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人 I - 에로스] 철학적 에로스가 이끄는 사랑의 광기, 동성애
[로그人 I - 에로스] 철학적 에로스가 이끄는 사랑의 광기, 동성애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11.27 13: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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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로그인 I-에로스(Eros)] 역사 이면의 에로티시즘





철학적 에로스가 이끄는 사랑의 광기, 동성애


수많은 예술의 모티브가 된 자극적인 비애






색정적인 이미지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환기하는 경향을 뜻하는 용어인 ‘에로티시즘(Eritucism)’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에서 유래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알려진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대부분의 미술 작품에 등장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에서 날개 달린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에로스는 헬레니즘 시기로 접어들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성에 대한 동경, 신화 속 동성애


에로스(Eros)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인간의 내면과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된 수많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감정적 욕구를 소년애를 통해 표출했다. 이러한 동성애는 인류의 시작 이래 줄곧 있어왔으나, 이 시기를 거치며 특정한 성적 지향의 하나로써 존재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지던 성인과 소년 간의 동성애는 ‘그리스식 동성애(Greek love)’로 지칭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회현상으로까지 여겨지며 예술품이나 저작활동, 신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성관계 대상의 동성, 이성의 여부보다는 나이와 사회적 지위에 따른 적극성 여부를 중요하게 여겼다. 기원전 5세기경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향연」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현재까지도 동성애 논란이 지속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앞에 분노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친구의 그것보다는 연인의 슬픔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비명에 죽었는데, 이 세상의 무엇이 제게 기쁨을 주겠습니까? 제 모든 백성 중에 그를, 그 친구를 저는 가장 존경했으며, 제 몸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런 친구를 잃었습니다”라고 절규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와 미소년 가니메데스의 관계도 동성애 중 하나이다.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가니메데스의 미모에 반해 그를 납치한다. 자신의 독수리를 보냈다고도 하며, 자신이 스스로 독수리로 변신해 데려왔다고도 한다. 


  유명한 신화 속 인물인 헤라클레스에게서도 동성애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데리고 다니던 미소년 힐라스에 관한 일화가 그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힐라스를 대동하고 아르고 호의 모험에 동참했다. 아르고 호가 잠시 미시아에 정박했을 때 헤라클레스는 힐라스와 함께 배에서 내려 숲으로 들어갔다. 헤라클레스는 부러진 노를 만들 나무를 구하려 했고 힐라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줄 물을 길으려 했다. 힐라스가 헤라클레스와 떨어져 샘물을 찾아 통에 물을 길으려고 고개를 숙이려 했을 때, 샘물의 요정들이 그의 미모에 반해 갑자기 목을 끌어 당겨 그를 샘물 속으로 데려가고 말았다. 헤라클레스는 미친 듯이 힐라스를 찾아다녔고, 아르고 호는 결국 헤라클레스를 그곳에 놔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동성애 요소는 로마 시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쉽게 수용되지 않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상류 사회에서는 여전히 그리스식 동성애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이집트 청년인 안티노우스를 특별히 총애해 여러 가지 특혜를 베풀었다. 안티노우스는 황제의 제국 순행에 동행하다가 나일 강에 빠져 익사했고, 황제는 그를 기리며 안티노폴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한다. 점성가의 예언에 따라 황제를 불행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을 강물에 던져 제물이 되었다고 신격화되고 있는 안티노우스의 일화는 한편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외모가 변화하던 안티노우스가 황제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자살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탐욕적인 성행위로 분류된 동성애


동성애의 박해가 시작된 것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허용되기 시작한 이후이다. 콘스탄티우스 2세 치하인 342년 처음으로 동성애에 대한 처벌이 입법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적인 국교로 인정한 4세기에 이르면 동성애는 공식적인 규탄의 대상이 된다. 


  이후 538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하에서 “자연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자신의 머리칼에 선서를 하거나, 여타의 방식으로 신을 모독하는 자”를 고문을 가한 뒤 화형에 처하도록 규정하면서 계간죄, 소도미 개념이 탄생하였다. 이때부터 동성애는 교회법에 의해 죄악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동성애는 자위행위나 피임처럼 신이 허용한 성교의 본래 목적인 종족 보존과는 무관한 탐욕적인 성행위내지, 이교도의 우상숭배라는 해석을 하여 성경의 계율을 어긴 범죄로 본 것이다. 성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를 비난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뜻하는 소도미(Sodomy)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다.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지오의 「바쿠스」(Bacchus)



  그러나 중세 시대 유럽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동성애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많은 사료에서는 당시 수도원이나 기사단처럼 남성 중심의 단체에서 동성애 관계가 존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도 동성애는 결코 광범위한 사회적 인정을 받은 적은 없으며, 폐쇄적인 궁정 사회와 일부 시민 사회에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정도로 그쳤다. 실제로, 르네상스 시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동성애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죄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서는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로 보이는 인물이 많이 있다.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말로위,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바지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로 불리는 카라바지오의 ‘바쿠스’와 같은 작품들에서는 남성적인 육체의 특징과 여성을 연상시키는 자세 및 시선을 동시에 가진 인물을 통해 동성애적인 취향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올리버 크롬웰 집권기의 시범 실시를 거쳐, 1533년 헨리 8세 재위 중 동성애자를 교수형에 처하는 소도미법을 공포하였다. 1540년 7월에 이 법에 따라 월터 헝거포드 남작이 최초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 법률은 처벌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해석에 맡김으로써 동성 간 성행위 및 수간 등에 대한 처벌의 실제 집행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법은 이후 유럽과 제국주의하의 식민지 국가들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1500년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에스파냐은 많은 원주민들이 공개적이고 자연스러운 동성애 관계를 맺는 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결국 에스파냐 침략자들은 동성애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으며 화형, 개에게 먹이로 주는 등의 공개처형을 시행하였다


▲불타고 있는 도시 소돔(Sodom)





예술적 모티브로 작용한 동성애


예술 전반에서 폭넓게 나타나고 있는 동성애적 성향은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지 못하다. 중세 시대만해도 ‘일리아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동성애적 코드 탓에 금서로 분류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포함해 버지니아 울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알렉산드로스 대왕 등 동서고금을 막론한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 예술가들이 동성애자였다는 의견이 분분하며, 이제까지 동성애가 많은 이들의 예술적 모티프로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는 오랫동안 세인들 사이에서 뭇매를 맞아왔다. 


  영국의 소설가 겸 비평가였던 버지니아 울프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은 현재에는 대부분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다. 1912년 남편인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성적인 관계는 거의 전무했다고 한다. 울프의 애인으로 지목되는 여인은 열 살 연하의 작가 비타 웨스트라는 인물이다. 후일 영화화를 통해 유명해진 울프의 소설 ‘올란도’는 비타 웨스트를 모델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를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시인 랭보와 베를렌느 역시 동성애적 관계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견 그리스의 학자와 소년애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들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결국 비극적인 파탄을 맞이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또한 1991년 프랑스 잡지 ‘피가로’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 어린 시절 가정, 교회, 학교와 같은 엄격한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동성애 아랍 소년들과 몰래 교제해왔다고 고백한 것이다. 




  ‘레니’라는 애칭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미국 출신의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 또한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1951년 결혼한 펠리치아와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고, 병상에 누워있던 부인이 암 선고를 받자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등 아내를 깊이 사랑했던 그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기도 했다. 남성들과 필요 이상으로 친밀하게 행동하는 그에게 아내 펠리치아가 “이제 남자들을 유혹하는 짓은 그만해”라고 말하면 번스타인은 “무슨 소리야? 예술가란 호민테른(호모+코민테른)같은 존재야”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얼마 전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의 커밍아웃이 크게 화제가 됐다. 그의 갑작스런 동성애 고백에 애플 주가는 일시적으로 폭락했으며,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는 종교를 가진 국가에서는 애플 제품 불매운동이 일기도 했다.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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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2020-03-17 17:50:00
유용하고 알찬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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