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랑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사랑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취재/심가현 기자
  • 승인 2011.11.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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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게 죽자’며 장기기증자 쇄도해
[이슈메이커=취재/심가현 기자]

[Well-Dying & Special People]

故김수환 추기경

 

[이슈메이커] 일평생 가장 낮은 자리에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살다간 故김수환 추기경은 선종 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의 바른 지침서가 되고 있다. 그는 암울한 시대를 대변하고 소외되고 온정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등불이 돼 줬다. “나는 사람들의 밥이 되고 싶다”던 故 김 추기경은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까지 나눔의 뜻을 실천하고 떠났다.


가난 속에서도 나눔의 뜻 실천해

옹기는 한때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생계수단이자 생활의 터전이었다. 그런 옹기를 만들어 파는 옹기장수의 막내로 태어난 故김수환 추기경은 일제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독립투사를 꿈꿨다. 시험 질문에 “황국신민으로서의 자세”를 묻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니므로 소감이 없다”고 썼던 당돌하지만 당찬 학생이었다. 증조할아버지 대에 당시 박해받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독실한 천주교 순교자 할아버지가 남긴 것은 신앙적 자부심뿐이었다. 때문에 그의 가족은 박해를 피해 떠돌며 살아야 했던 곤궁한 삶을 이어나갔다. 모든 고생과 고난을 신앙으로 이겨냈던 어머니는 대구에서 사제 서품식을 본 뒤 두 형제가 신부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그는 ‘나 같은 사람도 신부가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성직자의 길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는 프랑스 신부의 말을 되새기며 그는 결국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일본을 거쳐 독일유학시절 “사회적 불행에 맞서야 된다”며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제 2차 바티칸공의회를 지지하는 열혈 수도자로서 청년시기를 보냈다. 귀국 후 그는 대구 가톨릭시보사 사장직을 시작으로 마산교구장을 거쳐,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을 맡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법을 알고 나눔을 실천한 그는 최연소 추기경이 됐다. 김 추기경은 광주항쟁 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교황청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했다. 엄혹한 5공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엔 성경 속 ‘카인과 아벨’의 비유를 통해 “너의 아들, 너의 제자, 너의 국민, 우리의 젊은이 박종철이 어디 있는가 하느님이 묻는다”라는 강론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이장우 박사는 “김수환 추기경은 성사주의적 신앙에 충만한 교회와 한국 민족을 철저하게 부정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통치 아래 성장했지만 한국 사회가 그리스도적 가치에 토대를 둔 민주주의 사회로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힌 지 6년 만인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옹기’를 자신의 야호로 삼고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자신의 야호를 딴 ‘옹기장학회’를 세웠다. 김 추기경을 만나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 추기경님은 정의롭고 따뜻한 분이었다”며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나 무겁고 어려운 자리에서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 국민의 삶의 지침서, ‘김수환 추기경’

자신의 두 눈 각막을 기증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에 빛을 주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 바이러스’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생명연장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병석에 누워서 까지도 “(내 몸 중에)더 줄 것이 없는가”라고 물을 정도로 나눔의 가치를 몸소 실현했다. 선종하기 직전까지 죽음에 초연했던 김 추기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고 ‘품위있게 죽자’는 웰다잉(well-dying)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직후 각막 기증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기기증단체에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일반인 신청이 쇄도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소식 이후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대폭 늘었다”며 “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한 등록자가 60만 명에 육박해 척박했던 장기기증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품위있는 죽음’은 장기기증 붐과 함께 웰다잉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보건복지가족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2009년 말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모두 59만 3,679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12.6배가 늘었다고 전

했다. 서울카톨릭사회복지회 김용태 신부는 “장기기증이 추기경 선종 이후 반짝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작년 내내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올해도 전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뇌사 시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문화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계층을 끌어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불의와 불행에 맞섰던 김수환 추기경은 생을 마감하고서도 사회 전반에 눈에 띄는 변화를 남겼다. 김 추기경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생전의 마지막 말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영원히 각인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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