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확산하는 ‘무량판 포비아’
[이슈메이커] 확산하는 ‘무량판 포비아’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08.25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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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에서 촉발
윤석열 대통령 “건설 카르텔 혁파하라”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확산하는 ‘무량판 포비아’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로 촉발된 후폭풍이 한국 건설 산업 전반을 휘감고 있다. GS건설 사태를 기점으로 당국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뿐만 아니라 전국 민간아파트로 부실 공사 점검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특히 ‘철근 누락’ 문제는 특정 건설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상 문제라는 지적이 나와 점검 결과 더 많은 ‘부실 공사 단지’가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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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전체의 구조상 문제라는 지적

‘무량판 포비아’는 지난 4월 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1층의 지붕 층 콘크리트 천장(슬래브)이 무너진 사고였다. 이 아파트는 올해 10월 완공 예정으로 입주를 5개월 앞두고 있었고, 해당 주차장 상부에 어린이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었기 때문에 입주 예정 주민들의 불안감이 치솟았다.

 

정부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선 결과 설계와 감리, 시공 부실로 인한 전단보강근의 미설치, 붕괴 구간 콘크리트 강도 부족 등 품질관리 미흡, 공사 과정에서 추가되는 하중을 적게 고려한 점 등이 붕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중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지하 주차장 슬래브를 지지하는 기둥에 충분히 넣어야 하는 보강용 철근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가 없다는 뜻으로, 수평 기둥을 뜻하는 보 없이도 기둥만으로 상판을 지탱하게 만든 건축 구조다. 다른 공법보다 신속한 시공이 가능하고 공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최근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중심으로 많이 쓰여 왔다. 벽 대신 기둥을 설치해야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둥에 하중이 전부 집중되기 때문에 충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무량판 포비아’는 지난 4월 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무량판 포비아’는 지난 4월 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충분히 채워야 할 전단 보강근 누락으로 붕괴 사고가 나자 당국은 지난 2017년부터 LH가 무량판 공법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LH가 발주한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단지 91곳 가운데 15곳이 철근이 빠지거나 설계와 다르게 시공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부실 공사 현황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후 이한준 LH 사장은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공공아파트 단지 중 철근이 누락 된 단지가 추가로 더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단지는 91개에서 102개로, 철근이 빠진 부실 공사 단지도 15개에서 20개로 각각 늘었다.

 

다만 당국은 ‘부실 공사’ 논란이 무량판 공법의 문제라거나 일부 건설사만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설계 단계부터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감리자, 설계대로 짓지 않은 시공자까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단순히 시공사나 설계사, 감리사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다”며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의 구조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더기 부실 시공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공분양 단지뿐 아니라 민간분양 아파트에도 무량판 공포감이 커지면서 정부는 LH 아파트 무량판 주차장 전수 조사에 이어 민간아파트로 조사 대상을 확대했다. 처음 발표한 293개에서 조사 대상은 더 늘어날 전망이고 10월에 조사 결과가 나온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건설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혁신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건설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혁신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후폭풍에 시름 깊어지는 K-건설

업계에선 이른바 ‘순살 아파트’ 논란의 불똥이 튈까 우려하며 당국의 전수 조사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토부는 철근 누락 등 부실 공사 문제 발생 시 공공아파트 입주자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할 계획이다. 철근 누락이 발견된 LH 공공아파트 입주자와 입주예정자에게 ‘계약 해지권’ 등 다양한 보상 방안을 마련했다. 임대아파트의 경우 계약 후 입주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 해지권을 주고 위약금은 면제한다. 보증금을 이미 냈다면 이자를 포함해 반환하기로 했다. 이주를 원하면 이사비 지원 및 거주지 인근 다른 임대아파트에 우선 배정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공공분양의 경우 입주 전 단지는 계약해지권을 부여하고, 무량판 구조라는 이유로 입주예정자가 계약 해지를 요구할 경우 이미 낸 계약금은 이자를 포함해 돌려주기로 했다.

 

문제는 부실 공사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보강 공사 결정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등 후폭풍이 예고됐다는 점이다. 특히 지방 중소 건설사는 이미 ‘악성 미분양’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태라, 이들 업체의 경영난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9,399가구로 전월 대비 5.7% 증가했다. 준공 후 미분양은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자금 회수를 어렵게 해 건설사에 자금 경색을 불러온다.

 

이로 인해 실제 중소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줄줄이 ‘부도’ 소식도 들려오는 상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에만 248곳의 종합건설사가 폐업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폐업한 건수가 362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하반기 건설업의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원자재 비용 상승이 불가피한 데다, 신용도까지 줄줄이 낮아져 이자 부담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국은 ‘부실 공사’ 논란이 무량판 공법의 문제라거나 일부 건설사만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당국은 ‘부실 공사’ 논란이 무량판 공법의 문제라거나 일부 건설사만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당초 정부가 무량판 구조 적용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무량판 공법을 건설사에 독려했다는 점에서 정부도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도 공공·민간 아파트에 무량판 구조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는데 해당 공법을 적용한 아파트에 대해서만 안전성을 조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가 건설사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알지만 비용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원 장관은 “기준에 맞게 설계했는지, 철근을 제대로 넣고 시공한건지, 시공 과정에서 감리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수조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순살 아파트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LH 퇴직자의 ‘전관 특혜’ 의혹도 거론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LH 출신들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공공사업 수주 과정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며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관련 LH 전관 특혜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LH가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 이후 해체 수준의 혁신을 이루겠다고 공언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토교통부에 “LH 혁신과 건설 카르텔 혁파를 차질 없이 이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한준 LH 사장 역시 전체 임원의 사직서를 받아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했다. 이 사장은 “LH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전체 임원의 사직서를 받고 새로운 인사를 통해 LH를 변화시키겠다”며 “조직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권한과 조직을 축소해 작지만 강한 조직, 오로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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