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생활밀착형 정책 추진 속 권위주의 행보도
[이슈메이커] 생활밀착형 정책 추진 속 권위주의 행보도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0.10.27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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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생활밀착형 정책 추진 속 권위주의 행보도
 
건강 문제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물러나고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가 선출될지 한 달이 지났다. 국정운영 방향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경기부양책은 아베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에도 외교정책은 ‘아베 2기 내각’이라는 초기 평가처럼 이전과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풀 실마리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강경 노선’에 여전히 꽉 막힌 한일관계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축하 서한과 답신으로 첫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보였다. 문 대통령은 스가 총리의 취임 당일 축하 서한에서 “스가 총리의 재임 기간 중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며 스가 내각 출범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스가 총리 역시 축하 서한에 감사를 표한 뒤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 미래지향적 한일 양국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취임 8일 이후에는 첫 전화 통화도 가졌다.
 
하지만 스가 정권의 주요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보수·우익 성향이라 아베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자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과의 화상 회담에서 철거를 요청하며 현지 일본대사관이 로비를 펼쳤다. 또한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양국이 머리를 맞대자는 입장을 보인고 있는 것과 달리 스가 정권은 한국이 해결하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스가 정권의 주요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보수·우익 성향이라 아베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스가 정권의 주요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보수·우익 성향이라 아베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올해 한국이 의장국을 맡는 한중일 정상회의와 관련해서는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징용 문제 해법을 제시해야 참석한다는 뜻을 일본 정부가 한국에 통보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스가 총리가 강제노역 문제를 앞세워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도해 사실상 연내 정상회의가 무산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정부는 3국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를 위해서 노력 중이다. 이와 관련해서 유관들과 협의 중이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도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원론적 반응만 내놓고 있다.
 
스가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는 등 아베 전 총리를 닮은 우익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에 대해 스가 총리의 취임 후 첫 공물 봉납에 대해 직접 참배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더는 동시에 일본 내 우익 세력에는 일정 부분의 성의를 표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참배냐 공물 여부를 떠나 일본 정부 주요 인사의 야스쿠니 방문은 한일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외교부는 “정부는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축하 서한과 답신으로 첫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화의 물꼬는 잡히지 않고 있다. ⓒ효자동 사진관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축하 서한과 답신으로 첫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화의 물꼬는 잡히지 않고 있다. ⓒ효자동 사진관

 

서민지향 정책 통해 차별화 도모
국내 정책에 있어서 스가 총리는 전임 아베 내각과 달리 최저임금 인상 등 서민 지향적인 정책을 내놓으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자민당 총재 선거 등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등 탈(脫) 관료중심주의 의지도 엿보인다. 실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취임 후 51차례에 걸쳐 민간인 70명과 회동했다. 출범 한 달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자문을 구한 민간인 전문가는 31명이며,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4명인 것에 비하면 독보적인 수치다. 이 가운데 금융지주사인 SBI홀딩스의 기타오 요시타가 사장 등 기업 경영자가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의사회장 등 각종 단체 수장이 19명, 학자가 9명이었다. 민간과의 활발한 소통은 스가 내각이 관료 조직에서 나오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 사회 각 분야의 디지털화를 진전시키는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뿌리 깊은 도장 문화는 일본이 타파해야 할 개혁 대상 1순위로 꼽혀왔다. 취임 나흘 만에 일본 내 ‘인터넷의 아버지’로 통하는 무라이 준 게이오대 교수와 만나 비효율적인 일본 행정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디지털청 설립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며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이 행정기관의 도장 폐지를 추진하는 등 업무의 온라인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본 금융청 역시 2022년 3월까지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의 각종 신청 절차 등 대부분의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종이 기반 사회인 일본을 디지털 사회로 바꾸려는 시도가 각 분야에서 활발한 셈이다. 다만 여당인 자민당 내 ‘일본의 도장 제도와 문화를 지키는 의원연맹은 이에 대해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중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주요 민생 정책 중 하나다. 관방장관 당시에도 경제산업성과 최저임금 문제를 두고 충돌이 빈번했는데, 총리 취임 이후 다무라 노리히사 후생노동상에게 전국 평균 902엔(약 1만53원)인 최저임금을 1,000엔까지 빠르게 올리라고 지시했다. 지난 4년간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연 3% 수준으로 인상률이 5% 이상으로 높아져야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내 통신사들에게 휴대폰 요금 인하를 압박하고 있는 것도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본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디플레이션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숙박 등 관광비용의 최대 35%를 지원하는 국내 여행 장려책인 ‘고투 트래블(Go To Travel)’과 외식 산업 활성화 사업인 ‘고투 이트(Go To Eat)’도 개시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등 서민 지향적인 정책과 각 분야의 디지털화로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등 서민 지향적인 정책과 각 분야의 디지털화로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학술회의 임명 거부’ 논란 속 지지율 하락
현지에서는 ‘아베 1강’이라는 말처럼 스가 정권도 밀어붙이기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그가 민생과 밀접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는 재료가 되지만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가 총리는 일본 학자를 대표하는 단체인 일본학술회의 회원 인사에서 전례를 깨고 학술회의가 추천한 후보 105명 가운데 정부 정책에 반대한 학자 6명의 임명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후 총리가 후보자 중 일부를 임명에서 제외한 것은 처음이며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전례를 답습해서 좋은 것인가’, ‘종합적·부감(위에서 내려다 봄)적 활동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판단했다’는 등 애매모호한 설명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또한 신속한 정책 추진을 위해 강압적인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미우리 신문은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내걸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다르게 국민 눈높이에 가까운 정책이 늘어섰다”고 평가하면서 스가의 다른 특징은 속도를 중시하는 것이고 각료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며 일의 진행 상황을 자주 확인한다고 전했다. 한 경제 관료는 “뭐든지 총리가 나서는 것은 무리다. 만약 실패하면 총리가 직접 비판받는다”며 직접 나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가의 스타일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내년 9월 말까지 예정된 스가 내각에 대한 평가는 경제 회복 흐름과 개혁 정책 성과에 좌지우지될 전망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내년 9월 말까지 예정된 스가 내각에 대한 평가는 경제 회복 흐름과 개혁 정책 성과에 좌지우지될 전망이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이처럼 스가 내각에서 눈에 띄는 건 속도다. 스가 총리는 “국민을 위해 움직이는 내각을 발족하고 벌써 한 달이다. 돌아볼 틈이 없이 빨랐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라며 “가능한 것부터 개혁을 추진해 국민이 실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초심을 잊지 않고 산적한 과제를 착실히 실행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속하게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규제 개혁에 따라오기 마련인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버텨낼 수 있느냐다. 원격 진료나 불임 치료비 보험 적용은 일본의사회 등이 저항하고 있고, 자민당에는 각 업계와 연관된 이른바 ‘족(族)’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당내 의견 조정도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일단 스가 총리는 집권 초 지지율을 동력으로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국민 지지율은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지난 10월9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10월 여론조사’ 결과 스가 정권 지지율은 55%로 나타났다. 정권 출범 직후 조사에 비해 7%나 하락한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월보다 7%포인트 오른 20%였다.
 
스가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 말까지다. 이른 시일 안에 정책적인 성과를 내려면 민생 친화적 정책을 내세우고, 이 과정에서 민간의 아이디어를 접목해야 한다는 전략은 눈에 들어온다. 결국 스가 내각에 대한 평가는 코로나19 타격 속에 회복되지 않는 경제 회복 흐름과 개혁 정책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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