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단독 인터뷰]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이끈 ‘미다스의 손’
[이슈메이커 단독 인터뷰]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이끈 ‘미다스의 손’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8.10.10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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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김창환 회장

[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이끈 ‘미다스의 손’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한 꽃길을 닦다

 

음악산업의 투명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지난 4월 무명에 가까웠던 가수 닐로는 ‘지나오다’라는 노래로 음원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닐로의 음원 차트 순위 급상승을 두고 사재기가 아니냐는 조작 논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근 같은 이유로 가수 숀이 부른 ‘웨이 백 홈’의 음원 차트 1위도 대중의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두 가수 모두 음원 조작 및 사재기 등의 부정한 행위는 없었다고 강조하지만, 의심의 눈길은 가시지 않았다. 이처럼 K-POP을 통한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며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만 그 이면에 음악산업의 불신은 여전히 존재한다.
 

2008년 국내 주요 음반 제작사 및 유통사, 해외 직배사 등의 회원사로 구성되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식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인 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하 음콘협)는 지난 3월 정기 이사회를 통해 김창환 회장이 당선되며 회장직을 연임하게 됐다. 김 회장은 ”협회는 협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며 "회원사와 협회가 함께 업계에 엉켜있는 많은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음악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당선 소감을 남겼다. 흔히 어떤 단체나 협회든 회장직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인 그가 대한민국 음악산업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어려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고자 음콘협 3대 회장은 물론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이하 미디어라인)의 수장인 김창환 회장을 이슈메이커가 직접 만나보았다.

Q. 음콘협의 회장 연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 보통 협회의 수장은 사업수완이 뛰어난 사업가가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전 사업가가 아니고 감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음콘협 회장직 연임을 받아들인 이유는 가요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가요계는 겉으로 보이는 외적 성장보다 시스템은 선진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요계 발전을 위해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며 새로운 길을 닦아 온 것처럼 음콘협 회장직 연임을 통해 불투명한 가요계의 어두운 부분을 투명하게 돌려놓는 것이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Q. 가요계를 대변하는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음콘협에서는 어떤 업무가 진행되나요?

-음콘협은 급변하는 음악 시장의 미래 지향적 산업 정책을 수립하여 한국 음악콘텐츠 발전을 진행 시킵니다. 더불어 온, 오프라인 불법 시장의 확대에 따른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처 방안을 마련함과 동시에 업권 보호와 권익 강화를 위한 업무를 지속해서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음악산업을 두고 수많은 단체와 기관이 존재합니다. 다수의 단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향점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음콘협은 음악산업 종사자는 물론 제작사와 유통사까지 포함된 단체로 음악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Q. 가요계의 투명화를 위한 작업은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요?

- 최근까지도 가요계에 종사하는 권리자들이 받아야 하는 보상이나 정산시스템이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지난 임기부터 이 부분에 중점을 뒀고 지금은 어느 정도 개선된 상태입니다.

Q. 최근 음원 차트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음콘협에서도 가온차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 음반 판매량에 대한 집계이므로 대중의 음원 선택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 음원 차트를 향한 팬들과 가요계 관계자들의 불만은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운영을 잘하더라도 피해자는 나오기 때문입니다. 음콘협에서도 최근 의심을 받는 일부 가수들의 음원 성적에 예의주시하며 자체조사도 진행 중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견해는 이들이 사재기를 했다면 법적으로 처벌하면 되지만 이들의 홍보 마케팅 방법이 기존 아이돌의 방법과는 다르다고 의심한다면 이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음원 차트에서 아이돌 음악이 1등 하는 것은 당연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가 새 앨범을 발매하면 인트로부터 마지막 곡까지 모두가 순위권에 오르는 것 역시 어찌 보면 팬들의 사재기일 수 있습니다. 중소 음반 제작사와 가수는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기회조차 뺏지 않으려면 다양한 검증을 통해 공정한 차트 운영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남은 임기 동안 음콘협 회장으로서 이루고픈 바는 무엇일까요?

- 그동안의 임기 중 많은 부분을 투명화시키려 노력했고 실제로 개선된 부분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산업 곳곳에 흩어져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사명감으로 비정상의 정상화에 집중하겠습니다. 제가 비록 어려운 길을 걷더라도 이를 갈고 닦아 새로운 꽃길을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싶습니다.

 

프로듀서 김창환이 전하는 좋은 음악의 정의
 

대중음악계에서 김창환 회장은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노이즈, 클론 등 그의 손을 거친 이른바 김창환 사단은 모두가 스타가 되었고 그들이 부른 노래는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아이돌 음악을 위주로 재편된 음악 시장에서 부침의 시기도 겪었던 김 회장은 EDM을 국내 음악계에 알리고 영재밴드 ‘더 이스트라이트’를 대중에게 선보이며 여전히 대한민국 음악계의 중심에 있다. 팬들에게 늘 새로운 음악을 선사하는 그를 작곡가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은 작곡가가 아니라 프로듀서라고. 그가 자신을 프로듀서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프로듀서 김창환이 전하는 좋은 음악의 정의가 궁금해 인터뷰를 이어갔다.
 
Q. 처음 제작한 음악이 대중에게 소개됐을 당시의 기분이 궁금합니다.

- 저는 프로듀서도 활동하기 이전에도 음악을 해왔고 음악을 사랑해왔습니다. 젊은 시절 팝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외국 가수들은 저렇게 멋진 음악을 만드는 데 우리 가요는 왜 이렇게 촌스러운지 아쉬움이 컸습니다. 더욱이 당시 국내 댄스 음악의 앨범 판매량은 발라드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댄스 음악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을 바꿔보고자 노력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당시 존재했던 발라드보다 더 나은 발라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입니다. 앨범 판매 100만 장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기에 이 앨범은 100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당시의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차를 세워 다 듣고 이동할 만큼 흥분되고 좋았습니다.

Q. 대한민국 프로듀서 1호로 알려져 있다.

- 일부 언론과 대중은 아직도 저를 작곡가 김창환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작곡가라는 타이틀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가요계에 오기 전까지 국내에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1호 프로듀서로서 자부심이 있었기에 프로듀서 대신 작곡가로 저를 표현하는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작곡가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 하나가 아닌 앨범과 가수의 색에 맞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감독입니다. 프로듀싱하는 가수에게 적합한 색의 곡이 나오지 않을 때 직접 음악을 만드는 것이지 그 외의 경우는 음악을 만들지 않습니다. 제가 만든 앨범들이 연이어 100만 장 판매를 넘기고 이들만이 가진 색이 있었기에 가요계에서도 프로듀서가 중요함을 깨닫고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Q. 본인이 프로듀싱한 수많은 음악 중 BEST 3는 어떤 곡일까요?

- 아무래도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대중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곡이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1위는 핑계, 2위는 잘못된 만남, 3위는 꿍따리 샤바라입니다. 어찌 보면 이들 음악 모두를 제가 만들었기에 대중에게 김창환은 작곡가의 이미지로 각인됐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작곡을 했든 프로듀싱을 했던 대중음악가로서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이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Q. 프로듀서로서 본인만이 가지는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 누구보다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 눈이 저만의 경쟁력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저도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20대 친구들과 비교해도 음악적 트렌드에서 뒤처지지 않습니다. 비록 미디어라인에서 아이돌 육성은 하지 않지만 EDM을 대중화시키고자 했으며 클론의 구준엽을 DJ KOO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DJ로 키웠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왜 구준엽이 DJ가 됐는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클론의 구준엽보다 DJ KOO가 대중에게 친숙할 것입니다. ‘PICK ME’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저런 이상한 곡을 부르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 노래는 대한민국을 강타하게 됐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국내 음반 트렌드에서 여전히 많은 기획사가 김창환이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유입니다.
 
Q. 대중에게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을까요?

- 수많은 음악평론가가 존재하지만 그들에게 인정받기보다 대중에게 기억되는 음악인이 되고 싶습니다. 1982년 영화 ‘ET’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떠한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ET는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고 사랑받습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기억에 한 곡을 남기기 힘든 경우가 다수임을 생각하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자 프로듀서입니다. 개인적으로 평론가들이 전하는 음악성이 아닌 대중에게 기억되고 사랑받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며 앞으로도 대중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노래를 남기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음악계에 큰 발자국을 남기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던 김창환 회장. 그에게도 어려운 시간은 있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회장은 음악산업이 아이돌과 음원 중심으로 변하며 그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물이 온라인에서 공짜로 공유되는 현실이 프로듀서로서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역시 아이돌 가수를 키워보고자 했으나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김창환 회장과 맞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EDM이었고 아이돌은 아니지만 음악을 잘하는 영재들을 가르치고 성장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김 회장의 머리를 채웠다. 그렇게 믿고 듣는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가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김창환 회장은 ”이제 큰 욕심은 없습니다. 음콘협 회장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고 더 이스트라이트가 더 큰 사랑을 받길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제 음악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예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음악 시장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찾아서 듣길 바랍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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