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人-도전 I] 끝없는 도전을 낳은 인류사의 키워드 ‘식량’
[로그人-도전 I] 끝없는 도전을 낳은 인류사의 키워드 ‘식량’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07.25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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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로그人-도전 I] 생존에 대한 인류의 도전




끝없는 도전을 낳은 인류사의 키워드 ‘식량’


식량을 길들이고, 식량에 지배되어 온 인류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식량의 역사다. 원시시대의 인류와 식량의 관계는 짐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렵과 고갈, 이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인간은 일주일에 2일 정도만 일해도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수렵채집으로는 식량수집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한정된 면적에서 많은 식량을 만들어내기 위한 농경이 시작된다. 농경은 곧 정착생활과 집단생활로 이어지고 이는 필연적으로 사유재산, 권력구조를 낳게 된다. 인류가 짐승에서 벗어나 현재에 이르게 된 가장 중요했던 도전. 바로 ‘생존에의 도전’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생존이다. 집과 의복, 사회관계는 모두 생존이 보장되었을 때 부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른 짐승들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뛰어난 근력도 가지지 못했던 인류는 매순간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식량을 획득하기 위해 싸워왔다. 인류의 도구사용은 ‘어떻게 하면 식량을 손쉽게 섭취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했던 시대, 발전은 빠르고 날랜 사냥감을 잡기 위한 덫이나 무기, 채취한 과일의 껍질을 벗기거나 보관하기 위한 도구 등 ‘생존을 위한 방편’의 하나였다. 





가장 오래된 유전 공학자들


  식량이 최초로 담당한 변모의 역할은 바로 모든 문명이 기반이 된 것이었다. 농업의 채택으로 새로운 정착 생활 방식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은 현대 세계를 향한 길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최초의 문명들을 지탱해주었던 주요 작물들(근동의 보리와 밀, 아시아의 기장과 쌀, 아메리카의 옥수수와 감자)은 결코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작물들은 복잡한 유전적 변화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것이었다.


  초기의 농민은 이런 작물들 사이에서 바람직한 특징을 선택하고 번식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주요 작물들은 사실상 인간의 발명품이나 다름없었다. 즉, 의도적으로 육성된 기술로 어디까지나 인간이 간섭한 결과로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농업 채택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유전공학자들이 문명 그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 강력하고도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기까지의 이야기라도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식물을 면보시켰고, 그 식물은 또다시 인류를 변모시켰다. 





  인류의 식량에 대한 도전 중 가장 위대한 결과물 중 하나는 바로 ‘옥수수’다.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한 알갱이가 가득하며, 무성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어 해충이나 습기에도 잘 보호된다. ‘자연의 선물’과도 같아 보이는 이 옥수수는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옥수수는 길들인 농작물이야말로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야생식물과 길들인 식물 사이의 구분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다양한 식물은 일종의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다. 완전히 야생 상태인 식물에서 시작해, 인간에게 적합하도록 조절된 몇 가지 특성을 지닌 길들여진 식물을 거쳐, 인간의 도움 없이는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길들여진 식물에 이르는 것이다. 옥수수는 이 세 가지 범주 가운데 마지막에 속한다. 옥수수는 인간이 일련의 무작위적인 유전적 변이를 일으킨 결과로 탄생했으며, 한때는 보통의 풀이었지만 지금은 야생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기묘하고도 거대한 돌연변이로 변화했다. 


  멕시코 토착종인 테오신트(Teosinte)라는 야생초의 후손인 옥수수는 우연한 돌연변이 속에 탄생한다. 테오신트는 두 줄의 알갱이가 그것을 보호하는 두꺼운 껍질 또는 꼬투리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우연히 돌연변이에 의해 알갱이가 꼬투리 밖으로 노출된다. 이는 알갱이가 어떤 동물의 소화관을 따라 내려가는 여행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는 뜻이며, 최소한 정상적인 환경에서라면 이는 식물에게 상당한 불이익이 된다. 하지만 노출된 알갱이는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알갱이를 먹기 위해 굳이 꼬투리를 제거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노출된 알갱이를 지닌 돌연변이 식물만을 모아 그 알갱이를 씨앗 삼아 뿌림으로써, 원시 농민들은 노출된 알갱이를 지닌 식물을 더 많이 전파할 수 있었다. 이는 점차 꼬투리 유전자의 쇠퇴와 알갱이의 노출을 불러온다. 현재 옥수수의 꼬투리는 알갱이 하나하나를 둘러싼 투명한 막으로만 남아있다.


  이러한 옥수수의 돌연변이는 인간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야생에서 살아가던 식물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옥수수의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이삭과 수많은 알갱이는 자연적 번식에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제대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을 이용해 그 알갱이를 속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리고 다른 알갱이와 충분히 멀리 떨어진 상태로 심어야 한다. 인간이 옥수수에 의존하게 된 만큼, 옥수수도 인간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호 의존적인 식물의 유전적 변화는 밀과 쌀에서도 나타난다. 무수히 많이 매달린 알갱이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퍼져 나갈 수 없다. 인류는 유전적 선택을 통해 수만년 동안 생존에 유리한 식물을 길들여 왔던 것이다. 동물을 길들이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양, 염소, 소, 돼지 등은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온순하게 길들여졌으며, 대신 인간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식량공급과 여타 천적으로부터의 보호, 자손 번식을 보장했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인류의 역사에 식량이 끼치는 영향력은 문명시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지속된다. 농업의 채택, 식량 생산에서의 변화, 그리고 이에 수반된 사회구조의 변화는 모두 동시적으로 일어났으며 서로 뒤얽혀 있었다. 지배 엘리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다른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농지에서 더 고되게 일하라고 명령한 것은 아니었다. 생산성이 더 높아지면서 갑자기 잉여 식량이 생기는 바람에 그걸 두고 다투다 이긴 사람이 왕으로 등극한 것도 아니었다. 


  식량에 대한 지배가 곧 권력이었던 까닭은, 사람과 동물을 먹여 살리는 식량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식량 잉여분을 농민에게서 빼앗음으로써, 지배 엘리트는 전업으로 일하는 병사와 장인을 먹여 살리는 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렇게 획득한 능력으로 전쟁을 벌이고, 사원과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정교한 공예품의 생산을 원조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고대문명의 지배자들은 모두 ‘식량생산’을 위한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젖줄이었던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중국 하나라의 우왕은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별자리를 통해 범람을 예측하거나, 치수사업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확보하는 능력이 권력의 유지에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증명한다. 지배층은 이렇게 확보된 잉여 농산물을 비축해 두었다가 가뭄이나 기근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은 종종 잉여 식량으로 고용한 ‘군사력’이나 물을 다스리는 식의 ‘신성’으로 정당화됐다.





피에 물든 향신료, 식량이 일으킨 전쟁


  식량이 가진 힘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례는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유럽에서 펼쳐진 대대적인 ‘대항해 시대’의 개막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관계에서 아랍인들은 중개무역을 통해 대대로 부를 축적해 왔다. 거대한 사막이 가로막고 있는 양 대륙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며 아랍인들은 진귀한 특산품을 통해 동서양의 문물을 교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중 유럽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품목은 단연 ‘향신료’였다. 독특한 향과 맛에 더해 구하기 어렵다는 희소성은 향신료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렸으며, 당시 ‘후추’는 왕이 귀족들에게 나눠주는 사치품 중 하나일 정도였다. 






  베일에 쌓여있던 향신료의 진짜 원산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유럽인들을 아랍이 막고 있는 사막이 아닌 넓게 펼쳐진 ‘바다’로 내몰았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의 개막이었다. 아프리카를 지나 아시아로 향신료의 원산지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인류는 수많은 문화적·군사적 충돌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와 인도, 동남아 곳곳에 무역을 위한 거점인 ‘식민지’를 건설한다. 아랍을 우회하는 항로를 개척한 유럽인들은 드디어 직접 ‘향신료 무역’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선원들이 유럽에 가지고 온 것은 향신료만이 아니었다. 1347년, 아시아를 오가는 배를 통해 전해져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의 창궐은 유럽 전역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는다. 이 무서운 전염병은 1353년에 이르자 유럽 인구의 3분의 1 또는 절반가량의 목숨을 앗아간다. 


  피에 물든 향신료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또한 ‘향신료의 땅’ 인도를 향해 서쪽으로 항해하면서 만들어낸 우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에스파냐 왕가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횡단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이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유럽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 발견된 대륙에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고 직접 향신료를 재배할 계획을 세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가져간 것 또한 향신료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인들이 오래 전 극복한 두창, 인플루엔자, 홍역 등은 신대륙의 원주민들에겐 원인모를 무서운 질병이었다. 이 전염병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대부분이 괴멸상태에 이르렀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괴멸은 유럽인들에게 노동력의 부족 현상을 야기했고, 이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노예화와 신대륙 이주를 낳았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불리는 이 사건을 통해 유럽인들은 옥수수, 고추, 감자 등을 얻었고, 아메리카 대륙은 질병과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노동력 착취를 얻게 된다.





  인류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결정짓는 항상 ‘식량’이었다. 원시인류의 농경생활부터 국가의 형성, 대항해시대와 노예제도, 산업혁명과 전쟁에 이르기까지 식량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존재해왔다. 아일랜드의 감자 없이는 영국의 산업혁명도 불가능했으며, 한 역사가가 ‘로마는 병참으로 싸운다’고 말했듯 전쟁은 식량 보급에 기반을 두고 수행됐다. 지금도 인류는 폭발하듯 증가하는 인구 속에 식량전쟁을 펼치고 있다. 수많은 국가는 좀 더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고, 과학자들은 미래의 식량 자원 개발을 위한 도전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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