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강경파 ‘처럼회’ 해체 요구 제기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내부 갈등으로 시끄러운 여야, 민생은 뒷전
여야 모두 당내 ‘사조직’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민들레’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처럼회’가 내홍의 진앙으로 지목됐다. 여야 모두 겉으로는 계파 정치를 탈피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전당대회와 총선 공천권을 놓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사이 민생현안은 뒤로 밀려난 모습이다.
권력투쟁 돌입하는 국민의힘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을 구심으로 세력을 구축하려는 ‘계파 본색’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당내 모임으로 출범하려던 ‘민들레(민심을 들을래)’ 모임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의 측근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일했던 장제원, 이용호, 이철규 의원 등이 주축이 돼 결성하려던 모임이었지만 곧바로 당내에서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사조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와 ‘친윤계’ 맏형 격인 정진석 의원이 거친 표현을 써가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준석 대표는 물론 윤핵관 그룹의 권성동 원내대표도 민들레 모임에 제동을 걸자, 결국 장제원 의원이 민들레에서 빠지고, 모임의 성격을 오픈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으로 바꿨다. 하지만 친윤계 성격이 강한 데다 장 의원 또한 배후에서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커 윤핵관 세력으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민들레 측은 논란이 재연되지 않도록 충분한 준비작업을 거치고서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국민의힘 공천제도를 다룰 혁신위원회와 김기현 전 원내대표가 주축이 된 ‘새미래(혁신24 새로운 미래)’가 잇따라 출범하며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혁신위와 민들레, 새미래로 분할돼 신경전이 더 첨예해질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공천제도 개혁과 윤석열 정부 뒷받침 등 저마다 표방한 기치 이면에는 치열해진 당권투쟁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처럼회’ 해체론 번지는 민주당
민주당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연패를 한 상황이지만 주류 계파 간 충돌이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선거 패배의 책임론과 함께 오는 8월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놓고 당내 계파들이 첨예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어서다. 대선 전후 신주류로 떠오른 ‘친이재명(친명)계’는 이재명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요구했고, 구주류인 친문재인계를 비롯한 ‘비이재명(비명)계’에서는 이 의원의 책임론을 추궁하고 나섰다.
여기에 ‘수박논쟁’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정세균계이자 비이재명계인 이원욱 의원이 페이스북에 “수박 정말 맛있네요”라며 올린 사진 때문이다. 그러자 친이재명계인 김남국 의원은 “국민에게 시비걸듯이 조롱과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려서 일부러 화를 유발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 같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 의원은 “명백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정치 훌리건의 행태는 중지돼야 한다고 지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참에 계파 청산 차원에서 민주당 강경파 초선 모임인 ‘처럼회’ 해산을 권유했다. 이에 김 의원은 “지금까지 계파정치로 천수를 누렸던 분들이 느닷없이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영구처럼 ‘계파 없다’ 이러면 잘못된 계파정치 문화가 사라지는 거냐”고 재반박했다.
계파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자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박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 안 두겠다. 인신공격, 흑색선전, 계파적 분열의 언어는 엄격히 금지시키겠다”고 질타하며 중재에 나서기까지 했다. 민주당에선 정책 모임인 ‘민평련(민주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 ‘민주주의 4.0’, ‘더좋은미래’, ‘처럼회’ 등 모임도 해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계파 분란 과정 거쳐 해체
정당 내 사모임은 만드는 게 자유롭고 가입에 제약도 없으며, 당의 관리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 현안을 다루는 공부 모임부터 기수를 중심으로 뭉친 모임, 정부와 특정 정치인을 보좌하는 ‘친위대’ 성격까지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다. 한국 계파정치의 시작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에서 시작되어, ‘친이(친이명박)’의 ‘함께 내일로‘, ’친박(친박근혜)‘의 ‘국회선진사회연구포럼’, ‘친문(친문재인)’의 ‘민주주의 4.0’ 등이 이어받았다.
정치권에선 정당 내 사모임이 실제 취지에 맞게 운영된다면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당내 다른 세력 견제용으로 뭉치는 모임이 생겨나면, 당의 존폐 위기까지 번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당 자체가 이념과 노선을 함께하는 조직인데, 그 안에서 다시 계파를 나누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계파는 시간을 지나 분란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보수 정당의 경우 ‘내일로’가 선거 개입 논란에 휘말린 끝에 사라졌고, 여의포럼과 선진사회연구포럼은 2011년 말 ‘박근혜 비대위’ 출범 뒤 계파 해제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해산 결정을 내렸다. 민주 진영 역시 21대 총선을 앞두고 친문 의원을 주축으로 한 비공개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비문 진영이 반발하며 2018년 7월 해체를 결정했다.
이처럼 그간의 결과를 보면 정답이 명백함에도 정치권은 다시 계파 정치의 늪에 발을 들이고 있다. 이를 두고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계파 정치 때문에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계파의 리더들이 리더십을 보여서라도 국민을 위한 정치로 돌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삶은 뒷전에 두고 차기 당권 경쟁에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