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을 가슴에 품은 소설가 한강
세계 문학을 가슴에 품은 소설가 한강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6.05.31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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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맨부커상, 국내 문학계에 한 획을 긋다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Cover Story] 소설가 한강
 


세계 문학을 가슴에 품은 소설가 한강


 

대한민국 최초 맨부커상 수상으로 국내 문학계에 한 획을 긋다


 


▲ⓒ김병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적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어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 맨부커상. 이 상을 주관하는 맨부커상선정위원회는 지난달 16일 밤(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을 아름답고도 그로테스크하게 다룬 소설이라 평가받는 이번 작품을 기점으로 문학 한류를 이끌고 있는 국내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도 배출돼 한국 문학의 금자탑을 세울지 한국 문학의 귀추가 주목된다. 




세계 문학상의 갈증을 풀어준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가 한강의 이번 맨부커상 수상은 국내외 문학계에 많은 이슈를 몰고 왔다. 번번이 노벨문학상에서 고배를 마셨던 대한민국 문학계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고, 세계인들이 한국 문학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 중심에 선 소설가 한강.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한강은 1970년 광주광역시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났다. 1970년대 생 대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한강은 소설가 데뷔전 시로 먼저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도 시심(詩心)어린 단아한 문장이 빛을 낸다. 이후 2005년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역사상 처음으로 70년대 생 작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파란을 일으켰고, 2010년에는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탄탄한 서사, 비극성을 띤 작품 세계로 일찌감치 ‘차세대 한국 문학의 기수’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소년이 온다’, ‘여수의 사랑’, ‘붉은꽃 이야기’, ‘희랍어 시간’,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을 출간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의 작품들은 작가가 구현하는 문체에 비해 상반되는 폭력성에 대한 주제이다. 이번 수상작인 ‘채식주의자’ 역시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한강 특유의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소설은 욕망, 식물성, 죽음, 존재론 등 인간의 보편적 문제에 닿아 있다. ‘검은 사슴’(1998·문학동네), ‘내 여자의 열매’(2000·창비), ‘그대의 차가운 손’(2002·문학과지성사), ‘바람이 분다, 가라’(2010·문학과지성사) 등 발표한 대부분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식물화 되어 가는 여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알몸 스트리킹하는 여성, 촉망받는 한 여성작가의 죽음 등을 소재로 일상에 스며든, 작지만 깊은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작가의 문제의식은 마침내 1980년 광주 사건을 다룬 ‘소년이 온다’(2014·창비)에서 정치적 권력의 폭력 문제를 건드리며 절정을 이룬다. 

 
이번 ‘채식주의자’는 연작 소설로,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폭력성을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에 다가가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한다. 영혜는 어린 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혀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는 식물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며 책은 각기 다른 세 편의 중편을 엮었는데, 표제작인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인 영혜의 형부, 세 번째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각각 화자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폭력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게 가능한가. 그런 질문들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한강에 대해 “고통과 상처를 섣불리 쉽게 화해시키려 하지 않고, 회복과 구원의 계기를 성찰해 온 작가”라며 “‘채식주의자’는 그중에서도 일종의 분기점과 같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인간의 고통에 천착한 작가가 한강뿐만은 아니지만, 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가 더해졌기에 빛났던 것 같다”며 “고통마저 정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한강이 자신의 소설 ‘노랑무늬 영원’에 썼듯, ‘너무 아름다운 것도 고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강의 문체”라고 말했다.

 

한국과 세계문학의 낙차가 없음을 증명 해내다

한강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세계 일곱 번째 수상자다. 또, 대한민국은 6번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국으로서 그 위상을 높였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2005년 이스마일 카다레를 시작으로, 2015년 라슬로 크라스나오카이까지 전 세계 작가들에게 영예를 안겼다. 미국은 필립 로스, 리디아 다비스 등 이 상을 유일하게 복수 배출한 나라이며, 알바니아, 나이지리아, 캐나다, 헝가리는 수상자를 1인씩 배출했다. 한국은 이제 여섯 번째 수상국의 명성을 확보했다. ‘채식주의자’는 알바니어아와 헝가리어 외에 영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다섯 번째 수상작이다.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통칭되는 맨부커상은 1969년 영국 출판사 부커사가 제정했고, 2002년 맨(MAn)그룹이 후원자로 나서면서 명칭이 ‘맨부커(The Man Booker)상’으로 바뀌었다. 한강이 수상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비(非)영연방 작가들에게 수여한다. 한강 이전에 한국 작가가 이 부문의 후보자로 거명된 적은 없다. 한강은 최초의 한국인 수상자이자 최연소 수상자이다. 

 
또한, 이번 ‘채식주의자’가 넘은 경쟁작들의 작품 수준도 깊고 높았다. 노동교화소에서 핍박받는 인물들의 현실을 다룬 옌렌케의 ‘The Four Books’와 이스탄불 거주민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A Strangeness in my Mind’,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안드레아스가 아내 마리와 태중의 아이를 잃고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모습을 그린 로버트 시탈러의 ‘A Whole Life’가 대표적 경쟁작이었다.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 반열에 오른 작가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영애를 거머쥔 한강에게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순수한 문학적 평가를 통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탄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세계 속의 문학이면서도 언어장벽에 가로막혀 절연돼 있던 한국문학이 번역으로써 장벽을 허물었다. 한국문학이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라는 틀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한국문학 위기설이란 쓸데없는 경멸의 담론에 대한 저항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극찬했다. 아울러 “이미 한국문학이 지역적인 내부 문제뿐 아니라 세계적 공감을 살 만한 주제와 이미 만나고 있었음을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세계문학의 낙차가 없음을 증명해낸 것이 그 핵심인 것이다.

 

‘번역’이라는 촉매로 세계로 뻗어 나갈 ‘날개’를 달다


한편, 이번 수상에 대해 복수의 전문가들은 작품에 대한 찬사와 함께 번역에 대한 놀라움도 감추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공동 수상자로 ‘채식주의자’의 번역을 맡았던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는 한강보다 먼저 눈물을 터뜨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스미스는 ‘좋은 감정, 좋은 눈물’(Good emotions, good tears)이라는 짧은 두 문장으로 감정을 정리했다. 시적 문장을 즐기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어 “한국에는 세계적 작가가 많은데 영어권에선 누구도 몰랐다. 마치 수십 년 전 프랑스에 가서 (알베르)카뮈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왜 (번역자를) 안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좋은 작품은 영어로 번역돼도 좋아야 한다’는 스미스의 말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것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수여하는 이유이다. 

 
이번 2016년 맨부커상의 심사위원장인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톤킨은 수상작에 대해 “놀랍도록 힘이 넘치는 작품이며 음산하면서도 잔혹한 소설”이라면서 “그러면서도 매우 아름답게 쓰였고 번역도 뛰어나다”고 평을 내놓았을 정도다. 또, 그의 번역을 두고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경이롭다’(marvel)고 했다. 톤킨 위원장은 “아름다움과 공포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작품을 완벽하고 올바르게 옮겼다”고 했다. 선정위는 그의 이력에도 놀란 듯했다. 최종심에 오른 6편의 번역자 중 2명이 20대인데 스미스가 그중 한 명으로 21살 이후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에서 번역가 스미스에 대한 조명이 단순히 번역하는 능력에만 큰 화제가 된 것은 아니다. 훌륭한 번역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날개를 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수상을 통해 최근 문학의 죽음이 거론될 만큼 위기에 놓인 우리 문학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번역원 관계자는 “한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원어민 전담 번역가들의 양성은 작품성 획득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한 대한민국 문학


이번 한강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으로 국내 문학계는 순항의 돛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문학 작품과 작가에 대한 국내외의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한국문학의 세계 진출도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근거로 벌써 ‘포스트 한강은 누가 될까?’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한강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소식을 전할 작가들로는 이승우(57), 신경숙(53), 김영하(48), 정유정(50), 배수아(51), 박민규(48), 김중혁(45), 편혜영(44) 등 40∼50대 ‘중견 작가’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해방과 분단의 상처에 집중했던 선배 작가들과는 달리 보편적인 소재를 뛰어난 상상력으로 풀어내 세계 문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 중 국내에서는 마니아층을 벗어나지 못하는 배수아와 편혜영은 해외 진출은 누구보다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배수아의 작품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맡아 신뢰가 높다. 스미스는 배수아의 ‘서울의 낮은 언덕들’을 번역 중이며 이미 번역된 장편 ‘철수’는 아마존닷컴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철수’는 미국 뉴욕 펜 번역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다. 편혜영은 장편소설 ‘재와 빨강’ ‘홀’이 각각 내년과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김중혁과 박민규도 개성 넘치는 글로 해외에서 통할 수 있는 작가 ‘0순위’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강의 수상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외국 유수의 출판사들이 번역 문의를 해오고 있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라며 “재미있고 유익해야 한다. 또 보편적 주제를 다루되 소재는 한국의 것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 요즘 세계 문학의 트렌드인 추리소설이나 판타지, 미래과학소설을 첨가하면 한국문학은 세계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가 한강의 수상으로 그동안 장기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 문학에 재기의 발판이 마련된 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이번 수상을 문학의 터전을 제대로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젊고 유능한 작가 양성은 물론 번역가 양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모처럼 찾아온 대한민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작가와 독자, 그리고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틀을 단단히 할 최선의 선택이 대한민국 문학계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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