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캘리그라피붓향 이화선 대표
[기고] 캘리그라피붓향 이화선 대표
  • 이슈메이커
  • 승인 2014.07.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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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이슈메이커]




한 사람의 마음과 소통하는 선(線)


▲평화로운물고기 이화선 - 한글세계화협회장-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센터 대전,충청지회장- 이츠대전 전속캘리그라퍼- 캘리그라피붓향 대표




  구겨진 화선지 뭉치들이 바닥에 쌓여갈 때쯤이면 내 열 손가락 손톱사이사이에도 검은 먹물 짙게 물들어간다 

그런 못생긴 내 손을 처음부터 사랑하진 않았었다. 


  얼마 전 유럽에서 개최된 동양문화축제에 초대되어 캘리그라피 한글퍼포먼스와 시연회, 그리고 작품전시회를 가진 후 돌아왔었다. 손톱을 물들인 먹물이 비누에 씻어도 얇은 막처럼 남아있어 다음날 또 손톱을 물들이고 또 물들이고...결국 회색빛이 되어 돌아왔다 

 

  무리한 일정과 공연후유증으로 일주일 이상 쉬어야했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된 내 두 손,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깨끗한 손이다


  순간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자의식은 ‘이건 작가의 손이 아니다‘라는 생각!’


  그만큼 난 검은 먹 때 낀 그 손에 익숙해져 있었나보다.







  언제부터인가 빠르고 민첩함을 강조하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음식문화처럼 묵은 장맛을 기다려야하는 장인의 시간들은 너무 더디고 자본주의의 필요를 채우기 버거운 것으로 인식되어져버렸다.


  페스트푸드가 한때 붐을 이루다가 이제 다시 슬로우푸드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전통음식과 문화에 한층 많은 관심과 전문인들의 주목 받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흐름이 더 깊어져 정직한 인내와 기다림을 채워 빛을 보게 되는 문화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천 번 붓을 그으면 필력 좋은 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이 강물인지, 늙은 어떤 이의 마디마디 지나온 삶의 시간들인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을 절망의 경계선인지 선을 긋는 사람의 그 속에서 나오는 철학이 없으면 수천 번의 붓질도 허무할 뿐이다.


  강의를 하던 중 알게 된 놀라운 이야기다. 적어도 나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감성글씨를 써야하는 시간, 사춘기 때 추억을 끄집어 내다보니 사람마다 그 흔들림의 차이가 아주 크다는 사실.


  누구나 사춘기 시절에는 이러했을 것이다. 라는 나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경험이야말로 시를 짓거나 작품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소재거리라고 생각했던 나이기에 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진하게 느꼈을 그 감성의 소재 거리를 작품에 꺼내어 놓기를 요구하곤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고 했던가.. 누구나 흔들렸을 어떤 시간들이 있을텐데, 어쩌면 난 애써 더 흔들어도 보았던 것 같다







  비오는 날이면 아파트 5층 창문 아래로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빗물풍경 을 보고 있다가 왠지 끌리면 그 가로등 밑에 가 서서 한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흠뻑 젖을 때까지 비를 맞던 일이며, 이른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 내어놓고 싶어 잠 안자고 기다렸다가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내 발자국으로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걷다 온 일이며, 카세트 두 대를 놓고 음악에 시낭송을 하며 녹음해보고 내 목소리가 아름다운지 다시 들어보던 일, 죽음의 그림자가 궁금해서 눈감고 아스팔트 코앞까지 달려가 보던 일.. 참 바보스럽고, 엉뚱하기도 했지만, 상상 속 시련의 아픔도, 허무도, 사랑도, 느껴보고 싶었던 것, 


  ‘왜?’라는 궁금증이 늘 머릿속에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붓을 그을 때도 늘 그러했던 것 같다


  줄 하나를 그어보고..“왜?”


  왜 난 이 줄을 그었는지, 이 줄이 왜 재미가 없는지..


  누구는 한일자를 수없이 그어서 강물이 된다는데 내가 그은 이 선은 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지..

내 속의 나에게 질문하고, 말해주고, 내 맘하고 똑같은 먹 선이 화선지위에 그려지길 중얼거리며 그렇게 화선지와 씨름했던 시절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난 그러고 있다.


  그래서 작품을 할 땐 누가 있으면 어렵다.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움직이는 나 자신을 의식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어지고 쓰여 지고 그려진 작품들이 아니고는 만족이 되지 않으니 매일 손톱 사이 먹 때 낀 여인이 되는 수밖에..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는 지 묻는 이들에게 난, 나 역시 그런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묵은 장 맛 같은 먹 선을 그어보라고, 사람의 정성과 조물주의 위로 같은 바람과 땅속깊이 묻힌 기다림의 인내를 그어보라고 말해준다.


  더딘 것 같다고 실망하지 말고, 살아있는 선을 긋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말해줄 것이다.


  인문학이 사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느라 위로가 필요한 시대.


  빠른 자본주의 영악함보다는 한 사람의 마음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러한 글씨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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