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人 II - 에로스] 에로티시즘, 천박함과 진정성 사이의 미학
[로그人 II - 에로스] 에로티시즘, 천박함과 진정성 사이의 미학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11.27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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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에 대한 도전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은유로서의 에로티시즘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로그인 II-에로스] 영화와 에로티시즘




에로티시즘, 천박함과 진정성 사이의 미학


통념에 대한 도전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은유로서의 에로티시즘





오늘날 에로티시즘은 고전적 표현 예술인 문학·미술뿐 아니라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사진·광고·패션·영화·컴퓨터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화되었다. 특히 영화는 에로티시즘 영화라고 불린 만한 많은 작품들이 쏟아졌다. 대표적 에로티시즘 영화인 베르톨루치 연출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Last Tango in Paris>는 1973년 당시 음란하다는 비난과 함께 감독이 감옥에 갇힐 정도로 외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색,계>까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에로티시즘 영화들을 살펴본다.





날것 그대로의 에로티시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성에 대한 가장 유명한 영화’인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을 법정에까지 세웠던 당대의 ‘위험한 영화’이자 문제작이었다. 낯선 여자에 대한 베르톨루치 감독의 성적 판타지에서 시작한 영화는 로맨스 없는 ‘날것 그대로의 섹스’를 보여주는데, 개봉 이후 평단과 각국의 심의당국과 여론과 영화산업이 이 영화에 보낸 반응은 다양하면서도 뜨거웠다. 그리고 이 영화의 계보 안에서 수많은 에로티시즘 영화들이 등장했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그때마다 환기되는 영화가 되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파격적인 섹슈얼리티를 다룬 영화였으며 개봉 이후 커다란 논쟁을 몰고 왔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등장하는 오프닝 크레딧부터 섹스에 대한 이 영화의 독창적 관점은 시작된다. 영화를 준비하던 1971년, 파리에서 베이컨의 대대적인 전시회가 있었는데 베르톨루치는 그곳에서 영화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었고 주요 스태프 및 말론 브랜도와 함께 여러 차례 전시회를 찾았다. 그가 영화에 삽입한 그림은 〈루시안 프로이트와 프랑크 아우어바크의 이중초상〉과 〈초상 습작〉. 베이컨의 그림은 인간의 신체를 해부하고 파괴해 하나의 고깃덩어리처럼 보여주는데, 베르톨루치는 영화에서 브랜도의 얼굴을 “내면에서 솟아나온 무엇이 얼굴 윤곽을 침식하고 있는 듯한 인물”로 보이기 원했으며, 영화 첫 장면 절규하는 브랜도의 얼굴을 크레인 숏을 이용해 그로테스크하게 잡아낸 건 그런 이유였다.  흥미로운 건 적잖은 철학자들이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를 통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지닌 섹슈얼리티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가 나온 지 9년 뒤인 1981년에 출간된 〈감각의 논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에 대한 철학적 분석서인데, 이 책에서 들뢰즈는 “베이컨의 회화가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형태적인 상응 대신에,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고 명확히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은 동물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즉, 베이컨은 인간을 특별한 유기체가 아닌,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기’(肉)로 보았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는 베이컨이 인간을 ‘머리-고기’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머리-고기’란 ‘인간의 동물 되기’와 다름없다.




  어떻게 보면 베르톨루치는 들뢰즈에 앞서 베이컨의 회화에 대한 탁월한 주석을 단 셈인데, 김용규는 “얼굴은 뭉개져 불분명하고 단지 살덩어리인 신체, 곧 ‘머리-고기’만 있는 (영화에 언급된) 이 남녀의 초상은 기존의 모든 인간적 가치를 해체하고 누구인지도 모르며 이름조차 모르는 채 성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 영화의 두 남녀주인공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을 내린다. 그러나 영화에서 폴과 잔느에게 ‘동물 되기’, 즉 섹스의 의미는 다르다. 아내의 자살 이후 폴은 고통 속에서 파괴와 해체의 의미로 섹스를 한다면, 잔느에게 섹스는 해방과 쾌락이다. 그렇다면 폴이 잔느에게 행하는, 즉 버터를 윤활제로 사용한 ‘애널 섹스’는 폴의 파괴적 방식이 잔느에게 폭력으로 가해진 것이며, 관계의 퇴행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폴은 잔느가 쏜 총에 맞아 죽게 되는데, 발코니에서 태아처럼 웅크리고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퇴행의 끝이며 역설적으로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감각의 제국>, 금기에 대한 도전


에로티시즘 영화를 얘기할 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못지않은 문제작으로 거론 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다. 영화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광기로 치달아가던 1936년, 오직 섹스에만 몰두하다 애인을 살해하고 성기를 절단해 사라진 아베 사다의 실제 이야기를 모델로 삼았다. 실제 신문 사회면 기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오시마 나기사는 프랑스와의 합작을 통해 거세와 죽음으로 이르는 지독한 사랑의 이야기를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완성했다. 그로 인해 감독이 기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세계 영화사에서 성 정치학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회자되는 오시마 나기사의 문제작이다.




  〈감각의 제국〉은 1936년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날부터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 5월18일에 이르기까지, 불과 4개월여 동안 벌어진 사랑의 도피 행각이다. 당시 일본은 전후 공황과 세계 대공황으로 말미암은 경제 악화의 상황 속에서, 군부 파시즘의 등장으로 괴뢰정권 만주국을 세우고(1932년) 국제연맹을 탈퇴하면서(1933년) 극단적인 우경화로 치닫고 있었다.  1936년 2월26일에는 일본군의 보수적 파벌 중 하나인 황도파의 영향을 받은 일부 청년 장교들이 일본 천황의 친정(쇼와 유신) 등을 명분으로, 원로 중신들을 죽이고 천황친정이 실현되면 정·재계의 부정부패나 농촌의 곤궁을 해결할 수 있다며 부대를 이끌고 새벽에 궐기하였다. 이 쿠데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지만 1930년대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를 잘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1937년 중일전쟁 및 1941년 2차 세계대전으로 돌입하기 직전 극도의 혼란기다. 영화에서 이발소에 다녀오던 기치조가 황색 제복을 차려입은 군대, 그리고 일장기를 흔들며 그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인파와 마주치는 장면이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적 배경을 공유하는 또 다른 작품은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다. 1935년에서 1937년 사이에 연재된 〈설국〉은 세상에 치여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시마무라와 온천 휴양지의 게이샤인 고마코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시대의 무거운 공기에 짓눌린 주인공들의 ‘일탈’과 ‘도피’를 보여준다.


  보수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영화사를 떠나 자신의 독립영화사를 차린 오시마 나기사는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영화를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었지만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1967) 등을 제작한 프랑스 제작자 아나톨 도망의 재정적 후원으로 〈감각의 제국〉을 만들게 된다. 당시 세계 영화계는 앞서 만들어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등과 함께 성적 해방의 기운이 무르익던 때였다. 하지만 오시마 나기사는 〈감각의 제국〉이 일본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일본에서 촬영하고, 프랑스에서 편집하고 현상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런 국가 부정의 급진적 태도는 기나긴 소송과 함께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극심한 비난에 시달린 여배우 마쓰다 에이코는 영화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도쿄에서 상영될 때는 ‘외국의 포르노’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프랑스어 자막을 넣기까지 했다. 비록 기나긴 재판으로 인해 오시마 나기사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지만, 〈감각의 제국〉은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다. 섹스에 탐닉하는 주인공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려 했던 〈감각의 제국〉은 ‘영화와 성 정치학’이라는 분야의 교본과도 같은 작품이다.





적나라한 정사장면으로 화제가 된 <색, 계>


장아이링의 동명 소설 〈색, 계〉을 원작 삼아 1930년대 후반 홍콩과 194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시기의 중국을 다룬 리안 감독의 영화다. 탕웨이, 양조위 주연으로,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여성이 친일파인 정보부 대장을 암살하기 위해 접근했다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을 다룬다. 156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 사실적인 정사 장면으로 논란이 되어 중국과 인도 등 다수 나라에서 삭제된 판본으로 상영되었지만 2007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영화제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제목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제목인 ‘색’(色), ‘계’(戒)는 상반된 듯하면서도 인간사를 관통하는 두개의 욕망을 의미한다. ‘색’은 성욕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감정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 ‘계’는 바로 감정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 즉 이성적 판단을 의미한다.


  〈색, 계〉의 원작자인 장아이링은 중국 문학사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청나라 말기의 대신 리홍장의 외증손녀라는 화려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1943년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했다. 1944년 그녀는 친일정부인 왕징웨이 정부 고위 관료인 후란청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친일파’ 작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1952년 홍콩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반공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중국 문학사에서 거의 이름이 지워진다. 195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30살 연상의 미국인 좌익 작가 페르디난드 레이어와 재혼했고 1995년 LA의 자택에서 홀로 사망한 채 뒤늦게 발견되었다.  1950년대에 집필되었고 1979년에 발표된 〈색, 계〉는 딩모춘 암살 기도 사건을 토대로 작성되었지만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 격변기에 살았음에도 민족이나 이념과 같은 거대 서사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그녀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력은 갖췄지만 사상적인 깊이가 결여되고 반민족적인 정치성을 지향했던 반동적인 작가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이후 재평가되고 있다.




  영화는 외부적 사건보다 인물의 내적인 변화-특히 왕치아즈(탕웨이 분)의 내면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아주 짧은 분량의 소설을 156분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확장하면서 원작에 없던 많은 내용을 삽입하였다. 이 영화에서 논란이 되었던 세 번의 정사 장면은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기술되지 않은 부분이다.


  이 영화는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정사 장면 때문에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삭제된 판본으로 상영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친일을 미화하고 애국지사들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상당히 비판적인 여론을 받기도 했고, 주연배우로서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인 탕웨이는 한동안 광고를 포함한 모든 형식의 영상 매체 출연에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는 불법 복제 DVD를 통해 이 작품을 보려는 이들이 많았으며 흥행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인 이 영화는 2007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대만의 금마장상에서는 감독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7개의 주요 부문상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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