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스퀘어를 품은 신진 작가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품은 신진 작가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3.09.27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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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품은 신진 작가

- 자연의 순수함과 투명함을 닮고 담다
- 온실의 따뜻함으로 K-art를 알리다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문화 콘텐츠가 지금처럼 자부심으로 다가온 시기가 있었을까? 유튜브의 등장 시기와 맞물려 글로벌 메가 히트송이 된 싸이의 강남 스타일, 빌보드 차트 1위는 이제 당연할 정도의 세계적 팬덤을 완성한 BTS,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배우 윤여정과 감독상의 봉준호 감독, 오징어 게임 열풍을 시작으로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 산업에서 킬러 콘텐츠가 된 대한민국 IP 등 살아생전 경험해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수많은 쾌거가 최근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처럼 영화·드라마·음악 등 수많은 K-콘텐츠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현실에서 K-art 역시 최근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당당히 자신의 작품을 내건 어느 신진 작가의 스토리에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플로리스트, 그리고 작가가 되기까지
흔히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우연, 다시 만나면 인연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가 어떠한 도전에서 특별한 성과를 거뒀다면 한 번은 운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면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닌 실력이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플로리스트가 되었고 더 나아가 이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어느 신진 작가의 연이은 인생 도전 성공기도 우연을 넘어 필연 혹은 운명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이는 더 온실의 수장이자 ‘Onsil’이라는 필명으로 본캐와 부캐를 넘나들며 우리 사회에 울림을 전하는 류예랑 대표의 이야기다.
  사실 성인이 된 후 류 대표의 첫 인생 도전은 마케팅, PR 전문가를 꿈꾸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인생의 첫 날개는 미처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접었던 그가 치유와 힐링의 목적으로 찾은 플라워 레슨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다. 그렇게 플로리스트가 된 류예랑 대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범한 꽃집 아가씨와는 차별화된 행보를 걷는다. 단순히 꽃을 판매하는 일에 그치지 않았고 파티 및 행사 조경은 물론 반려 식물이라는 키워드로 대중 앞에 나섰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류 대표는 자신이 지금껏 함께한 꽃과 식물을 예술 작품으로 완성하며 자신의 이름 세 글자 앞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더하게 됐다. 더욱이 최근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자신의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K-art를 대표하는 신진 작가로 성장한 류 대표는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또 다른 인생 도전에 나서고자 한다. 
  꽃은 오랜 시간 인간에게 아름다운 존재로 그 곁을 지켜왔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꽃과 함께하는 일은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앞서며 ‘꽃집 아가씨’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설렌다. 향기로 감동을 전하는 이들에게 묘한 설렘은 느끼는 이유는 꽃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마음도 꽃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며 투명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짐작 때문이 아닐까? 2023년 10월 추석 특집호를 준비하며 이슈메이커 역시 남다른 설렘을 품고 류예랑 대표를 만나고자 성남으로 발걸음을 향한 이유였고 더 온실의 지난 스토리가 궁금해 서둘러 질문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플로리스트를 꿈꿨나
“전혀 그렇지 않다. (웃음) 누구나 그렇듯 사회 초년생 당시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나 남모를 스트레스에 탈모까지 찾아왔다.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우연한 기회로 해외 유명 플로리스트를 초빙한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고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재능만으로 직업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당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이 있음에도 이를 포기한다면 나 스스로가 나약해서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의 남자친구가 컴퓨터 전공자답게 분석적으로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를 언급하며 조언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지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다는 확신을 전하며 응원해 줬기에 저 역시도 용기를 가지고 플로리스트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존 플로리스트와는 다른 행보를 이어간 이유는
“꽃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분명 매력적인 일이지만, 내가 한 디자인의 지속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 어떤 존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지만 행사가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뒤로 갈수록 반려 식물과 함께 하는 플랜테리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이다.”

꽃과 식물을 담은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할까
“물론이다. 처음에는 식물 그림 포스터 판매를 고민했다. 포스터 디자인을 외주에 의지하고자 했으나, 그래서는 더 온실의 아이덴티티를 충분히 이해하고 담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런 이유로 직접 붓을 들게 되었지만, 곧 오랜 시간 익힌 붓 기술을 가진 노련한 화가들과의 차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찾은 것이 어린 시절부터 틈틈이 즐겨왔던 자수와 실크로 만든 꽃 ‘채화’ 기술이었다. 물감 그림과 자수, 채화의 조합은 생각하지 못했던 폭발적 반응으로 이어졌다. 특히 해외 갤러리에서 먼저 전시 제안을 해왔고 연이어 국내 전시의 요청도 이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레 ‘더 온실 류예랑 플로리스트’에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해졌다.”

플로리스트와 작가, 무엇이 더 끌리나
“현대 사회에서 본업 이외의 부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혹자는 플로리스트와 작가 중 무엇이 본캐냐고 묻지만 업무의 비중을 따지자면 정확히 50:50이다. 물론 플로리스트의 삶이 먼저였고 해당 업무의 고민과 확장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에 전자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건 사실이다. (웃음) 특히 플로리스트가 아니었다면 작품 활동의 이유가 없었기에 작가로 불리는 지금의 삶도 떳떳하지 못했을 것 같다. 트렌드에 편승해 보고자 하는 등의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고 자연스러운 변화였기에 저를 아는 모두가 이러한 제 삶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발생하는 시너지는
“기자님도 이러한 특별함이 있기에 저를 인터뷰하는 게 아닐까? (웃음) 제가 알기론 플로리스트와 작가 활동을 함께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런 표면적인 이유로도 큰 매력을 느끼는 분이 많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든다면 제 그림에는 꽃의 표정이 살아 있다는 피드백이 많다. 당연한 이야기다. 10년 넘게 꽃과 함께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제가 디자인한 꽃과 식물이 예쁘게 보일지 고민하며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어느 구도와 각도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는 고스란히 작품에도 담기지 않았을까?”

꽃과 그림 모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꽃을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그림을 시작하며 배울 때도 ‘처음 아니죠?’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떻게 두 가지 모두 남다른 재능을 가지게 됐는지는 저 역시도 의문이다. 그러나 지난 삶을 되짚어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어려서부터 작은 아파트에서도 아담한 연못과 정원을 꾸미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늘 꽃과 함께하는 삶이 익숙했기에 자연스레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 플라워 레슨을 받게 됐다. 또한 앞서 언급한 학창시절부터 간간히 배운 자수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경험치는 시나브로 축적돼 작품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이처럼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흘러갔으며 따라서 운명처럼 숙명처럼 끌림으로 지금의 자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본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키워드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창경궁 대온실’이 플로리스트로서 작가로서 저에게 늘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일제 강점기 당시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며 동물원과 함께 대온실이 만들어졌다. 일본의 강요로 시작됐으나 이는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유리 온실이었다. 특히 창경궁 대온실은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영국의 건축자재가 사용됐으나 창호나 격자무늬 등에서 우리의 전통적 건축 양식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서구적이지만 대한민국의 전통과 정서를 담았고 비극적 역사의 스토리까지 품은 창경궁 대온실의 존재는 제가 지향하는 작품 활동과도 뜻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더 온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더 온실을 잘 표현할 무수히 많은 미사여구가 머릿속을 맴도나 ‘투명함’을 넘어서는 키워드는 없지 않을까? 앞서도 언급했듯이 더 온실도 그렇지만 제가 플로리스트를 시작한 것도 작가로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도 목적이 담긴 활동이 아니다. 제 삶의 자연스런 흐름이자 고찰이 브랜드가 된 것이며 당연히 모든 과정이 거짓 없었기에 모두가 우리의 행보를 투명하게 바라봐 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자연의 순수함과 투명함을 닮고 담는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앞으로 더 온실과 이루고픈 클라이맥스가 있다면
“얼마 전 뉴욕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에 제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미국의 심장이자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이곳에서 찰나의 순간이지만 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자 가문의 영광이다. 그러나 이 순간을 제 삶의 클라이맥스로 단정 짓고 싶지 않다. 물론 어떠한 특별한 순간을 꿈꾸지는 않지만 오늘 하루 곱씹으며 후회 없는 날의 연속이 이어진다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업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느 인터뷰보다 오랜 시간 희로애락 가득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쏟아냈던 더 온실 류예랑 대표는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픈 메시지도 덧붙이고자 했다. 류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하는 작품 활동과 전시 활동은 변함없이 이어갈 계획이며 당장 10월에 뉴욕 전시도 앞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임팩트 있는 작품으로 국내는 물론 K-art의 울림을 전 세계에 전하고픈 바람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이러한 방향성을 잘 이해하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미술계, 디자인계의 협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중요하지만 작품 하나에도 철학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디자인 리더로서 책임감 넘치는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더 온실의 향후 행보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며 목표로 한 바를 이룬다면 좋은 기회로 이슈메이커에서 다시 한번 제 이야기를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진심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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