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일상 덮친 공포에 시민 불안 확산
[이슈메이커] 일상 덮친 공포에 시민 불안 확산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08.23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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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립된 청년이 시한폭탄 존재로
전국에 ‘살인 예고’ 게시글도 기승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일상 덮친 공포에 시민 불안 확산

 

연이어 나타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의 공통된 요소는 피의자가 ‘고립된 외톨이’라는 점이었다. 열패감 속에 자신의 환경을 비관하여 사회를 향한 분노를 흉악 범죄로 표출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 기저에 자리한 분노가 얼마나 위험 수위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모방범죄로 살인 예고 글이 난무하는 것은 누군가가 가진 불만의 크기가 매우 크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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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수위 넘어선 청년들의 불안

분노와 충동 조절 장애는 개인적 감정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잔혹한 범죄로 분출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화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벌이는 분노 범죄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현상이 된 지 오래다. 경찰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21년 발생한 범죄 124만 7,680건 중 19.1%가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죄였다. 이는 경찰이 파악한 범행 동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러한 우발적 범행 동기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범죄에서 더욱 뚜렷한 경향성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히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속에서 사회적 불만이 누적된 분노 감정이 폭발하면서 타인에 대한 공격적 범죄 형태로 표출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고립된 외톨이’는 반복된 실패의 경험과 건전한 사회적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불만을 키워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폭발하고 만다. 자신을 향했던 가학성이 타인을 향한 무차별 범죄로 전이되는 형국이다.

 

고립된 외톨이로 향하는 청년들의 불안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20대 불안장애 환자는 2017~2021년 5만 9,080명에서 11만 351명으로 86.8%나 증가했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 조사에선 만 19~34세 청년 중 ‘은둔형 외톨이’가 24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태로운 청년들의 고립과 불안이 언제 분노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인 셈이다. 한민 아주대 심리학과 겸임교수는 “소위 ‘N포세대’라 불리는 20∼30대는 특히 사회가 더 경직되고 취업이나 내 집 마련 등이 어려워지면서 좌절 경험이 누적되고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더욱이 고단한 청년들의 현실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쉰 청년(15~29세)은 39만 명으로 5년 전보다 30% 늘었다. 지난 2분기 20대 이하의 은행 연체율(0.44%)도 역대 최고다.

 

 

흉기 난동과 범행 예고 글이 잇따르면서 경찰은 주요 지역에 장갑차까지 투입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흉기 난동과 범행 예고 글이 잇따르면서 경찰은 주요 지역에 장갑차까지 투입하는 등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제재 주장도

흉기 난동 사건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현상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마치 유행처럼 번져나간 ‘살인 예고’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신림역 살인 사건 이후 지난 8월 14일 오전 9시까지 전국에서 살인 예고 글 354건을 확인해 작성자 149명을 검거(구속 15명)했다고 밝혔다. 범행 피의자 가운데 10대 비율이 47.7%에 이르렀고, 게시글 다수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익명 게시판에 게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다시 불거졌다. 특히 디시인사이드는 지난 4월 ‘우울증 갤러리’가 청소년 범죄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자율규제 강화’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경찰이 망상을 범행 원인으로 지목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 역시 4년 전부터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며 반사회적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폭력 선동과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강하게 제재하고 있다”며 “거대 플랫폼이 된 디시인사이드도 책임감을 느끼고 자정작용을 해나가야 한다. 자율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땐 책임자들에게 혐오 표현과 폭력 선동을 방치한 데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처벌 강화 전 중장기 대책 필요 지적

법무부는 최근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살인 예고 및 공공장소 흉기 소지 처벌 규정 신설 등 엄벌 대책을 연이어 내놓는 중이다. 실제 일본과 미국 등 주요국들 역시 ‘묻지마 살인’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매년 집행하며 가장 강력한 대처로 엄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살상범죄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 전에 예방과 관리 대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묻지마 살인’이 1980년대부터 사회문제가 되었던 일본 사회가 내놓았던 해결책도 장기적 대책에 방점이 찍혔다. 일본 정부는 “사회적 유대가 희박할수록 범죄 행동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한다”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지난 2008년 7월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범정부적 종합 대책인 ‘범죄에 강한 사회 실현을 위한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행동 계획에는 자원봉사자가 고립된 시민들과 함께 소규모 집회, 육아 지원, 범죄·비행 방지 활동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같은 해 12월엔 12조엔 규모의 ‘신고용 대책’을 발표하며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취업을 장려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요건 완화, 실직자에 대한 주택수당과 생계보조금 지원 정책도 잇따라 내놨다.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처벌 강화 전에 예방과 관리 대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Pixabay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처벌 강화 전에 예방과 관리 대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Pixabay

 

경찰의 현장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10여 년 사이에 대한민국 경찰의 근무 방식이 기존의 도보 순찰 및 거점 순찰 대신 112 대응 중심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밀집돼 있는 곳에는 제복 입은 경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또 밀집 지역은 때에 따라 유동적이므로 이에 맞춰 경찰의 근무 체계가 유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서현역 사건 발생 이후 112 순찰차와 기동대 인력을 다중밀집 장소에 투입하고 주민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와 야간 합동 순찰을 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 모니터링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두드러지는 ‘과시 문화’에 대한 경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해 시민사회를 구성해온 유럽의 많은 나라는 지나친 과시를 사회적 평등의 감각을 해치는 행동으로 본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과시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부의 과시도 있겠지만, 최악으로 발현될 때는 지금처럼 공격성·폭력성을 가시화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한편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발맞춰 한덕수 국무총리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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