 키워가는 열정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그가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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