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I-에로스(Eros)] 역사 이면의 에로티시즘
철학적 에로스가 이끄는 사랑의 광기, 동성애
수많은 예술의 모티브가 된 자극적인 비애
색정적인 이미지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환기하는 경향을 뜻하는 용어인 ‘에로티시즘(Eritucism)’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에서 유래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알려진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대부분의 미술 작품에 등장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에서 날개 달린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에로스는 헬레니즘 시기로 접어들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성에 대한 동경, 신화 속 동성애
에로스(Eros)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인간의 내면과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된 수많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감정적 욕구를 소년애를 통해 표출했다. 이러한 동성애는 인류의 시작 이래 줄곧 있어왔으나, 이 시기를 거치며 특정한 성적 지향의 하나로써 존재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지던 성인과 소년 간의 동성애는 ‘그리스식 동성애(Greek love)’로 지칭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회현상으로까지 여겨지며 예술품이나 저작활동, 신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성관계 대상의 동성, 이성의 여부보다는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따른 적극성 여부를 중요하게 여겼다. 기원전 5세기경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향연」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현재까지도 동성애 논란이 지속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앞에 분노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친구의 그것보다는 연인의 슬픔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비명에 죽었는데, 이 세상의 무엇이 제게 기쁨을 주겠습니까? 제 모든 백성 중에 그를, 그 친구를 저는 가장 존경했으며, 제 몸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런 친구를 잃었습니다”라고 절규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와 미소년 가니메데스의 관계도 동성애 중 하나이다.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가니메데스의 미모에 반해 그를 납치한다. 자신의 독수리를 보냈다고도 하며, 자신이 스스로 독수리로 변신해 데려왔다고도 한다.
유명한 신화 속 인물인 헤라클레스에게서도 동성애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데리고 다니던 미소년 힐라스에 관한 일화가 그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힐라스를 대동하고 아르고 호의 모험에 동참했다. 아르고 호가 잠시 미시아에 정박했을 때 헤라클레스는 힐라스와 함께 배에서 내려 숲으로 들어갔다. 헤라클레스는 부러진 노를 만들 나무를 구하려 했고 힐라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줄 물을 길으려 했다. 힐라스가 헤라클레스와 떨어져 샘물을 찾아 통에 물을 길으려고 고개를 숙이려 했을 때, 샘물의 요정들이 그의 미모에 반해 갑자기 목을 끌어 당겨 그를 샘물 속으로 데려가고 말았다. 헤라클레스는 미친 듯이 힐라스를 찾아다녔고, 아르고 호는 결국 헤라클레스를 그곳에 놔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동성애 요소는 로마 시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쉽게 수용되지 않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상류 사회에서는 여전히 그리스식 동성애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이집트 청년인 안티노우스를 특별히 총애해 여러 가지 특혜를 베풀었다. 안티노우스는 황제의 제국 순행에 동행하다가 나일 강에 빠져 익사했고, 황제는 그를 기리며 안티노폴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한다. 점성가의 예언에 따라 황제를 불행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을 강물에 던져 제물이 되었다고 신격화되고 있는 안티노우스의 일화는 한편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외모가 변화하던 안티노우스가 황제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자살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탐욕적인 성행위로 분류된 동성애
동성애의 박해가 시작된 것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허용되기 시작한 이후이다. 콘스탄티우스 2세 치하인 342년 처음으로 동성애에 대한 처벌이 입법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적인 국교로 인정한 4세기에 이르면 동성애는 공식적인 규탄의 대상이 된다.
이후 538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하에서 “자연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자신의 머리칼에 선서를 하거나, 여타의 방식으로 신을 모독하는 자”를 고문을 가한 뒤 화형에 처하도록 규정하면서 계간죄, 소도미 개념이 탄생하였다. 이때부터 동성애는 교회법에 의해 죄악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동성애는 자위행위나 피임처럼 신이 허용한 성교의 본래 목적인 종족 보존과는 무관한 탐욕적인 성행위내지, 이교도의 우상숭배라는 해석을 하여 성경의 계율을 어긴 범죄로 본 것이다. 성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를 비난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뜻하는 소도미(Sodomy)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