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탄생 40주년 맞은 ‘제2의 언어’
[이슈메이커] 탄생 40주년 맞은 ‘제2의 언어’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11.14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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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통용
새로운 직업 탄생시키며 산업 형성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탄생 40주년 맞은 ‘제2의 언어’
 
‘감정(emotion)’과 ‘성상(icon)’의 합성어로, 텍스트 아닌 형태의 감정 전달 수단을 뜻하는 ‘이모티콘’이 올해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처음 단순 구두점 조합에서 출발해 그래픽을 활용한 2세대와 움직이는 그림의 3세대 방식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전체 이미지를 활용하는 이모지(emoji)까지 놀라운 진화를 이루며 모바일 세상에선 ‘제2의 언어’로 자리매김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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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맥락 중시하는 한국말에 적합
최초의 이모티콘은 구두점인 콜론 ‘:’과 하이픈 ‘-’, 오른쪽 괄호 ‘)’를 합쳐 사람의 웃는 표정을 나타낸 ‘:-)’다. 1982년 9월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과학과의 스콧 팔먼 교수가 만들어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팔먼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에 글만 쓰던 시대엔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을 알 수 없어 진의를 구별하기 힘들었다”며 “이모티콘이란 수단이 온라인 세상에서 ‘감정의 교감’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100여 년 전에 이모티콘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1862년 8월 7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링컨 대통령 연설문 중 ‘웃음(laughter)’이라는 단어 옆에 적힌 ‘;)’가 효시라는 설이 있고, 1881년 미국 풍자 잡지 ‘퍽(Puck)’에 모스 부호로 네 가지 표정을 나타낸 게 시초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그러나 기네스북은 팔먼 교수의 이모티콘을 최초로 인정했다.
 
 
최초의 이모티콘은 1982년 9월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과학과의 스콧 팔먼 교수가 만들어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CMU School of Computer Science 트위터
최초의 이모티콘은 1982년 9월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과학과의 스콧 팔먼 교수가 만들어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CMU School of Computer Science 트위터

 

한국은 이모티콘에 더욱 열광하는 국가이다.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어도비의 보고서 ‘2021년 글로벌 이모지 트렌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에 비해 이모티콘 사용 빈도가 10%포인트 이상 높다. ‘카카오톡’을 만든 카카오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시된 이모티콘은 약 30만 개나 되며, 메신저로 발신한 이모티콘도 2,200억 건이 넘는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이모티콘을 한 달에 평균 1개 이상 구매한다는 통계청 조사 결과도 있다. 어도비 보고서의 설문에 응한 한국인의 76%가 “글자보다 이모티콘 사용을 선호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인은 친구나 연인, 가족과의 개인적인 소통은 물론 직장 등 조직 생활에서도 이모티콘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왜 한국인은 이토록 이모티콘을 사랑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는 대화에서 ‘분위기’를 중시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딱딱한 문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도 할 수 있고, 대답하기 애매한 상황을 적당하게 넘기기에도 요긴하다는 것이다. 조현용 경희대 한국어교육전공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는 문자 그대로 의미를 전달하는 ‘직관적’ 성격이 강하지만 한글은 어떤 상황이나 맥락인지를 봐야 하는 ‘복합적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를테면 ‘밥 먹었냐’는 말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인사로 쓰이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모티콘 이용자가 늘고 시장이 커지면서 월 구독료를 내고 무제한 이모티콘을 받는 유료 서비스도 생겨났다. ⓒ카카오
이모티콘 이용자가 늘고 시장이 커지면서 월 구독료를 내고 무제한 이모티콘을 받는 유료 서비스도 생겨났다. ⓒ카카오

 

월 1억 버는 ‘스타 작가’도 나타나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국내 이모티콘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카톡이 이모티콘을 처음 선보인 2011년 11월 이후 이듬해인 2012년 월간 평균 이모티콘 발송량은 약 4억 건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기준 카톡으로 한 달 평균 발송되는 이모티콘은 24억 건에 달한다.
 
자연스럽게 이모티콘 구매자들도 늘었다. 지난해 이모티콘을 한 번이라도 구입한 누적 이용자는 약 2,400만 명에 달하고 지난 10년 동안 카톡 이모티콘의 총 수익 규모도 약 7,000억 원에 이른다. 월 구독료를 내고 무제한 이모티콘을 받는 유료 서비스도 생겨났다.
 
 
한국인은 친구나 연인, 가족과의 개인적인 소통은 물론 직장 등 조직 생활에서도 이모티콘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ixabay
한국인은 친구나 연인, 가족과의 개인적인 소통은 물론 직장 등 조직 생활에서도 이모티콘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ixabay

 

이모티콘 산업의 성장은 ‘이모티콘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군도 낳았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이모티콘 작가는 1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최연소 작가인 12세부터 81세 작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활동 중인데, 특히 태어날 때부터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게 일상이었던 MZ세대가 많다. 지난해 이모티콘 작가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20대가 49.9%로 가장 많고 30대가 34.5%로 두 번째다. 이제는 월 수익 1억 원에 이르는 ‘스타 작가’까지 탄생했다. 폭발적 인기를 얻은 ‘히트작’들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어 대기업과 협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작가가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팬덤을 구축하기도 하고, 해당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를 판매하는 사업자가 되기도 한다. 이에 신진 작가들을 다수 영입해 이모티콘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스튜디오까지 등장했고, 최근엔 대학 등에서 이모티콘 제작 강의가 생기걱나 관련 책들도 100여 권 이상 출판됐다.
 
하지만 모두가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의 경우 1주일에 제안된 1,500여 건 중 상품화되는 것은 20여 건뿐이다. 10여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쏟아지는 후보작들의 상품 가치를 판별해 시장에 내놓는 관문 역할을 맡는다. 이미지와 콘셉트, 내용 등을 기획해 최종 20여 컷의 이모티콘을 그려내기까지 약 2주일이 걸리고, 카카오 승인 뒤 보완 작업을 거쳐 상품이 출시되려면 2~6개월이 소요된다. 좁은 문을 뚫고 상품을 등록하더라도 소비자가 2,500원짜리 이모티콘 세트를 구입할 때 구글·애플의 인앱결제 비용 750원(30%)과 카카오 수수료 1,000원(40%)을 떼고 작가는 750원(30%)을 갖는 정도라고 한다. 이로 인해 작가들과 카카오톡 간의 갈등도 있었다. 이모티콘 심사에서 탈락한 일부 창작자들이 2020년 4월 카카오에 노력의 대가를 배상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카카오의 불투명한 심사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소송이었다.
 
 
이모티콘의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지는 중이다. ⓒPixabay
이모티콘의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지는 중이다. ⓒPixabay

 

사회적 윤리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져
이모티콘은 이제 젊은 세대에겐 ‘컬처 자이언트’로 자리 잡았다. 지난 7월 ‘세계 이모티콘의 날’을 맞아 ‘슬랙’이 발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이모티콘 없이는 메시지가 ‘불충분’하다고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다.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이 곧장 이모티콘으로 제작되는 건 물론, 이모티콘 자체가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M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이모티콘도 많다.
 
이모티콘이 국제 통용어로 성장하면서 국제표준을 정하는 움직임도 있다. 세계의 모든 문자를 다루도록 설계된 표준 문자 전산 처리 방식인 ‘유니코드(Unicode)’를 규율하는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2019년부터 해마다 ‘다양성 이모티콘’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좋아요’(엄지손가락 치켜세우기)와 ‘하이파이브’(손바닥 마주치기) 등의 이모티콘을 3가지 피부색과 성별에 따라 모두 만들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컨소시엄 측은 “남녀는 물론이고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을 다양하게 표현한 이모티콘이 인종과 민족, 성별의 벽을 허물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구글이 남성으로만 제작했던 과학자와 용접공, 정비공, 농부 등의 이모티콘을 여성으로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이모티콘의 영향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지는 중이다. 특히 이모티콘의 사회적 윤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여서 카카오는 올해 1월 내부 가이드라인인 ‘이모티콘 창작자 윤리 지침’에 증오 발언 근절 원칙을 추가했다. 카카오는 “창작자들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 발언과 사회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을 경계하도록 하자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윤리 지침에는 ‘특정 개인·집단을 멸시하거나 조롱하는 표현’, ‘학교폭력 등 집단 괴롭힘 관련 표현’, ‘외모를 평가하거나 비하하는 표현’, ‘특정 질병·장애를 희화화하는 표현’, ‘특정 종교를 희화화하는 표현’ 등 구체적인 제한이 담겨 이러한 이모티콘은 출시 자체를 금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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