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패권경쟁이 불러온 ‘요소수 대란’
G2 패권경쟁이 불러온 ‘요소수 대란’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11.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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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G2 패권경쟁이 불러온 ‘요소수 대란’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으로 시작된 요소수 수급 대란이 산업계를 강타하면서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기존 계약물량 요소를 들여오기로 하면서 급한 불은 끄게 됐지만, 차량용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의 97.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전해지며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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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호주 사이 틀어지며 ‘나비효과’ 발생

디젤 화물차량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수 부족으로 인한 대란은 지난 10월 15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가 요소를 포함한 화학비료 관련 29개 품목에 대해 수출 검사를 의무화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요소수의 원료인 요소에 대해 수출 전 검사를 하는 방식으로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해버린 뒤 자국 내 석탄 부족과 전력난이 겹쳐 화학 비료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그 결과 석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요소 생산이 위축됐다. 이에 중국은 내수 시장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수출 제한과 다름없는 조치를 내리면서 중국산 요소 수입량이 급감했고, 차량용 요소수 제조에 필요한 요소의 대부분을 중국산에 의지하는 한국은 직격탄을 맞았다.

 

요소수는 디젤(Diesel) 차량의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인체에 해가 없는 질소와 이산화탄소로 바꾸는 저감장치(SCR)에 들어가는 필수품목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부터 모든 디젤차에 SCR 장착을 의무화했다. 그래서 이를 장착한 차량은 요소수가 없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요소수 품귀 상황이 지속되었을 경우 물류 업계와 택배 업계, 건설과 철강업계까지 악영향이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었다.

 

 

요소의 97.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속에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요소의 97.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속에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중국에서 요소 1만8700t 들여오기로 하면서 한숨은 돌린 상태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이미 중국과 계약해둔 물량으로 차량용은 1만300t, 산업용은 8400t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민간 기업이 보유한 차량용 요소수 재고도 확인했다. 이미 발표한 호주, 베트남 수입 물량과 중국 물량, 국내 재고를 더하면 약 2, 3개월 치 차량용 요소수를 확보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중국과 호주는 원래 석탄과 철광석 등 원자재 교역으로 끈끈하게 묶인 관계였지만, 미·중 갈등 상황에서 호주가 미국 편에서 중국 포위망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으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의 국제 조사를 요구한 것도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히 지난해 8월 출범한 ‘쿼드(Quad·미국 주도의 4국 안보 협의체)’에 호주가 동참하고, 올해 9월 미국·영국·호주를 중심으로 한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가 등장하며 이러한 구도는 더 선명해졌다.

 

이에 중국은 호주에 무역 보복을 가하기 위해 지난해 5월 호주산 쇠고기·보리 수입에 제재를 가했고, 10월부터는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 결국 석탄 수입 중단은 중국 내 석탄 부족과 전력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석탄을 원료로 하는 요소의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 속 호주가 미국의 편에 서게 되며 발생한 중국과 호주의 무역 갈등이 한국의 요소수 대란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미·중 패권 경쟁 속 호주가 미국의 편에 서게 되며 발생한 중국과 호주의 무역 갈등이 한국의 요소수 대란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제2의 요소수 사태’ 우려되는 취약 구조

중국과 호주의 외교 갈등이 요소수 대란으로 이어진 것처럼, 한국과는 큰 상관이 없어보이던 외교 사안이 국내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세계 패권 경쟁의 중심으로 진입한 이후 그간 직간접적 피해를 여러 번 입어왔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 이어지면 경제 안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중 갈등으로 인해 한국이 피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7월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은 한국 관광을 막고 한국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등 경제 보복을 가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은행은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관광 수입이 21조원 이상 줄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업체의 5세대 장비가 중국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화웨이의 5G 장비를 배제할 것을 동맹국에 요구하자 이 과정에서 LG유플러스가 미국의 압박을 받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G2의 패권 경쟁이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해외산업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는 많지 없지만, 특히 한국은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가 뭉쳐있는 곳과 달리 홀로 움직여야 해 대응력이 약하다”며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서로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이들의 분쟁에 따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되는 뿐이다.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수입품 1만 2,586개를 분석한 결과, 중국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이 무려 1,850개에 달해 미국(503개)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80%를 넘는 품목도 31.3%(3941개)에 이른다. 이처럼 중국이 생산과 수출을 통제할 경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이 적지 않다. 희토류를 원료로 만드는 영구자석은 중국 비율이 86%에 달하고,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 들어가는 수산화리튬 역시 중국산 비율이 85%에 이른다. 특정국에 의존하는 현재의 공급망 체계로는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미국과 공급망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중국이 자국 의존도가 높은 물자를 압박용 카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이 주도하는 틀로 재편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Flickr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이 주도하는 틀로 재편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Flickr

 

경제 안보 대응 체계 마련 분주한 정부

이번 요소수 대란은 국제사회에서 경제와 안보, 외교가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됐다. 제3국 간 외교 갈등이 언제든지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그래서 미·중 갈등 속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재편 대응이나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전략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경제 안보 이슈로 꼽힌다.

 

이 중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지닌 반도체·배터리 공급망은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핵심 안보 사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공급망 교란이 생산·제조를 중국에 의존하는 국제 분업체계의 리스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틈을 타서 반도체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이 주도하는 틀로 재편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글로벌 공급망 정상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한국 등 14개국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해 ‘하나의 소스에 의존하지 않는, 다각적인’, ‘강제노동과 아동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급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제를 안보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정부도 이를 아우르는 대응 체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경제를 안보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정부도 이를 아우르는 대응 체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논의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 중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 열린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 제조업 분야 공급망 협력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백악관이 반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 검토 결과를 담아 지난 6월 발표한 ‘공급망 회복력 전략’ 보고서에도 한국이 74차례나 언급됐고, 한국 기업들의 이름도 40여 차례 등장했다. 그만큼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주요 협력 대상국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의 관점에서 협력을 강조하는 부분이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를 난처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미 상무부는 최근 반도체 공급망 상황을 자체 조사하겠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반도체 공급망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11월 8일 두 기업은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도 자료를 내는 등 전 세계 189개 반도체 기업이 미국의 요구에 따랐다. 이에 대해 반도체 원천기술과 장비를 쥐고 있는 미국이 제조 기업들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경제를 안보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정부도 이를 아우르는 대응 체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장관급 회의체인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발족한 데 이어, 외교부 역시 임시 조직 형태로 경제안보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번 요소수 사태를 반면교사 삼고, 재편되는 공급망 상황 속에 마련된 경제 안보 시스템이 해외 의존도가 높은 공급망 점검과 해외 동향 파악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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