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일본 경제보복에 한·일 관계 악화일로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일본 경제보복에 한·일 관계 악화일로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7.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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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일본 경제보복에 한·일 관계 악화일로
시험대 올라선 ‘대일정책’, 출구전략은?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Pixabay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한·일 양국 갈등의 중심에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내놓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Wikimedia Commons
 
 
지난 7월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세 가지 핵심 부품의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한국은 이들 품목의 수출 우대국가 목록에서 제외되며 7월4일부터 계약할 때마다 최장 90일이 걸리는 심사를 받게 됐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정합하므로 자유무역과는 관계없다”며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둔 ‘보복 조치’라는 것이다.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촉발된 갈등국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한·일 양국 갈등 현안의 중심에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내놓은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가 자리해 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법원은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집행 명령 신청도 받아들였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나서라고 맞섰다. 일본 기업 역시 배상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단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요구한 양자협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적폐 및 과거사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역사 문제만큼은 아베 정부와 필연적으로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는 문제인 셈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인 지난해 12월과 2019년 초에는 일본 초계기가 저공 위협비행 도발에 나서 군사적 긴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우리 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정하자 일본 정부가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문제와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둘러싼 일본의 극렬한 반발도 더해졌다.
 
관계 정상화 조짐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국방장관 회담을 가졌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오무상간의 외교장관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진실은 하나’라며 저공 위협비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고노 외무상 역시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발언하며 외교 결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반도 안보 현안을 비롯해 다양한 의제가 회담 테이블에 올랐는데, 대부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끝이 난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Pixabay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Pixabay

 

일본 수출 규제에 외교전 통해 대응하는 정부
이후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양국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입장도 드러냈다. 특히 과거사 갈등을 무역 분쟁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강조해온 자유무역 원칙도 스스로 훼손했다. 일본 정부는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환경을 구축하고 시장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가지다. 리지스트와 에칭가스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각각 90%와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한국 등 27개국에 수출을 할 때 허가 취득절차를 면제해주는 ‘화이트국가(백색국가)’ 제도에서 8월부터는 한국만 제외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된다면 수출 규제가 강화되는 품목이 지금 3개 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일본 보복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수량 제한’을 금지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 위반 소지가 있다고 규정하고 제소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국의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며 “일본 측의 (수출 규제) 조치 철회와 양국 간의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협의 대상이 아니고, 철회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문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과거사와 외교적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확전시킨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교부
과거사와 외교적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확전시킨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교부

 

깊어지는 반일감정, 들불처럼 번지는 불매운동
이번 사태의 영향력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반도체 분야에 높은 수출 집중도를 담고 있는 한국 경제의 아픈 곳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과 부품이나 소재의 자체 생산에 뛰어들 계기로 삼으면 된다는 반박도 있다. 더불어 일본 기업 입장에서 한국의 반도체 회사는 중요한 고객인 만큼 일본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경제적 셈법을 떠나 고조되는 한·일 양국의 갈등은 국민들의 반일 감정도 자극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에 나설 일본 기업 리스트를 공유하고 있고, 일본 의류 브랜드 앞에서 일인시위가 진행되기도 했다. 일부 마트와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일본산 제품 판매 중지를 선언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는 대대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하며 “과거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해도 부족한 일본이 오히려 치졸하게 경제보복조치를 하는 행위는 용납하기 어렵다. 한소연 소비조합원을 시작으로 전국민 소비자의 힘을 모아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생활실천운동을 전개해 ‘IMF금모으기 운동’과 같은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다”고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일본 여행을 취소하거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BOYCOTT JAPAN’으로 바꾸는 등 실제 행동을 통해 반일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20대 직장인 A씨는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지 않은 채 경제보복을 벌이는 일본의 행태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며 “예정된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당분간 일본 제품을 자발적으로 불매하는 등 나름의 활동을 할 계획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제품의 국내 출시 행사 역시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TV 홈쇼핑에선 일본 여행상품 판매 방송이 취소됐고, 편의점에선 ‘부동의 1위’였던 아사히 맥주가 카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일본계 담배회사인 JTI 코리아는 전자담배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를 무기한 연기했고, 일본 맞춤 시계 브랜드 놋토(knot)도 한국 진출 관련 기자간담회를 취소했다. 놋토의 국내 수입판매사인 아이벨의 이정준 대표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만큼 일본 본사와 합의해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경제적 셈법을 떠나 고조되는 한·일 양국의 갈등은 국민들의 반일 감정도 자극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마트협회
경제적 셈법을 떠나 고조되는 한·일 양국의 갈등은 국민들의 반일 감정도 자극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마트협회
 

 

‘톱다운’ 외교 통해 해법 모색해야
한·일 양국은 본격적인 외교전을 통해 자국 입장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는 공방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WTO 제소를 둘러싸고 향후 일본의 반격이 예상되는 만큼 국제외교 무대에서 일본이 내세운 명분과 이유를 조목조목 무너뜨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분쟁 해결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고, 정치적인 이유에 따른 경제 보복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WTO에서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안덕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차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WTO 제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무역보복으로 맞대응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일본에 같은 강도의 타격을 입히기도 힘들다. 일본이 제재 수위를 올리면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여론전을 통해 일본의 부당함을 호소하거나, 미국 등과의 외교적 공조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국무부는 “미국은 항상 공개적으로나 막후에서나 우리 3개국의 양자·3자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구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고립주의인 점도 미국이 중재에 나설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배경이 된다.
 
전문가들은 결국 반전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직접 만나 ‘톱다운’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 말한다. 김경민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일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정상회담을 하려면 대화를 위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그룹이 의회다”는 견해를 펼쳤다. 실제 국회 차원에서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정례회동을 갖고 초당적인 여야 방일단 파견을 합의한 상태이다.
 
과거사와 외교적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확전시켜버린 일본의 조치는 분명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금의 태도를 견지하는 한 해법을 찾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명분을 잃은 건 일본이다. 우리 정부는 차분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이번 사태를 우리 외교 능력의 시험대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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