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통해 답을 찾고자 했던 지도자의 고뇌
독서를 통해 답을 찾고자 했던 지도자의 고뇌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4.08.25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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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혜안을 기른 대통령들의 독서
[이슈메이커=김진영 기자]

[Book vs Book] 대통령이 사랑한 책




독서를 통해 답을 찾고자 했던 지도자의 고뇌 


세상을 읽는 혜안을 기른 대통령들의 독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한 나라를 운영하는 대통령들은 책을 통해 답을 찾고자 했으며 때론 국정운영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르를 불문하는 자타공인 애서가로 알려져 있으며 역대 미국대통령 중 가장 문장력이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 오바마 대통령도 잠자기 전에 독서를 하는 습관으로 유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천한 책은 바로 판매량이 급증하며 베스트셀러로 이어지기도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사랑한 책들을 만나본다. 





▲애서가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한국의 대통령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독서란 사람의 가치관과 사상을 구축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정신소양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읽고 가까이 두었던 책들을 보면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부분이 있다. 


  먼저 군인 출신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폴레옹’이나 ‘이순신’의 위인전을 가까이 했다고 전해진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이며 특히 나폴레옹의 경우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으로 혁명을 일으켜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위치에 오른 위인이다. 강력한 개혁정치를 실시했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은 언론인과 교수 10여명으로 구성된 독서토론모임 ‘근대화 연구회’를 특보제도로 임명할 만큼 독서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전 국민적 독서 진흥 정책 차원에서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고 전국적 경연대회를 연례적으로 개최했다.  


  36년 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일궈낸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타공인 애서가로 알려져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40여년에 걸친 투쟁의 역사, 그리고 6.15 남북 공동선언 채택 등 평화통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저력을 가늠하게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했으며 사형선고를 받은 후 5개월간 독방생활을 이어나갔는데 추후에도 당시를 회상하며 “생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영어공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던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통해 “78년과 80년에, 두 번에 걸쳐 있었던 5년간의 옥중 생활은 영어 실력을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며 책을 통한 배움의 열의를 전하기도 했다. 서거 당시까지도 3만 여권의 책을 소장할 정도로 독서광이었던 그였지만 평소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 삼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는 정독파였다.  영국 역사가 A.J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12권)’와 박경리 ‘토지(21권)’ 등을 즐겨 읽었으며 주로 역사서나 미래서적 등을 탐독했다. 국가 단위 역사관을 극복하고 문명의 발생·성장·쇠퇴·해체의 주기적 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던 ‘역사의 연구’와 동학혁명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인물들의 서사를 풀어나간 ‘토지’를 통해 시대와 역사를 바라보는 혜안을 길러나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별난 책사랑은 그가 쌓아올린 방대한 지식의 양과도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공식석상에서 50여권의 책을 추천할 만큼 현실정치에 직접 책을 통한 생각의 전환과 개혁을 주문했으며 ‘독서정치’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대표적인 다독가였다. ⓒ노무현 재단 홈페이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노선을 지향했던 ‘참여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독서에 있어 양대산맥으로 꼽힐 정도로 책 사랑이 남달랐다고 알려져 있다. 재임기간 중 공식석상에서만 50여권의 책을 추천할 만큼 현실정치에 직접 책을 통한 생각의 전환과 개혁을 주문했으며 ‘정부혁신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책을 몇 번에 걸쳐 탐독한 후 책의 내용을 인용하며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치를 펴내고자 하는 의지를 싣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도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길 즐겼으며 책을 나누어주며 함께 읽기를 권하기도 했다. 이에 저자 초청 강연회나 독서모임, 토론회 등이 개최되며 ‘독서정치’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대통령의 독서법’이라는 저서를 통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중요한 정부인사나 정책에 반영했는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대연정 제안의 이면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애독서가 작용했다고 한다”며 “비판적인 독서법에 익숙한 노무현 대통령은 비유법이나 농담에 능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탄핵 기간 중에는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김훈의 ‘칼의 노래’를 가까이 했다고 알려지며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많은 대중적 관심을 사기도 했다. 화끈한 낭만파 정치인답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서에 있어서도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다독파에 해당된다. 그는 퇴임 이후 봉하마을 뒷산에 토담집을 지어 독서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기업가 출신의 실용주의적인 성향을 독서습관에도 그대로 드러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빠른 일상이 몸에 밴 속독파로, ‘경제대통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실용서적을 주로 읽었다고 한다.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초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을 읽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추천사도 이 전 대통령이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국적인 열풍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의 공동저 ‘넛지’는 2009년 이 전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한 책으로 꼽혀 다음 달 매출이 두 배로 늘기도 했다.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책을 언급하는 것을 ‘책 흔들기’라고 보는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미국의 대통령


  미국의 유명한 작가 해롤드 에반스는 많은 자료들을 토대로 미국 대통령들의 독서 습관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독서광으로 선정한 22명의 대통령들 중에 미국인들이 뽑은 훌륭한 대통령 상위 10명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서습관이 지도자의 리더십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자신의 저서 ‘용기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로 책과 가까웠다. 유년시절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과 같은 모험담을 즐겨 읽었던 그는 도전정신과 모험심을 지닌 활발한 성격으로 자랐다고 한다. 그는 매일 잠들기 전 30분 동안 책 한권을 읽는 다독가이자 속독가로 알려져 있는데 책을 펼치기 전에 독서의 목적과 의지를 분명히 정하고 책을 읽을 때는 핵심을 찾아 사고하는 비판적 방식을 습관화했다. 명연설로 유명한 케네디의 웅변술은 다양한 책과 비판적 독서습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책을 많이 사고 쉴 새 없이 읽기로 유명하다. 연간 80권이 넘는 책을 읽는 그의 달변과 뛰어난 사리 판단력, 통찰력은 많은 독서량에 기인한다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다. 


  43대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고향 텍사스 내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텔레비전보다는 책을 읽어라. 책은 꿈을 심어준다. 너희들이 어른이 돼 펼칠 세상을 밝게 하는 건 텔레비전이 아니라 책이다”라며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의 독서사랑은 어머니 바바라 피어스 부시의 교육법에 기인하는데 바바라 부인은 본인 스스로도 책을 읽어 교양을 쌓는 것을 매우 중요시 했을 뿐만 아니라 다독을 통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했다고 한다. 조지 워커 부시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바바라는 형제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기도 했으며 글씨를 잘 읽을 수 있도록 플래시 카드를 만들어서 끈기 있게 가르친 선생님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소문난 독서광이다. 대학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면서 말 속에 깃든 ‘변화의 힘’을 경험한 그는 독서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대화법을 익혀나갔다고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흑인작가들의 작품에서 위안과 성찰을 얻었으며 랭스턴 휴즈, 제임스 볼드윈, 랠프 앨리슨, 리처드 라이트 등의 작품들을 섭렵했다. 대학시절에는 니체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 철학자의 책들을 가까이 했으며 시카고 지역사회 운동가로 활동할 당시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전기인 ‘파팅 더 워터스’를 애독했다. 매일 잠들기 전 30분씩 책을 읽는다는 그는 소설을 즐겨 읽는 만큼 문학적 감수성과 표현력도 매우 풍부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문장력이 좋은 대통령으로 손꼽힌다. 



▲1994년 문인협회에 가입한 공인 수필가이기도 한 박근혜 대통령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동서양 고전들의 글귀가 저를 바로 세웠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줬다”며 독서부흥에 힘을 실었다.



책을 보면 대통령의 생각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해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이방인 일러스트 판화집’(알베르 카뮈),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철학과 마음의 치유’(김정현), ‘답성호원(答成浩原)’(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이 주고받은 서신을 모은 책) 등 총 5권의 인문서적을 구입했다. 이후 해당 서적들은 없어서 못 팔정도로 재고본까지 몽땅 소진됐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매년 여름휴가를 떠나며 추천한 서적들도 서점가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면서 “굉장한(wonderful) 책”이라고 말하자마자 판매량은 40%나 뛰었고 10만부 가량이 팔릴 만큼 막강한 문화파워를 자랑한다. 


  대통령이 읽고 추천하는 책은 곧잘 베스트셀러에 링크되며 높은 판매로 이어지곤 하는데 이는 국가를 경영하는 대통령의 독서목록을 통해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정치적으로 대통령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기능한다는 견해다. 이처럼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책을 언급하는 것을 특정 출판사에 특혜시비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책 흔들기’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모두의 눈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 안으로만 쏠려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그들의 독서목록을 따라 책갈피를 꽂아 보는 것도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작은 투자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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