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r Culture] 대중문화, ‘직장’에 빠지다
[Popular Culture] 대중문화, ‘직장’에 빠지다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12.23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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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애환’, 대중문화콘텐츠의 인기코드로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Popular Culture] 대중문화 속 직장



대중문화, ‘직장’에 빠지다


‘직장인의 애환’, 대중문화콘텐츠의 인기코드로


▲ⓒtvN 홈페이지




‘직장인들의 애환’이 대중문화콘텐츠의 화두이자 인기 코드로 자리 잡았다. 예능, 교양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이 잇달아 직장인들의 애달픈 감성을 어루만지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삶을 냉정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해 호평을 얻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 지난 10월 17~18일 불과 2회 분이 방송된 후 시청자들은 “내 이야기”라며 공감했고, 1% 남짓한 시청률에서 시작해 방영 3회 만에 3%대(닐슨코리아)를 돌파했다. 최근 ‘미생’은 입소문 덕분에 시청률이 5%대까지 상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미생’ 신드롬…원작 웹툰도 재조명


케이블채널로서는 드물게 시청률 5%대를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미생’은 사내정치, 엄격한 상하관계, 부서 간 경쟁, 워킹맘, 사내 성희롱 등 직장 내 엄존하는 소재와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다루며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고 있다. 특히 임시완, 이성민, 강소라 등이 6인의 주연배우가 분한 극중 인물은 각각 신입사원, 과장, 특출 난 여직원 등 또렷한 캐릭터와 개성을 지녔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PD가 동명 웹툰을 드라마로 옮기는 과정에서 러브라인 없이 직장인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그리겠다고 공언한 ‘미생’이다. 묵직할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은 드라마를 하고 싶었다’면서도 ‘웃기고 슬픈 코미디를 담아내고 싶었다’는 김원석 PD의 연출 의도처럼 적절한 유머 코드가 섞인 점도 ‘미생’의 극적 긴장감과 흥미를 조율하는 요소다.


  오상식 과장 역의 이성민은 ‘미생’의 흥행 원인에 대해 ‘보편성’을 꼽는다. 그는 “직장인만의 이야기였다면 여러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며 “직장 안에서 사람,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관계성도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생’의 등장인물들은 비뚤어진 시스템 속에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생생히 살아있으며 그 속에서도 꿋꿋이 하루를 버텨냄으로써 ‘완생’을 꿈꾸는 존재”라며 “‘미생’은 단순히 직장인들의 판타지가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원작보다 더 사실적이고 애잔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작을 못 본 팬들의 관심까지 높아지면서 교보문고, 예스24 등 각 온라인 서점에서는 9권으로 꾸며진 ‘미생’ 세트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성인용 만화가 박스세트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구매력 있는 직장인들의 주문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나 자기계발 등을 다룬 책들도 꾸준히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눈길을 끌고 있는 tvN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늘부터 출근’ 역시 8명의 연예인이 5일 간 기업체의 신입사원으로 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장을 발로 뛰는 영업사원이 된 은지원과 봉태규는 회식자리에서 단합된 분위기를 느끼는가 하면, 홍진호와 카라 박규리는 외식 프랜차이즈의 메뉴개발팀에서 개발자가 되기도 했다. ‘오늘부터 출근’ 연출의 고민구 PD는 기획 배경에 대해 “그동안 방송은 군대부터 학교까지 각이 있는 공간 속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직장이야말로 살아가는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을 할애하는 장소로서 방송에 담아내기 매력적인 소재였다”고 전했다. 



▲ⓒtvN 방송 화면



직장인 소재 예능·드라마 쏟아져


직장인들의 애환을 개그와 노래로 풍자해 웃음을 안기고 있는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렛잇비’도 있다. 개그맨 박은영, 이동윤, 노우진, 송필근 등이 스펙을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의 취업 풍토부터 ‘술병, 월요병, 상사병 등을 앓고 있는 직장인은 종합병원’이라는 현실을 풍자해 공감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렛잇비’가 직장생활 전반을 소재로 한다면 tvN ‘코미디 빅 리그’의 ‘리액션 스쿨’은 직장 안에서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상사의 썰렁한 농담에도 과도한 리액션을 보이는 직장인의 모습을 개그화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KBS 2TV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도 가족들의 이야기만 하다가 최근부터 ‘직장의 품격’이라는 새 코너를 만들었다. 촬영 세트도 직장 동료들끼리 퇴근 후 한잔 기울이며 애환을 이야기할 수 있는 포장마차로 꾸몄다. 제작진들은 “직장인들을 위한 공감백배 콩트 토크쇼”라며 “가족들에게도 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직장 동료에게 털어놓고, 함께 사는 재미를 이야기하고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2일부터 총 4부작으로 방송 했던 KBS 1TV 교양프로그램 ‘나, 출근합니다’도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최양락, 팽현숙, 엄길청 등이 출연하고 이재룡이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은 중장년층을 위한 재취업 프로젝트다. 실직과 퇴직 후 고개 숙인 한 가정의 가장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지난 11월 13일 개봉한 영화 ‘카트’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명했다. 영화는 우리 사회 약자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염정아, 문정희, 천우희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 등 캐스팅 면면도 화려하다. ‘카트’는 “회사가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줄 알았던” 마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갑작스런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대항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개인사를 통해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는 물론 88만원 세대, 10대 아르바이트생 임금 착취, 감정노동 등 다양한 노동의 문제도 함께 짚는다.


  이처럼 직장인의 애환과 회사문화를 소재로 삼아 시청자의 공감을 유도해 파급력을 확산시키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직장인을 다룬다면 부수적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샐러리맨의 비애, 가장의 고충처럼 막연한 것이었다. 반면 최근의 경우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일의 세계를 깊숙이 그리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를 정밀 묘사하는 것이 호평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미생’ 연출을 맡은 이재문 PD도 “직장인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일상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직장은 ‘전쟁터’ 


봇물처럼 쏟아지는 직장 소재 대중문화 콘텐츠는 일자리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높고 절실함을 입증한다. 예전엔 직장생활이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결혼과 육아가 그렇듯 판타지와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오늘부터 출근’을 기획한 김석현 CJ E&M 부국장은 “기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 시청자들이 직장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높다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졸 출신이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멋지게 성장하는 이야기(미생)가 어느 영웅담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도 그만큼 현실에서 실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는 예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과거 대중문화 속 직장이, 여직원이 그룹 오너의 아들과 연애하는 공간이거나 소소한 갈등이 존재하는 곳이었다면 요즘의 직장은 훨씬 드라마틱하고 살벌해졌다. 방송에선 이미 지난해 드라마 ‘직장의 신’이 화제가 됐다. 코믹함이 강하고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긴 하나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 김이 겪는 에피소드엔 한국 비정규직의 일상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회식은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고 생계를 나누는 곳” 등의 돌직구 대사가 회자되기도 했다. 


  90년대 대표적인 ‘오피스물’인 KBS ‘TV 손자병법’(1987∼1993년 방영)과 요즘의 ‘미생’을 비교해보자.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에 가깝던 시절 제작된 ‘TV 손자병법’은 직장인인 등장인물끼리 소소한 오해와 갈등을 겪지만 금세 화해하는 가족극에 가까웠다. 반면 ‘미생’ 속 직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턴 등 계급이 다른 사람들 간 차별과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영업 경쟁, 사내 정치가 살벌하게 오고가는 전쟁터에 가깝다.


  비정규직 처우와 같은 노동 문제가 진지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미생’의 주인공은 인턴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도 신분증 색깔이 다른 2년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카트’는 비정규직 해고 문제를 모른 척하는 정규직의 이기심을 꼬집는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같은 공간에서 하는 일이 같더라도 신분이나 소속이 다른 사례가 늘다 보니 직장에서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의 갈등이 더 정교해지고 늘어났다. 대중문화 콘텐츠 역시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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