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재계 반발 속 공공기관 중심 도입 급물살
[이슈메이커] 재계 반발 속 공공기관 중심 도입 급물살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2.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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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재계 반발 속 공공기관 중심 도입 급물살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산하 공공기관위원회가 제도 도입을 합의한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영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노사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발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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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기업 투명성 제고 효과 얻을 것”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를 직접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다. 근로자 신분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다가 이사회가 열리면 노동조합이 선임한 이사가 근로자를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지방정부 조례 개정을 통해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지방 공공기관 수는 49이다. 이후 최근 들어 교통방송이 노동이사를 선출하고 몇몇 공공기관의 노동이사가 임명된 것을 고려하면 50곳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처음 도입한 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2016년 5월 전국 최초로 노동자 대표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8개 기관의 24개 노동자이사 자리가 확보된 상태다. 경기도 역시 이재명 지사가 취임한 이후 관련 조례 제정을 바탕으로 2019년 5월 공공기관 최초로 경기신용보증재단이 ‘노동이사’를 임명한 바 있다. 현재는 광주광역시와 인천, 울산시가 노동이사제를 시행 중이며, 대전시 역시 올해부터 정원 100명 이상 공공기관을 의무도입 대상으로 하는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노동이사제의 사전 단계로 여겨지는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도 늘고 있다. 이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를 참관하며 경우에 따라 질의할 수 있게 한 제도로 전체 공공기관의 23.8%가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이재명 지사가 취임한 이후 관련 조례 제정을 바탕으로 2019년 5월 경기신용보증재단이 ‘노동이사’를 임명했다. ⓒ경기도청
경기도는 이재명 지사가 취임한 이후 관련 조례 제정을 바탕으로 2019년 5월 경기신용보증재단이 ‘노동이사’를 임명했다. ⓒ경기도청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의견을 반영해 주요 결정을 할 수 있어 해당 사안에 대한 근로자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 노동계에선 노동이사제 도입이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이 서울시 공기업 이사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공기업 이사들은 노동이사제 도입 후 경영 투명성과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이 높아졌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실 적용이 미흡하거나 곳곳에서 마찰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는 현재까지 확보한 24개 노동자이사 자리 중 현재 활동 중인 노동자이사는 19명이고 나머지는 공석인 상태이며, 경기도는 총 27개 공공기관 중 17개 기관에만 도입이 되어있다. 인천시는 인천문화재단이 근로자 이사제 선출을 위해 2급 이상의 자격제한을 뒀지만 노조측이 “노동자 대표성이 없는 직급이 이사로 참여할 수 있다”고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고, 울산시도 도입 의무화 기관 기준을 두고 시민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를 실시할 것을 건의했다. ⓒ연합뉴스TV 뉴스화면 갈무리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를 실시할 것을 건의했다. ⓒ연합뉴스TV 뉴스화면 갈무리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 도입 확산 분위기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은 아직 노동이사제에 관한 근거 법률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 후 노동이사제를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확산시켜 갈 계획이다. 이에 발맞춰 기획재정부는 이날 2021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로 인해 올 연말까지 노동이사제를 채택하는 공공기관이 400곳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해 11월25일 ‘공공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며, 국회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를 조속히 실시하라고 건의했다. 현재 노동이사제 도입 등이 담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더불어민주당의 김경협, 김주영, 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3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이 중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은 노동이사 권한이 상대적으로 많은 개정안으로 꼽힌다. 근로자 500명 이상 공기업·준정부기관은 상임이사 중 노동이사 2인 이상을 포함해야 하며, 노동이사는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 소속 근로자들의 투표로 선출한다. 또한 500명 미만 기관은 1인 이상의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김주영 의원의 개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에서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가운데 근로자 대표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은 1인 이상을 노동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경협 의원의 개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근로자 대표가 추천한 1인을 노동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이다. 근로자 과반의 노조가 있으면 근로자 대표는 노조 대표이며, 과반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의 과반을 대표하는 자가 근로자 대표로 규정된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노동이사제를 통한 경제민주주의와 투명한 노사관계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법안 논의를 촉구한다. ⓒ박주민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노동이사제를 통한 경제민주주의와 투명한 노사관계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법안 논의를 촉구한다. ⓒ박주민 의원실
 
 
경영계 “각종 부작용과 노사 갈등 부추길 것”
재계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추진이 민간 부문에 압박이 된다고 보고 있다. 대립적 노사 관계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많고 부작용이 크다는 우려로 인한 반대 의견이 많아서다. 경영계는 노동이사제가 확산될 경우 노조가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할 수 있고, 근로자와 노조가 반대하는 사안은 이사회가 신속히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혁신을 가로막을 것이라 보고 있다.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노동자의 목소리가 경영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이미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라 30명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며 “노동이사 선임은 비대한 노조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일이다”고 반박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이후 공공기관들의 비효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노동이사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이후 영업손실이 2017년 3,862억 원에서 2018년 5,322억 원, 2019년 5,324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또한 한국과 같이 주주자본주의 체제를 따르는 미국이나 영국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부분을 들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움직임이라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대주주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이사는 반드시 선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안이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이다.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주주총회 과반 동의로 선임되다 보니 주주의 입맛에 맞는 의견에만 동의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의 ‘2020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자료에 따르면, 공시 대상 기업집단 상장사 266개에서 2019년 5월 15일부터 2020년 5월 1일까지 상정된 이사회 안건 중 99.51%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사외이사의 수와 이사회 참석률은 증가하고 있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거의 피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경영계는 노동이사제가 대립적 노사 관계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많고 부작용이 크다고 우려한다. ⓒPixabay
경영계는 노동이사제가 대립적 노사 관계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는 등 장점보다 단점이 많고 부작용이 크다고 우려한다. ⓒPixabay
 
 
면밀한 사회적 합의 요구
유럽연합은 1951년 독일을 시작으로 스웨덴과 프랑스 등 27개국 중에서 18개국이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아예 기본권 헌장에 “기업의 사회적·경제적 결정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고 협의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노동이사 비율은 30% 정도로 이를 통해 노동이사제를 경영자 중심의 의사결정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로 인식하는 문화가 정착됐다는 평가다.
 
독일은 ‘노동자 경영참여’의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독일 기업의 이사회는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이사회와 경영이사회를 선출하고 감독하는 감독이사회로 나뉜다. 이중 감독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주주이사와 노동조합 등에서 추천한 노동이사가 같은 비율로 참여한다. 이 통로를 통해 노동이사는 최고 경영진의 선출 및 해임, 투자 계획 등 기업 전반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고용을 유지한 것은 노동자의 지속적인 경영 참여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의 상황과 한국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오며 독일에서 알리안츠나 바스프처럼 독일 국적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규제가 심해지자 유럽연합(EU)의 법체계를 적용받는 유럽주식회사(SE)로 변신한 것이다.
다양한 논란 속에 노동이사제 도입은 사실상 초읽기 상태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경제 민주화’가 결국 시대적 과제라면 다양한 역기능을 고려해 우리 실정에 맞는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에게 부담이 갈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노사 간 심도 있는 논의와 보다 면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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