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비’ 故 유상철 감독을 기억하며...
'영원한 유비’ 故 유상철 감독을 기억하며...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1.06.09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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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영원한 유비’ 故 유상철 감독을 기억하며...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온통 붉은 물결이었다. 23인의 태극전사들이 만들어낸 투혼과 국민 모두가 외친 ‘대한민국’이 힘을 합쳐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아직도 그날의 흥분과 감동이 여전히 강렬하지만, 그로부터 20년 후 4강 신화의 주역인 영원한 ‘유비’ 유상철 감독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기자 역시 2002년 당시 고3 수험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길거리 응원에 나서 목놓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황선홍, 김남일, 설기현, 홍명보, 이운재 등 수많은 태극전사가 월드컵 이후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기자의 마음속 원픽은 단연 유상철 감독이었다. 그렇기에 2017년 가을 어느 날, 유상철 감독을 만나기 위해 당시 그가 감독을 맡은 울산대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묘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기자가 아닌 팬심과 사심이 가득 담긴 인터뷰였다. 비록 당시에는 대학 축구 감독을 맡았지만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축구의 희망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꼭 프로팀 감독으로의 복귀 의지도 밝혔다. 감독 유상철, 축구인 유상철의 인생 2막을 기대한다는 그의 다짐대로 유상철 감독은 곧 K리그 감독으로 복귀했다. 역시 유상철이라는 생각에 팬심은 짙어졌으며 그의 투병 소식이 전해질 때도 유상철답게 훌훌 털고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터뷰 이후 가끔 근황과 안부를 전하는 사이였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메신저의 읽음 표시와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유상철 감독의 영면이 실감 나는 하루다. 

축구공 하나로 대한민국을 웃고 울렸던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故 유상철 감독.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웃으며 원하는 축구 실컷 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는 이슈메이커 2017년 11월호에 게재됐던 故 유상철 감독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지도자로서 그라운드에 그려가는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자 노력할 것​

 

축구 도시 울산을 지키는 영원한 레전드

그동안 대한민국 프로스포츠는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지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해왔다. 그렇기에 프로 선수들 역시 소속팀과 팬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들 대부분은 본인이 처음 입단한 구단, 처음 응원을 보내준 팬, 처음 입은 유니폼을 쉽게 잊지 못한다고 한다. 프로라면 자신이 데뷔한 구단의 팬들 앞에서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길 꿈꾼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더 나은 조건을 위해 선수 스스로가 정든 팀을 떠나기도 하며 팀의 이해관계에 따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속 구단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원클럽맨(본인의 경력을 한 팀에서만 마친 선수)이 드물고 이런 선수들이 구단의 레전드로 존중받는 이유이다. 

지난 2014년부터 울산대학교 축구부를 이끌고 있는 유상철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하는 뛰어난 선수였지만 울산 시민들이 바라보는 유 감독은 국가대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프로 데뷔를 울산 현대에서 했으며 해외 진출 이후 국내 복귀 당시 주저 없이 울산으로 돌아왔고 해당년도 팬들에게 약속한 우승도 이뤄냈다. 또한 이듬해 울산의 유니폼을 입고 은퇴해 원클럽맨으로 남게 됐고, 은퇴 이후에도 울산대 축구부 감독을 맡으며 지역 축구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울산 축구의 버팀목이자 레전드로 묵묵히 제2의 축구 인생을 그라운드 위에서 그려나가는 유상철 감독의 이야기를 이슈메이커가 함께해 보았다. 

Q. 현역 시절은 물론 지도자로서도 울산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울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 저는 태어나서부터 프로 입단 전까지 줄곧 서울에서 지냈습니다.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 이후 처음 울산에 내려왔을 당시를 떠올려보면 사실 낯설고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울산에 머물게 되며 그런 느낌을 점차 사라졌고 지금은 고향보다 편한 곳이 울산입니다. 많이 사람이 저에게 울산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울산은 이를 넘어선 운명처럼 다가올 정도로 각별한 도시입니다. 

Q. 2017년은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울산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을까요?

- 일본에서 뛰었던 시간을 제외하면 제 축구 인생의 모든 커리어는 울산에서 이뤄졌습니다. 처음 제가 울산에 입단했을 당시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울산 시민들은 한결같은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할 만큼 울산 시민들의 사랑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아껴주셨던 것만큼 앞으로는 K-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울산 현대와 울산대학교 축구팀을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Q. 2014년부터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이끌고 있습니다. 프로팀 감독이 대학 축구팀 감독을 맡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저에게는 울산대 축구부 감독직 선택이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울산대 측에서 제안을 해주셨을 때 저는 망설임 없이 YES라고 답했습니다. 만약 다른 지역의 대학이었다면 저 역시도 고민을 했겠지만, 울산은 앞서 말했듯이 저에겐 운명 같은 도시이고 그동안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는 제가 보답해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기에 흔쾌히 감독직을 수락했습니다.

Q. 최근 은퇴 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방송인이 아닌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선수가 감독으로서 본인이 가지는 강점은 무엇입니까? 

- 간혹 방송을 통해 대중과 소통을 해왔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수줍음이 많아 방송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을 앞으로도 변함이 없기에 전업 방송인이 되고자하는 생각은 없으며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합니다. 일본에서 선수로 뛸 당시 그곳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됐습니다. 저 역시도 이와 같은 선진 유소년 교육을 국내에 도입하고 싶었기에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현역 시절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각 포지션마다 수행해야 하는 역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충을 모두 이해할 수 있기에 선수 관리와 조언에 있어 다른 지도자들보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 저 역시도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하며 선수들이 왜 저렇게 밖에 뛰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이는 선수들을 제 기준과 눈높이에 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감독으로서 좋은 자세가 아닌 것을 알지만 처음부터 내 눈높이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저 선수들과 같은 나이일 때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선수의 연령대 별 눈높이 교육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도자 육성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고 해외 선진 축구 역시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경험할 수 있기에 감독 스스로가 노력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선수생활 못지않은 노력으로 재미있는 축구, 좋은 성적을 거두는 지도자로 세간의 편견을 해소하겠습니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유상철 감독이 전하는 국가대표 유상철

우리 국민에게 축구 대표팀은 언제나 특별한 존재였으며 이들 역시 우리에게 1986년부터 2018년까지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성과를 선물하며 국민적 관심과 사랑에 보답해왔다. 하지만 최근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은 성공했음에도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협회의 행정능력 부족, 팬들과의 소통 결여 등을 문제로 이들을 향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축구 팬 사이에서는 2002 월드컵 4강 신화가 회자되고 당시 멤버들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유상철 감독 역시 당시의 주역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2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4강 신화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유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하진 않지만 그 어느 위치에서도 자신의 역할 이상을 해내는 믿음이 가는 선수였다. 더욱이 은퇴 이후 모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한 쪽 눈이 실명에 가까운 상황에서 월드컵 무대를 누볐다고 밝혀 팬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감독 유상철 이전의 선수 유상철, 왜 수많은 축구팬이 대한민국 축구사의 레전드로 그를 선택하는 것일까? 

Q.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순간은 아닙니다.

- 축구 선수에게 연습경기, K리그, 국가대표 A매치 등 어떤 경기에서라도 골을 넣는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골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영광스럽게도 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두 차례 골을 기록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 그 어떤 골보다 희열이 컸으며 심정지가 오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모든 세상이 정지되어 있고 저만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Q. 현역 시절 감독님은 국내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라운드 위 수많은 포지션 중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포지션은 무엇이었을까요?

- 축구 선수로의 시작은 윙백이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저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거쳤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스트라이커를 가장 선호합니다. 축구의 꽃은 골인 것처럼 골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할 수 있으며 가장 자유도가 높은 포지션이기 때문입니다. 

Q. 현역 시절 그라운드에 나설 때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으며, 본인의 선수 생활 돌이켜보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 경기에 임하기 전 어떤 포지션으로 출전하게 되더라도 그 포지션에 맞게끔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갈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봅니다. 경기의 승패는 나중 문제이기에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라운드 안에서 쏟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제 축구 인생은 시작부터 은퇴까지 한 길만을 걸어왔기에 저 스스로도 점수로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참 고생이 많았다’정도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Q. 모두의 예상과 달리 조금 이른 시기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아쉽지 않았나요? 은퇴 이후 팬들에게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 현역 생활의 마지막 목표를 2006년 독일 월드컵 출전이라고 세웠고 이를 이룬 이후 2007년 후회 없이 은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월드컵 출전도 어려웠고 은퇴 시기도 예상보다 앞당겨져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부상으로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재능 있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이후 팬들에게는 꼭 기억되고 싶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축구 선수 유상철은 화려한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고 제가 뛰었던 경기를 팬들이 기억할 때 ‘유상철이 없었으면 졌을꺼야’라는 이미지로 남고 싶습니다. 

Q. 본인의 축구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수 있는 장면은 무엇입니까?

- 사람들은 제가 월드컵에서 골을 넣거나 4강 진출 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축구를 포기하려 했다가 다시 마음을 잡았던 순간을 꼽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인터뷰에서도 밝힌 적 없지만 대학교 2학년 때 누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일로 축구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의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나가 생전 기록한 일기와 제 기사들을 모은 스크랩북을 우연히 발견하고 앞으로는 축구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당시 누나의 유품을 보지 못했던 지금의 유상철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Q. 감독 유상철의 향후 계획과 이슈메이커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 있을까요?

- 거창한 계획보다는 제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빠른 시간에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도 없으며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보다 지금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선수로서의 경험과 감독으로서의 경험은 다르다고 봅니다. 당장 먼 목표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감독으로 묵묵히 경험을 쌓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축구팬분들께 받아왔습니다. 그동안의 사랑에 대해 보답하는 길은 축구인으로서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독 유상철, 축구인 유상철의 인생 2막 기대 부탁드립니다. 

2017 K리그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많은 구단은 감독 교체를 염두하고 있고 자주 하마평에 오르는 이가 유상철 감독이다. 유 감독 역시 프로팀 감독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향후 구체적 제안이 오더라도 계약 조건보다는 구단의 축구 스타일이나 환경을 고려해 팀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유상철 감독은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팬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유 감독은 “최근 국내 축구 팬의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었고 게임을 통해 직접 선수들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기대치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을 너무 높게 잡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애정어린 질책과 함께 직접 축구장을 찾아 선수들이 발전하기 위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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