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투자를 위한 계산’보다 ‘투자에 의한 계산’ 필요
[이슈메이커] ‘투자를 위한 계산’보다 ‘투자에 의한 계산’ 필요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9.03.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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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투자를 위한 계산’보다 ‘투자에 의한 계산’ 필요
정당한 범법 저질러야 하는 일은 없어야…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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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벤처 붐으로 보이는 최근의 스타트업 생태계. 많은 예비 창업자들은 저마다의 아이템으로 기업을 창업하고 있고, 정부는 이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과 자금을 지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순환구조로 돼가는 듯 보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기업, 일명 ‘좀비기업’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법인을 여러 개 만들어 정부 지원 사업에 지원, 보조금만 챙기고 폐업하는 기업도 있고, 벤처기업, 이노비즈기업, 경영혁신기업에 중복으로 선정되며 같은 명목으로의 자금 지원을 받는 기업들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좀비기업의 근절, 해답은 무엇일까?
 
대필 사업의 등장, 기업가 정신에 의문 제기
과거, ‘좀비벤처’라는 말이 있었다. 정부 자금에 의존해 연명하는 벤처기업 정도로 정의될 수 있는 좀비벤처는 소위 정부 과제를 수주, 여기에 집행되는 ‘인력비’를 활용해 기업을 연명해나가는 기업을 말한다. 이들은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창업을 한 후, 비즈니스로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시장에 사장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즉, 기술력에 의존해 창업한 기업은 시장에 안착할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정부 과제를 수주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대변한다.
 
하지만 최근 늘어나고 있는 ‘좀비기업’은 그 형태가 조금 다르다. 이를 들여다보면, 기존 좀비벤처와는 달리 개발능력이 부족한 팀, 즉 기술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스타트업들이 ‘사업아이템’을 내세워 정부과제를 수주, 이후에 제대로 된 기술개발이나 비즈니스 확장을 하지 않은 채 폐업을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지어 매출이나 매출계획조차 없이 수주한 정부과제의 사업비 놀음에 심취한 팀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 자금이 마른 이들은 아이템 피봇(Pivot) 과정을 통해 또다시 ‘아이템 놀음’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죽지도, 살지도 않은 스타트업 기업들을 소위 ‘좀비기업’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이 같은 형태의 기업들이 많아지자 최근에는 스타트업·벤처 기업들이 정부 정책자금 신청 시 필요한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대필(代筆) 사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업계획서 대필을 맡은 벤처기업 대표 중에는 심지어 정부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위원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고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이 지난해 10월 ‘스타트업·벤처기업 정부지원 사업현황’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사업계획서 대필 사업에만 몰두하는 이를 두고 ‘스타트업계 내부의 기업가 정신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보육·투자 등 경영컨설팅 업체인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김영덕 센터장은 지난 1월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의 초혁신 창업수도 아시아 초연결’ 토론회에서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금을 받고 나면 지원금 관련 행정비용으로 대부분을 소모하고, 실제 투자에 쓸 수 있는 금액은 전체의 25% 수준에 그친다”며 “기업 지원금을 늘리는 것보다 이런 비효율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고 꼬집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창업보육기관인 K-ICT 본투글로벌의 김종갑 센터장은 “요즘은 정부·투자회사들의 자금도 많이 풀리고, 임대공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많아 스타트업들은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여기서 멈춰버리면 다시 과거처럼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고하기도 했다.
 
싱가포르가 증명한 관대한 지원의 함정
한편, 이 같은 좀비기업이 대한민국의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IT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좋은 나라로 잘 알려진 싱가포르에서 정부의 지나친 지원으로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보도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알려졌다. FT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처럼 벤처 기업 문화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싱가포르 정부지만, 국립싱가포르대학교(NUS) 기업가센터의 조사 결과 2017년 기준, 530개 싱가포르 IT 기업 중 56.8%인 301개 기업이 고용도 10명 미만에 연평균 성장률도 지속가능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좀비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의 수는 2010년 19%에서 2016년 69%로 크게 늘어났지만, 매출액이 과거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지속해서 고성장한 중소기업을 일컫는 ‘가젤기업’(Gazelles Company)은 불과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해당 연구를 주도한 NUS의 웡포캄(黃寶金) 교수는 “싱가포르 정부가 85%의 자금을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그대로 본떠서 벤처 육성 방안을 만들었지만, 이스라엘과는 달리 자격 조건이 엄격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이것이야말로 정부의 관대한 기업 지원 자금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라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사례를 비추어봤을 때 대한민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많은 창업가 사이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실질적으로 창업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국내에 스타트업의 개념이 들어온 지 10년이 되지 않은 지금, 활성화되지 않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지원되는 정부 과제의 형평성과 규모가 맞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심지어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공무원조차 스타트업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가 부족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자는 “매년 조 단위의 예산이 우리나라의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위해 책정되는데, 이 중 상당량이 자생할 능력이 부족한 좀비기업에 흘러 들어간다”며 “정부 지원 자체가 목적인 좀비기업은 대한민국 스타트업계 생태계를 흐리기에 이에 대한 기준과 규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업계를 단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일부 ICO(가상화폐공개) 업체들이 백서를 발행함에 있어 법적 문제가 될 수도 있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ICO를 단행하는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블록체인의 발전이 눈부신데, 최소한의 법적 가이드라인은 갖춰 ‘정당한 범법’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기준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블록체인은 극히 단적인 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서 정부는 적극적인 관심과 명확한 기준, 그리고 규모의 논리를 적용키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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