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실리콘밸리의 여제’,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실리콘밸리의 여제’,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0.07.15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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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실리콘밸리의 여제’,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CES®
ⓒCES®

 

콘텐츠를 수용하는 데 있어 텍스트를 ‘읽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이제 글 보다는 동영상을 선호한다. 이에 더해 최근 들어서는 영상을 통해 콘텐츠를 접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숏폼’에 ‘프리미엄’을 얹히다

TV보다 모바일 기기가 익숙한 ‘Z세대’가 콘텐츠 주소비자로 자리 잡으면서 ‘숏폼’ 콘텐츠가 크게 늘어났다.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콘텐츠들 역시 시간 단위가 아닌 몇 분 정도의 짧은 길이의 영상이 대부분이다. 최근 주목받는 유튜브 콘텐츠들도 대부분 10분 안에 전하고자 하는 정보를 모두 담아내는 짧은 동영상이다. 실제 디지털 마케팅 업체 메조미디어의 ‘2018 디지털 동영상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TV 프로그램을 짧게 편집한 클립영상 시청 빈도가 과거보다 늘어났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과자처럼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의미의 ‘스낵 컬쳐’는 짧은 콘텐츠 소비의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모바일 기기의 발달과 SNS의 성장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텍스트를 읽는 대신, 보다 쉽고 빠르게 영상을 통해 정보를 찾고 문화를 소비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짧은 동영상을 주된 서비스로 삼은 플랫폼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만든 ‘틱톡(TikTok)’은 15초 이하의 시간에 음악과 춤 등에 다양한 효과를 넣은 영상을 공유하는 서비스로 2016년 출시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현재 150여개 국가에서 75개 언어로 제공되고 있으며, 누적 다운로드도 15억 건이 넘는다. 틱톡의 인기에 힘입어 바이트댄스는 점점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아성에도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한 상태다.

 

그리고 틱톡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기대주가 ‘퀴비(Quibi)’다. 퀴비는 ‘대작을 빠르게 소비한다(Quick Bites Big Stories)’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영화와 예능, 드라마 등에 4~10분 내외의 숏폼 동영상을 전면에 앞세웠다. 콘텐츠를 시즌 단위로 한 번에 풀어 몰아보는 ‘빈지 워치(binge watch)’를 유도하는 넷플릭스와 달리 퀴비는 짧은 영상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제공하며 2시간 이상의 영화도 10분 내외 숏폼으로 끊어서 제공한다.

 

퀴비는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도 역임했던 멕 휘트먼과 전 월트 디즈니 회장이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공동 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합심하여 설립된 기업이라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최고 실력자로 불린 두 사람은 30년 지기 친구이기도 하다. HP의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은퇴를 생각하던 휘트먼은 마찬가지로 드림웍스를 막 그만둔 카젠버그의 설득으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퀴비는 ‘대작을 빠르게 소비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영화와 예능, 드라마 등에 4~10분 내외의 숏폼 동영상을 전면에 앞세우고 있다. ⓒ퀴비 홈페이지
퀴비는 ‘대작을 빠르게 소비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영화와 예능, 드라마 등에 4~10분 내외의 숏폼 동영상을 전면에 앞세우고 있다. ⓒ퀴비 홈페이지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 실력자들의 만남

흥미로운 조합이다 보니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OTT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애플TV 플러스와 디즈니 플러스까지 다양한 강자들이 합류하며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고품격’의 ‘짧은 영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노리고 있다.

 

퀴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장점을 잘 살렸다. 카젠버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리들리 스콧을 비롯해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과 콘텐츠 계약을 체결했고 프로그램 아이디어 구상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조 조너스와 제니퍼 로페즈, 윌 스미스 등 쟁쟁한 스타들도 콘텐츠를 제공한다.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은 휘트먼은 자신만의 리더십과 경영 스타일을 바탕으로 이베이를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낸 ‘신화적인 여성 경영인’으로 불린다. 1956년생인 그는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땄다. 1979년 ‘마케팅 사관학교’로 불리는 프록터앤드갬블(P&G)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월트디즈니와 스트라이드 라이트, FTD 등에서 활동했다. 이후 1998년 이베이 CEO로 취임해 당시 직원 30명의 매출 400만 달러에 그치던 기업을 2008년 퇴임할 때는 15,000여명의 직원과 연매출 80억 달러를 내는 ‘공룡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1년 HP CEO로 영입된 뒤에는 소비자 부문과 B2B 쪽을 분할하는 작업을 주도한 바 있다. 이러한 그간의 경험이 있다 보니 휘트먼은 카젠버그가 그린 밑그림을 직접 운영하는 몫을 맡고 있다.

 

 

공동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살려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과 콘텐츠 계약을 연이어 맺고 있다. ⓒFlickr/Gage Skidmore
공동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살려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과 콘텐츠 계약을 연이어 맺고 있다. ⓒFlickr/Gage Skidmore

 

퀴비의 경쟁 포인트는 ‘턴스타일’ 기술이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보다가 세로로 돌려도 영상이 잘리지 않고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같은 콘텐츠라도 가로 화면은 3인칭 관찰자 시점, 세로 화면은 주인공 시점으로 각각 감상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제작 단계부터 넓은 영상을 찍은 뒤 가로 및 세로 방향에 따라 자른 다음 붙이는 작업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독 기반인 퀴비 서비스는 월 4.99달러(광고포함)와 7.99달러 두 가지 요금제로 운영된다. 광고는 영상 시작 전에 띄워주는 방식이며, 중간 광고는 없다. 첫해 광고 물량은 비교적 순조롭게 채웠다. 휘트먼은 “첫 해 공고 물량 1억5천만 달러를 모두 판매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결합이란 모델에 흥미를 느낀 많은 투자자들도 지갑을 열었다. 출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10억 달러를 유치하더니 2차 라운드에서도 7억5천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또한 올해 하반기에는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4월6일 공식 출시 한 뒤에는 첫 주에만 17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베이를 공룡 기업으로 키운 전력이 있는 맥 휘트먼 CEO는 퀴비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Flickr/Fortune Brainstorm TECH
이베이를 공룡 기업으로 키운 전력이 있는 맥 휘트먼 CEO는 퀴비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Flickr/Fortune Brainstorm TECH

 

유료 구독 전환 저조, 위기 극복 묘수 찾을까

이후 몇 달이 지난 현재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먼저 출발 당시 생각했던 많은 구상들이 흐트러져 버렸다. 휘트먼 CEO가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출퇴근길처럼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퀴비는 ‘숏폼’ 영상을 앞세워 이동 중인 고객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았다. 그래서 설계 단계부터 ‘다운로드’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에 미리 콘텐츠를 다운받은 뒤 다음날 잠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변수가 생겼다. 영화관은 물론이거니와 백화점 등이 모두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물자 당초 생각했던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휘트먼 CEO는 당초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비디오를 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급증하긴 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보기 위해 만들어진 비디오는 거의 없다”며 모바일에 특화된 플랫폼임을 강조했으나 성과가 좋지 못하자 “우리는 TV와 연동되도록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TV 체제로 확장할 것임을 피력했다. 이와 함께 그는 “런칭 당시에 (해당 서비스를) 포함하지 않았을 뿐, 만약 우리가 코로나19를 미리 알았다면 포함시켰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뒤늦게 ‘빈지 뷰잉’에도 눈을 돌려 서버 테스트까지 진행한 뒤 론칭했으나 첫 날 서비스 오류가 발생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오프라인 행사들이 대거 취소되면서 차질이 생겼다. 휘트먼은 세계 주요 광고 이벤트 중 하나인 칸 라이온스에 참석해 닷새 동안 광고주들과 미팅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6월로 예정됐던 이 행사는 10월로 한차례 연기된 끝에 아예 취소돼 버렸다. 내년 영업의 밑그림을 그리려던 계획도 어그러진 것이다.

 

 

30년 지기 친구이자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실력자간의 만남으로 인해 퀴비는 설립 이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Flickr/Fortune Brainstorm TECH
30년 지기 친구이자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실력자간의 만남으로 인해 퀴비는 설립 이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Flickr/Fortune Brainstorm TECH

 

실적도 좋지 못하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퀴비는 90일 무료 시범 서비스가 끝난 이후 무료체험 가입자의 92%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출범 사흘 이내에 다운받은 사람 중 8%만이 유료 구독 전환한 셈으로 유료 구독자는 7만2천명 수준에 불과하다. 초반 호조와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콘텐츠와 기존 OTT 서비스와의 확실화 된 차별화에도 실패하며 실망감이 나타났다. 퀴비는 올 연말까지 유료 구독자 750만 명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이는 다소 어려워보인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의 브랜드와 마케팅을 총괄했던 주요 임원 중 한 명인 메건 임브레스도 회사를 떠났다. 그는 퀴비 CEO인 맥 휘트먼에게 직접 보고하는 최고위 임원 중 한 명이었다.

 

영상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사용자 참여와 공유를 바탕으로 사용자를 사로잡은 틱톡과 달리 퀴비의 숏폼은 전문 창작자들이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영상 형식이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모바일 환경에서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성향이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퀴비의 시도가 의미 있는 도전이지만 많은 숙제를 얻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여전히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에 비해 킬러 콘텐츠도 부족하다.

 

퀴비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휘트먼이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휘트먼은 포천500대 기업을 이끈 미국 역사상 단 세 명뿐인 여성 CEO 중 한 명이다. 그는 “퀴비는 내 경력 중 가장 파괴적이고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라며 “업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여전히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돌발변수 속에 초반부터 위기에 봉착한 휘트먼이 카젠버그와 함께 난관을 극복한 묘수를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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