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신냉전 Ⅲ] 수출 규제 1년, 평행선 달리는 한·일 갈등
[이슈메이커_ 신냉전 Ⅲ] 수출 규제 1년, 평행선 달리는 한·일 갈등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0.08.06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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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수출 규제 1년, 평행선 달리는 한·일 갈등

 

©청와대
©청와대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보복으로 시작된 수출 규제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양국의 수출 규제는 물론 우리 국민과 일본인 모두 반일, 반한 감정으로 한일관계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이동이 제한되며 가깝지만 먼 두 나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 엉킬 대로 엉켜버린 양국의 실타래는 과연 풀 수 있을까?

 

역사 왜곡, 한일관계 악화의 시작

군함도는 1890년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매수해 석탄을 캐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졌다. 총면적 6만3000m²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석탄 채광으로 인구가 늘면서 주위가 매립되면 총면적이 늘어났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을 대거 강제 징용했다. 이렇게 채취된 석탄은 일제의 침략 전쟁의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이곳 탄광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이를 통해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했다고 증언했다. 더욱이 이곳은 다른 징용지와는 달리 섬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바다를 건너지 않는 한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이에 징용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지옥 섬, 귀신 섬’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섬은 1970년대까지 채굴 활동을 이어왔지만, 석탄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폐광되어 무인도가 전락했다. 이후 사람의 왕래가 끊어졌다가 2009년 일본이 군함도를 관광지로 개방하면서 방문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조선인 강제 징용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이 시설을 포함해 모두 23개의 산업시설을 일본은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당시 일본은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에게 군함도 등에서 강제노역을 시킨 사실을 인정하며 강제동원 사실을 함께 표기하기로 했지만 최근 개장한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관에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자료를 전시하는 등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일본 지식인들 역시 이러한 일본 정부의 약속 불이행에 부정적 목소리를 높였다. 나카사키 중국인 강제 동원을 지원하는 모임 신카이 도모히로 사무국장은 지난 6월 ‘누구를 위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역사 왜곡을 비롯한 많은 문제의 중심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칼럼에서 그는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역사를 마주하기는커녕 왜곡과 은폐로 일관해 왔다. 그것이 센터에 반영이 된 것이다. 일본은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고 과거사를 반성해 산업혁명 유산의 그늘에 가려진 강제동원 피해자 실태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일본이 성의 있게 강제동원 피해자를 조명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전 세계가 화해와 우호의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역시 소설 ‘군함도’ 저자인 한수산 소설가와 지난 6월 특별 대담을 열고 역사를 왜곡한 ‘군함도 전시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날 대담에서 호사카 교수는 일본 정부가 2015년 군함도 등 23개 산업유산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 했던 약속을 소개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지 설명했다. 또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돌변한 이유와 국제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약속을 파기한 속내 등도 분석하며. 산업유산정보센터가 군함도가 있는 나가사키가 아니라 도쿄 시내에 자리 잡은 이유도 밝혔다. 더불어 호사카 교수는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러맷'(The Diplomat)에도 군함도 전시관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제 강점기 하시마섬에서 한국인들에게 가해진 일본의 만행을 기억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일본은 하시마섬에서 심하게 차별을 받았다는 수많은 조선인의 증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 또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취소 검토 요청 서한을 유네스코에 보냈고 도미타 고지 주한일본대사를 초치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역시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해서 일본 측이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권고한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준수해나가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유네스코 측에 대해서도 관련 사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한일관계 악화의 시작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국제 사회에 내세운 약속 불이행이 먼저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수출 규제, 불매운동으로 맞불 놓다

반면 일본은 적반하장으로 우리 정부의 강제노역을 문제 삼았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내놓은 일제 강제노역 배상판.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여전히 살아 있기에 일본 전범 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덧붙여 법원은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집행 명령 신청도 받아들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나서라고 맞섰다. 일본 기업 역시 배상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요구한 양자 협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같은 해 12월과 지난해 초 일본 초계기가 저공 위협 비행으로 도발하며 양국은 군사적 긴장도 발생했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에서 우리 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정하자 일본 정부가 반발하면서 양국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문제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둘러싼 일본의 극렬한 반발도 더해졌다.

 

 

©사단법인 한국마트협회
©사단법인 한국마트협회

 

이후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하며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입장도 드러냈으며 과거사 갈등을 무역 분쟁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강조해온 자유무역 원칙도 스스로 훼손했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일본 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수량 제한’을 금지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 위반 소지가 있다고 규정하고 제소 절차에 돌입하며 맞대응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기업에게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며 “일본 측의 수출 규제 조치 철회와 양국 간의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협의 대상이 아니고, 철회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문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며 양국의 갈등은 더욱 심화했다.

 

경제적 셈법을 떠나 고조되는 한·일 양국의 갈등은 국민의 반일 감정도 자극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됐고 이는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이어졌다. 패션과 가전제품, 자동차부터 화장품,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예외를 따지지 않고, 단순히 소비자들의 구매 거부가 아닌 공급자들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상황이다. 성난 민심을 대변하듯 불매 대상인 일본 제품과 대체재를 소개하는 ‘노노재팬’이라는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지며 불매운동에 나설 일본 기업 리스트를 공유했다. 더불어 코로나 사태 이전 일본 여행을 가지 않거나 예정된 여행을 취소하고, 주말마다 일본 의류 브랜드 앞에서 일인시위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등 전례 없을 정도의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일부 마트와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일본산 제품 판매 중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는 대대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하며 “과거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해도 부족한 일본이 오히려 치졸하게 경제보복 조치를 하는 행위는 용납하기 어렵다. 한소연 소비조합원을 시작으로 전 국민 소비자의 힘을 모아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생활실천운동을 전개해 ‘IMF 금모으기 운동’과 같은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다”고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네티즌 역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BOYCOTT JAPAN’으로 바꾸는 등 실제 행동을 통해 반일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많아졌었다.

 

 

©청와대
©청와대

 

풀리지 않는 실타래 그 해법은

양국의 갈등이 점차 깊어지는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제8차 한일중 정상회의.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약 45분간 정상회담을 가지며 한국과 일본의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회담에서 일본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일본이 취한 수출 규제 관련 조치가 7월 1일 이전 수준으로 조속히 회복되어야 한다”며 아베 총리의 각별한 관심과 결단을 당부했다. 아베 총리는 “3년 반 만에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매우 유익하게 진행되었다고 들었다”며 “앞으로도 수출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라고 화답했다. 또 강제노역 문제와 관련해서 양 정상은 서로의 입장차이를 확인했지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이뤄졌다. 특히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고, 정상 간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또한, 두 정상은 한반도의 엄중한 정세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한일, 한미일간 긴밀한 공조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베 총리는 납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계속된 지지와 지원을 요청했고, 문 대통령은 일본 측의 노력을 계속 지지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이날 회담의 마지막에 아베 총리는 “우리는 이웃이고 서로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전했고, 문 대통령은 “실무 협의가 원활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아베 총리와 함께 독려해 나가자”며 “이번 만남이 양국 국민들에게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양국 정상의 만남 이후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감이 이어졌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양국의 관계는 얼어붙었다. 일본의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에 훈풍이 불 것 같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각되며 양국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게다가 최근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재검토 조치 미이행에 대해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기도 했다. 이에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국이 일본과의 수출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TO 제소 절차를 활용한 것을 지지한다. 이들 시스템은 모두가 활용하고 무역 문제나 다른 일들을 해결하는데 관한 토론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 밝혔지만, 양국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양쪽이 대화를 유지하기를 바란다”며 “수출 규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더라도 대화 채널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멀고도 가까운 관계였다. 한·일 수교도 50년을 넘어섰지만, 그간 사안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가길 반복했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진 현실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양국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물론 과거사와 외교적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확전시켜버린 일본의 조치는 분명 부당한 일이다.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과 규탄의 목소리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엉켜버린 양국의 갈등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국 국민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감정적 대응보다 차분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외교 능력의 시험대로 삼을 수 있길 모두가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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