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Sexuality Ⅲ] 2015 대한민국 新 킨제이 보고서
[Korea Sexuality Ⅲ] 2015 대한민국 新 킨제이 보고서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5.03.03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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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성(性)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연령·체력에 맞는 규칙적 성생활은 건강에 좋아



감추는 게 미덕으로 여기던 ‘성’(性)이 수년 전부터 드러내놓고 이야기해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됐다. 최근 한 언론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성’을 주제로 설문 조사한 결과, ‘성생활이 나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2.9%로 나타났다. 한 여학생은 심지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나머지 20%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성은 더 이상 무겁고, 엄숙한 의식이 아닌 책임·신뢰만 기반으로 둔다면 하나의 ‘즐거운 놀이’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킨제이 보고서, 금지된 성을 재조명하다

  20세기 초 강요된 수줍음이 넘치던 그 시절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실을 과감하게 뚫고 들어간 이가 있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성 연구자 중 한 명인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1894~1956)이다. 그가 이른바 ‘킨제이 보고서’라 불리는 오랜 연구 성과를 발표하자 성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성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격상시켰다는 긍정적 평가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킨제이 보고서는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자리한 여성의 성적 자유 획득과 자기표현, 여성 운동에 있어 여성의 성적 지위에 관한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성행위가 쾌락으로 인정받기 이전인 40년대와 50년대 킨제이는 성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보수적인 교회의 반발을 예상치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기승을 부리던 매카시즘 열풍은 킨제이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준다.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미 하원 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연구 자료가 압수 조사되더니, 급기야 후원자였던 록펠러 재단이 지원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평생 매진해온 연구 결과를 기록할 자금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여의치 않던 상황에서도 연구를 강행한 킨제이는 2년 후 돌연 세상을 떠난다.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도 존재한다. 1997년 한국성과학연구소를 설립한 이윤수 소장은 한국판 킨제이 박사로 불린다. 연구소 개설 후 ‘한국인의 성 의식 및 성생활에 관한 보고서’(1997년), ‘컴퓨터통신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성의학연구’(1998년), ‘한국 기혼여성 성 의식 및 실태조사’(2005년) 등 한국인 성생활의 현주소를 담은 조사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아 우리 사회 새로운 성 담론 형성의 불씨를 지폈다. 비뇨기과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 소장 “오랜 시간 성 문제 상담과 강연 활동의 과정에서 의료계가 킨제이 보고서를 답습하기에만 급급하고. 정작 한국 문화와 한국인에 적합한 성 실태 조사 자료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며 “한국인의 실정에 맞는 성 보고서의 필요성을 통감하고자 1997년 한국성과학연구소 운영을 시작했습니다”고 말한다.

  한국성과학연구소는 5년마다 성 실태 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목표를 확립했다. 지속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20년, 30년 뒤 장기 추적관찰을 통해 한국에서 성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이를 살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연구소 발족 첫해 이윤수 소장을 필두로 한국 성인 2,134명을 조사한 ‘한국인의 성 의식 및 성생활에 관한 보고서’를 내놨다. 1998년에는 청소년과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시아 성의학회를 통해 발표한 ‘컴퓨터통신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성 의식 연구’는 관련 조사로는 세계적으로도 처음이었다. 당시 성관계 횟수 등 한국인의 성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폭로에 국내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판단에 주요 일간지들도 연일 대서특필하기에 이르렀다. 이윤수 소장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성 관련 다양한 정기적 포럼 및 행사를 통해 연구소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최근 발간한 ‘고추 박사’라는 동화책을 통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건전한 성생활의 긍정적 효과

  성생활에 대해 죄악시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남녀 간의 관계를 더욱 풍부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성생활에의 긍정적인 면들이 부각되고 있다. 덧붙여 성생활이 건강 유지에도 좋다는 연구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적절한 성생활은 심폐기능을 향상 시키며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된다. 관계 시에는 호흡이 평상시보다 4배 정도 빨라져 많은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와 폐 운동이 활발해지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몸속 노폐물 제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몸에 좋은 고밀도지단백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또한 사랑을 나눌 때 보통 200~400kcal가 소모되고 심지어 상상만으로도 칼로리가 소모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남성은 성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도 혈액 속 바소프레신 농도가 5~10배 정도 높아지고, 바소프레신은 다시 성욕을 촉진하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게 한다. 여성도 성적 자극을 받으면 바소프레신을 분비하지만, 소량에 불과하다. 그 대신 옥시토신이라는 전달물질을 분비하게 된다. 평소보다 옥시토신 농도는 3배쯤 높아지고 호흡이 40배 정도 빨라진다. 호흡 60회, 맥박 분당 180회, 혈압 220mmHg, ‘천연 환각제’인 도파민과 엔도르핀 농도도 짙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옥시토신 농도가 최대치에 이르는 순간,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프로락틴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잠깐이지만 의식이 희미해지며 자제력을 잃는 황홀감에 빠지게 된다.

  성생활은 단순한 쾌락 이상의 효과를 두뇌에게 선사한다. 일단 오르가슴을 느끼면 뇌는 이후 6시간 동안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관계가 강력한 진통제가 되어 각종 통증을 완화하고, 요통 치료 효과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절정의 순간과 그 직전에 분출되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 때문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베벌리 휘플(Beverly Whipple) 교수는 과격하지 않은 부드러운 성생활은 통증을 참아내는 한계를 높여 두통, 관절통, 치통 등 각종 통증을 완화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르가슴은 근육을 이완시키고 혈액순환과 혈액 내 화학물질의 양을 최적의 균형상태로 조절하여 자연 수면제 역할도 한다. 우울증 및 무기력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관계를 나눌 때 엔도르핀이 분비돼 평온하고 안정된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성생활에 적극적인 사람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에 휘말린 사례는 드물다. 그뿐만 아니라 아연, 칼슘, 칼륨, 과당, 단백질 등을 함유한 남성의 체액 자체가 우울증을 완화한다는 보고도 있다.

  건강한 성생활은 자신감 또한 높여준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행위를 통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더욱더 자각하게 되고 이것은 자신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난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는 관계 후 ‘포옹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증가한다. 이를 끝낸 뒤 남녀가 서로 껴안은 채 새벽녘까지 함께 지내고 싶어 하는 것도 이 덕분이다. 신경경제학 전문가 폴 자크(Paul Zak) 교수의 옥시토신 이론에 따르면 옥시토신은 부부의 견고한 성적 결합을 위해 진화된 호르몬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사랑이 넘쳐흐르게 하고 서로를 믿을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죽어도 좋아, 노년의 성생활

  성욕은 인간의 3대 기본욕구로서 성생활은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노인에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젊은 남성에서 성 기능은 생식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원만한 성생활을 통한 즐거움과 행복추구의 수단이지만, 중년 이후 노년기 남성의 성 기능은 남성으로서의 존재감이나 아직도 건재하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반면 성기 능장애는 남성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위기감과 불안을 야기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성기능장애나 발기부전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삶의 의욕도 떨어지게 한다. 노인들에게 성기능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흔하면서도 중요한 요인은 다른 사람들이 노인들의 성생활을 무시하거나 노인들 스스로의 잘못된 성 지식이다. 

  2002년 화제가 됐던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의 성을 솔직하게 풀어낸 영화인데, 노인이라고 해서 더 이상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남녀 모두의 책임이다. 노인에게 젊을 때와 같은 지나친 성행위나 부적절한 성관계는 건강을 해치지만 나이와 체력에 맞는 규칙적이고 꾸준한 성생활은 건강에 더 좋다. 이를 통해 발기부전도 예방하고 남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더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뇌를 자극해 노화, 치매 등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성생활을 많이 할수록 오래 산다는 것은 이미 현대 의학에서 정설로 굳어졌으며 이 밖에도 노년기의 성생활로 인해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들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게 전문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생리적인 노화현상은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성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꾸준하고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스트레스, 불안, 과로를 피하고 흡연, 음주 등의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하며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건강한 성생활은 엔도르핀을 분비시키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노후에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다시금 각인시키며 2015 대한민국 新 킨제이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덮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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