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글 쓰는 의사', 의료 시스템 혁신 위한 지휘봉 잡다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글 쓰는 의사', 의료 시스템 혁신 위한 지휘봉 잡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7.02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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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글 쓰는 의사', 의료 시스템 혁신 위한 지휘봉 잡다
헬스케어 난제 해결 위한 적임자 낙점
 
 
 
ⓒFlickr/World Economic Forum
ⓒFlickr/World Economic Forum

 

소프트웨어와 이를 갖춘 기계가 스스로 심층학습을 해 추론을 강화하는 ‘딥 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이 의료분야의 미래 핵심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같은 의료 AI는 질병을 진단하거나 예측할 때 인간의 학습능력이나 추론능력, 지각능력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발된 기술로 향후 효과적인 진단과 정밀한 치료법을 제시하면서 헬스케어 부문의 난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방정부도 전전긍긍하는 미국 의료체계
의료 AI를 통해 업계는 궁극적으로 의료비 절감과 의료 서비스의 질적 개선이라는 꿈에 한걸음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전자상거래와 유통의 천재’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와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미국 자산 규모 1위 은행인 J.P. 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이를 위해 합작사 ‘헤이븐(Haven)’를 설립하겠다고 밝혀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사실 ‘억만장자’라는 점 외에 서로 공통점과 별다른 접점이 없던 인물들의 미국판 도원결의라 더 많은 관심을 불러왔다. 당시 버핏 CEO는 “불어나는 헬스케어 비용이 굶주린 촌충처럼 미국 경제를 삼키고 있다”는 말을 통해 합작 기업의 비전에 대해 전한 바 있다.
 
이처럼 헤이븐이 갖고 있는 목표는 고비용으로 인해 높은 병원의 문턱을 낮추면서 의료 서비스를 혁신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풀어내고 있지 못하는 큰 문제인 민간이 스스로 푸는 시도인 셈이다. 실제 미국의 의료체계는 민간과 정부 보험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매우 복잡한 구조다. 지난 2016년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한해 3조 3,000억 달러를 헬스케어 비용에 쏟아 부었는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8% 수준이다. 1인당으로 환산하면 1년에 약 1,200만원이고 스위스(12.4%)나 일본(10.9%), 한국(7.7%)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더욱이 2026년에는 5조 7,000억 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와 같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되고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병원 이용에 제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65세 이상 인구에 적용되는 연방정부의 ‘메디케어’나 영세민과 아동에 적용되는 주 정부의 ‘메디케이드’ 등을 제외하면 전 국민에게 적용하는 공적 보험제도는 전무하다. 국민의 15%에 가까운 4,400만 명은 의료보험조차 없어 취약계층은 식구 한 명이 질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오르고 생계가 위태로워진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병원과 보험회사들은 돈을 낼 수 있는 나머지 환자들에게 이 손실을 부과하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게다가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78.8세로, 한국(82.1세)을 비롯한 OECD 국가들의 평균수명(80.6세)보다도 낮다. 물론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연방정부의 노력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의 모든 주민을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그 비용을 정부와 민간에서 보조하는 이른바 ‘오바마케어’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수립 후 오바마케어의 근본은 흔들렸고, 현재는 그 존속조차 위태로운 실정이다.
 
헤이븐을 이끄는 3개 회사는 현재 직원만도 130만 명에 달할 정도라 1년에 약 4조 5,000억 원을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의료보험 보조비로 지불하고 있다. 따라서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당사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헤이븐의 탄생이 필수 불가결한 흐름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의료체계는 민간과 정부 보험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매우 복잡하고 이용자들의 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Pixabay
미국의 의료체계는 민간과 정부 보험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매우 복잡하고 이용자들의 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Pixabay

 

‘헤이븐’의 목표 달성 적임자로 낙점된 아툴 가완디
2018년 1월 합작사의 출범이 발표된 뒤 지난해 7월 아툴 가완디가 최고경영자로 선임되고 올해 3월 홈페이지가 공개되는 등 조금씩 회사의 기틀이 잡혀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글 쓰는 의사’로 유명한 아툴 가완디는 부임 전부터 합작사의 과업을 달성할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인도 태생의 미국 이민자로 의사인 부모님 밑에서 상장한 가완디는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 의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보건대에서는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 교수이자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재직 중인 그는 헤이븐의 CEO를 맡게된 뒤에도 교수와 의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가완디는 작가로서 더 큰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데, 미국 ‘뉴요커’지의 전속 필자이자 각종 의학저널과 매거진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첫 번째 저서였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은 2002년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오르며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고 한국에서도 2003년 KBS 선정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리며 그를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가 2007년 아마존 10대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체크! 체크리스트’,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그동안 최고의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비롯해 내셔널 매거진 어워즈를 2회 수상했고, 2006년에는 공중보건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도 수상했다. 또한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과 2015년 영국 프로스펙트지가 선정한 ‘세계적인 사상가 50인’에도 등재되기도 했다.
 
이처럼 탁월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외과의로서의 전문성을 인문학적인 글을 통해 잘 표현해 온 가완디와 헤이븐의 만남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베조스 아마존 회장은 “(의료 시스템을 개혁하고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전문가의 지식, 초심자의 마음가짐, 장기 비전 등 3박자를 다 갖춰야 성공을 바라볼 수 있다”며 “가완디는 이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최고경영자 부임 이후 가완디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더 간단하고, 더 좋게, 그리고 더 낮은 비용으로 경험하도록 바꾸겠다”며 “환자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고객의 요구에 응해 커져나갈 것이다”는 목표를 밝혔다.
 
 
헤이븐의 최고경영자로 선임된 아툴 가완디는 외과 의사이자 대학교수, 그리고 많은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작가이기도 하다. ⓒFlickr/World Economic Forum
헤이븐의 최고경영자로 선임된 아툴 가완디는 외과 의사이자 대학교수, 그리고 많은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작가이기도 하다. ⓒFlickr/World Economic Forum

 

미국판 도원결의는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는 올해 초 기밀 정보 탈취 우려 등을 이유로 데이비드 윌리엄 스미스 전 임원이 헤이븐에서 일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을 정도로 기존 업계가 이들의 출현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제약업계 역시 헤이븐이 향후 기존 의약품 공급망 등 전통적인 제약 시장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실제 아마존이 헬스케어 사업에 관한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제약 기업과 주요 약국 체인 및 의약품 유통업체들의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가완디 CEO의 병원 경영과 같은 행정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 출신으로 퍼머넌트메디컬그룹의 CEO를 지낸 로버트 펄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는 포브스에 남긴 기고를 통해 “그를 CEO로 앉힌 3개 기업의 대표들이 가완디 박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를 통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며 “그가 명확한 비전을 갖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에 감탄해왔다”고 가완디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와 함께 펄 교수는 가완디 CEO가 불필요한 의료 행위 축소와 인간다운 죽음 보장 등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이븐은 아마존이 보유한 AI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화된(Personalized) 의료서비스 제공과 주치의를 통한 의료 컨설팅과 예방의학으로 일생 의료비용 절감, 그리고 민간 의료보험의 대폭적 개편을 꿈꾸고 있다. 사업 초기에는 아마존과 버크셔 해서웨이, J.P. 모건체이스 회사의 직원들과 가족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지만 향후 일반에도 서비스를 개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이버 보안 전문가와 데이터 과학자를 비롯해 소프트엔지니어 등 임상과 기술 경험을 갖춘 직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컴캐스트의 디지털헬스 총괄책임자였던 잭 스토다드가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되었다. 더불어 디지털 건강플랫폼인 ‘ZocDoc’의 전 최고책임기술자(CTO)인 세르칸 쿠탄이 헤이븐의 CTO로, 그리고 보험사 블루 크로스 블루 쉴드의 다나 사프란은 측정부분의 책임자로 임명된 것으로 전해졌다.
 
 
헤이븐은 아마존이 보유한 AI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화 된 의료서비스 제공과 컨설팅을 통해 의료비용 절감 및 민간 의료보험의 대폭적 개편을 꿈꾸고 있다. ⓒ헤이븐 홈페이지
헤이븐은 아마존이 보유한 AI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화 된 의료서비스 제공과 컨설팅을 통해 의료비용 절감 및 민간 의료보험의 대폭적 개편을 꿈꾸고 있다. ⓒ헤이븐 홈페이지

 

아직까지 세부사항은 베일에 쌓여있지만 미국 현지 언론에선 헤이븐이 우선 약값을 내리기 위한 PBM(Pharmacy Benefit Management) 사업과 의약품 배달 서비스에 뛰어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마존의 인공지능(AI) 비서인 ‘알렉사’가 활용될 수도 있다. 가완디 CEO는 “의료 시스템에 변화를 주고 기술, 계약, 정책 등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며 “업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지속 가능하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일을 해나갈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무엇보다 그는 환자 관리와 비용 개선은 물론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라면 전문가와 리더, 정책 입안자 모두와도 동맹자가 될 수 있다며 헤이븐의 철학을 ‘환자들의 옹호자’라는 표현으로 소개했다.
 
헤이븐의 등장은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의료서비스와 비용 조달에 있어 고민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미국이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처럼 국내 업계 역시 의료 AI를 활용한 혁신의 신호탄을 조금씩 쏘아올리고 있다. 성장에 가속도를 더해줄 수 있는 시장 상황과 투자 환경 조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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