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과감한 개혁 정책으로 ‘일하는 프랑스’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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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11.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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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과감한 개혁 정책으로 ‘일하는 프랑스’ 만들다

 

 

ⓒFoundations World Economic Forum/Wikimedia Commons
ⓒFoundations World Economic Forum/Wikimedia Commons

 

저성장 고실업에 시달리며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프랑스가 변화하고 있다. 실업률이 줄고, 정규직 일자리는 넘쳐나며 청년들은 과감하게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자는 구호를 외치며 집권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과감한 경제 개혁 덕분이다. 불과 1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비난 속에 퇴진 위기에 몰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노란 조끼’ 시위로 퇴진 위기까지 몰려

2017년 5월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은 크게 7가지였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EU 단일시장 강화’, ‘노동 유연성 강화’ 및 ‘법인세 25%로 인하’, ‘공무원 12만 명 감축’, ‘재정 건전성 확보’, ‘행정현대화’가 그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다소 도전적인 공약에도 불구하고 39세의 젊은 지도자를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취임 후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과감히 밀어붙였다. 또한 누적부채가 500억 유로에 달하는 국영 철도공사 근로자의 특권적 지위를 축소하는 철도 개혁도 단행했다. 이전 정부부터 숱하게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된 정책이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 특유의 악명 높은 강성노조와 느긋한 노동문화라는 현실 앞에서 마크롱의 개혁은 전진하지 못했다. 언론의 격렬한 반발과 ‘노란 조끼’ 시위가 거세게 불거졌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전기·가스 요금 동결, 유류세 인상 백지화 등을 요구했다. 파리 도심은 뿌연 최루가스 연기로 뒤덮였고 폭력이 난무하며 마치 1700년대 프랑스 시민 혁명을 방불케 했다.

 

제왕적 통치스타일에 질렸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대통령이 된 뒤 불과 1년 반 만에 지지율도 21%로 폭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마크롱의 거품이 마침내 터졌다’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퇴진위기에 몰리면서 그는 지난해 12월 생방송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사과해야 했다. 하지만 시위에서 쟁점이 됐던 ‘자산에 대한 연대세(ISF)’ 복구에 대해서는 분명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과도한 부유세로 인해 자산가와 기업가들이 프랑스를 떠나는 일만은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포퓰리즘이나 정책 노선 변경 대신, 마크롱은 직접 국민을 찾아 나섰다. 장장 3개월간 전국을 돌며 국민과의 대토론을 하며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경청했다.

 

 

지난해 연말 절정을 달한 ‘노란 조끼’ 시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Olivier Ortelpa/Flickr
지난해 연말 절정을 달한 ‘노란 조끼’ 시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Olivier Ortelpa/Flickr

 

‘저성장 고실업’ 늪에서 ‘경제 모범국’으로

반전은 머지않아 일어났다. 실업률은 마크롱 취임 당시 9.7%에서 올해 2분기 기준 8.5%로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2022년 임기 말의 7% 공약 목표를 향해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고무적인 것은 청년층의 고용 상황이다. 취임 직후 23%를 웃돌던 청년실업률은 23%에서 19.2%로 크게 개선됐다. 일자리도 크게 증가해 지난 2분기에만 6만 6,000여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됐고, 2017년 취임 이후 총 36만 7,000여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정 지지율은 올해 9월 기준 36%로 지난 1년 중 가장 높은 수치까지 상승했다. 유럽의 경기 침체 속에서 ‘나 홀로 성장’을 구가하며 유럽의 모범국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년 동안 ‘저성장 고실업’의 늪에 빠져 있던 프랑스가 독일을 제치고 유럽 ‘경제 모범국’으로 거듭날 기세”라며 마크롱의 리더십을 재조명했다.

 

개선된 고용환경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해온 노동개혁이 배경이 됐다. 그 핵심은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 유연성 강화다. 그동안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로 인해 근로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20% 적은 시간을 근무하면서, 유럽 평균보다 40% 높은 시간당 임금을 받았다. 기업이 한번 채용한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내보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산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와 임금협상을 하게 해 노조의 힘을 대폭 약화시켰고, 경영 악화 시 해고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했다. 부당해고에 있어서도 기업의 책임 범위를 제한함과 동시에 근로자 복지의무를 간소화해 기업 부담을 낮췄다. 여기에 업종별 정규직 전환을 탄력적으로 허용하는 등 노조의 집단교섭권을 약화시켜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고 기업에 발생하는 비용과 책임은 줄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발의했던 이 입법안은 지난해 3월 통과되며 1차 개혁이 이뤄졌다. ‘기업 해고가 쉬워지면 실업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노조의 우려는 기우였다. 해고와 인건비 부담이 줄자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정규직 채용을 대폭 늘렸고, 일자리의 질 역시 자연스레 개선됐다. 실제 지난 2분기 프랑스의 정규직 일자리 비율은 54.7%로 분기별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크롱 정부의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와 소통 행보는 프랑스를 경제 모범국으로 만들었다. ⓒRemi Jouan/Wikimedia Commons
마크롱 정부의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와 소통 행보는 프랑스를 경제 모범국으로 만들었다. ⓒRemi Jouan/Wikimedia Commons

 

국민과의 ‘끝장 토론’으로 개혁 당위성 설명해

개혁의 초점을 철저히 시장과 기업에 맞춘 경제정책만이 프랑스의 유일한 성공 비결은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과거 로스차일드와 같은 투자은행에서 벤처기업 투자 관리를 담당하며 백만장자가 된 인물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프랑스를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스타트업 국가’로 만들겠다”며 스타트업 육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33세의 무니르 마주비를 디지털 장관으로 임명하고, 파리 13구역의 기차 화물기지를 개조해 ‘스타시옹 에프(Station F)’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현재 이곳에는 1,000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

 

마크롱의 개혁 드라이브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4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에서 더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일하는 프랑스’를 만들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또한 실업급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급조건을 강화하고 고소득 계층의 실업급여액을 줄이는 제도 개혁안을 제시하며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퇴직연금 개혁에도 힘을 쏟아 노동자들의 은퇴시기를 늦추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들과의 토론을 통해 꼬인 매듭을 풀고 설득의 과정을 거치며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당위성을 부여했다. ⓒ프랑스 정부/Flickr
국민들과의 토론을 통해 꼬인 매듭을 풀고 설득의 과정을 거치며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당위성을 부여했다. ⓒ프랑스 정부/Flickr

 

물론 프랑스 내 연금개혁 반대 여론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최근엔 경찰 노조와 법조인, 의사, 철도 노조까지 연금개혁에 맞서 파업과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도 프랑스 남부 소도시인 로데즈를 찾아 500여 명의 시민 앞에서 3시간 동안 연금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연금개혁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싶다”며 “정부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고 설득했다. 다음날에는 중부 소도시 클레르몽페랑의 지역 일간지 창간 기념식에 참석해 2시간 동안 연설과 질의응답으로 국정 과제에 대한 소통 행보를 이어나갔다. 난관에 부딪히면 이해당사자들을 만나 대화로 매듭을 풀며 설득하는 방식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이와 같은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임 자크 시라크 정부과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각각 ‘최초 고용계약법’과 ‘주 35시간 근로제’ 유연화를 시도했다가 나라가 마비될 지경의 시위가 벌어져 백기투항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서는 “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개혁은커녕 통치하기도 어려운 국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올랑드 대통령 재임 시절 경제 장관을 역임하며 이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마크롱 대통령은 개혁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일 경우 ‘프랑스인과 함께’라는 구호 속에 국민들 곁으로 다가가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초에는 노르망디 소도시에서에서 열린 사회적 대토론 자리에서 장장 6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고, 연이어 남부 소도시 부르드포주에서 열린 토론회에도 사전 예고 없이 깜짝 등장해 3시간 동안 주민들의 질의에 일일이 답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야당에서도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제1야당인 공화당의 다미앵 아바드 의원은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며 “마크롱의 퍼포먼스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부활을 보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정부/Flickr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부활을 보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정부/Flickr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부활을 보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2017년 5월 거의 동시에 정부가 출범했고, 임기 역시 같지만 반환점을 앞에 둔 현재의 모습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역시 ‘경제 개혁’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노동 유연성은 떨어지고 투자 환경은 저조한 상태이며, 성장률 저조와 일자리 부족에 소득 양극화 심화까지 겹쳤지만 소통에는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정치 지도자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들 한다. 국정 현안과 경제, 민생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정부가 올바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리더십을 어떻게 받아들여 한국 경제에 적용할 것인지 숙고해 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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