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멈추지 않을 두 개의 심장
영원히 멈추지 않을 두 개의 심장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05.23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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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의 선수 생활 마감, 인생 후반전의 시작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영원히 멈추지 않을 두 개의 심장

25년간의 선수 생활 마감, 인생 후반전의 시작


▲출처 : JS Foundation


다시 돌이켜봐도 믿기 어려운 일들뿐이다. 대한민국의 21살 신예가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골을 넣고, 유럽축구 최고의 무대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세계적인 명문 AC밀란에 비수를 꽂았다. 그 후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고, 17번의 우승 트로피와 함께 판 니스텔루이의 ‘레전드’ 찬사 속에 은퇴하는 광경이라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결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우리의 청춘 속에 현실로, 선물로, 추억으로 남겨졌다. 그저 매일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뛰었을 뿐인데 지나고 보니 전설이 되어 있었다던 한 축구선수의 이야기. 마치 소설 같았던 그의 일대기를 추억해본다.




지난 5월 14일, 박지성이 PSV 아인트호벤에서의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로서의 축구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던 그의 무릎은 조금이라도 더 그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 했던 수많은 팬들의 바람을 끝내 외면했지만 오래전부터 이러한 결심을 생각했었는지 박지성은 담담하고 웃는 모습으로 차분하게 은퇴를 말했다.


▲출처 : JS Foundation


체격을 극복한 노력의 승리

  세류 초등학교 시절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하며 순탄한 앞길을 예고하는 듯 보였던 그는 왜소한 체구로 인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수원공고 시절 성실한 플레이가 돋보였지만 대학팀과 K리그 팀들이 피지컬 문제를 거론하며 외면한 것이다. 간신히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에 입학한 박지성은 허정무 감독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한다. 축구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이후 명지대 2학년인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 단장 기무라 분지의 시선에 잡혀 교토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상가로 입단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동료들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의 FA컵 대회격인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때, 박지성과 교토 퍼플상가의 계약은 2002년 12월 31일자로 종료되었으나 팀의 컵대회 우승을 위해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의 시선은 유럽으로 향해 있었다. 


▲출처 : JS Foundation



기나긴 슬럼프 끝에 거둔 성공

  2002년 여름의 놀라운 활약 이후 그에 대한 국내외 축구팬들과 구단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K리그의 각 팀들에서도 월드컵 스타인 그의 이적을 추진하며 의사를 타진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그를 알아보고 키워준 은사 중 하나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표팀 동료 이영표와 함께 에레디비시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봄멜이 박지성의 서툰 네덜란드어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다.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기도 했지만,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이 에레디비지에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했다. 이렇게 되자 마르크 판 봄멜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2004-05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사를 보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상대 골키퍼 지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최초로 골을 터뜨린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비록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그에 대해 외신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이후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젠나로 가투소는 그를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일이었음을 밝히는 에세이를 썼고, 시즌 종료 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 필립 코쿠는 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응원곡 ‘위숭빠레’(원제 Song for Park)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출처 : JS Foundation


세계 최고 명문구단의 ‘심장’이 되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은 놀라운 소식이었다. 역사깊은 명문구단이며 브랜드 가치가 1조 8,000억 원에 달하는 세계 최고가치의 구단인 맨유에 한국 선수 최초로 입단하게 된 것이다. 당시 맨유는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었다.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박지성이 밀란을 상대로 선제골과 함께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고, 이것이 퍼거슨 감독이 그의 영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어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어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했다. 반 니스텔루이의 도움 속에 빠르게 잉글랜드 무대에 녹아든 박지성은 첫 시즌부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환상호흡을 뽐내며 맨유의 속도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06-07 시즌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메달은 전체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들은 메달을 받지 못했었다. 이는 박지성이 맨유의 주력 선수 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시련도 있었다. 잦은 국가대표 평가전 차출과 리그출전 등 쉼 없는 강행군이 박지성 무릎 수명을 단축시킨 것이다. 그는 반월형 연골판 제거 수술로 사실상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2007년 선수 생명 연장을 위해 미국에서 받은 수술은 긴 재활을 거쳐야 했고, 재활 이후 그는 출장 기회를 자주 부여받지 못하며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와 중요 리그경기에서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핵심적인 활약을 하며 팀을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는다. 

  그는 AS로마와의 8강전, FC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서 큰 공헌을 한다. 쉴 새 없이 공수를 오가며 팀 승리에 기여한 그는 특히, 바르셀로나와의 2차전 홈경기에서 총 11.962km를 뛰어 양 팀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작 결승전에는 다른 선수들에 밀려 교체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영국 언론은 퍼거슨이 자국 출신 유망주의 미래를 위해 그를 희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박지성의 주가는 오히려 더욱 올라갔다. ‘Unsung Hero(이름없는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지며 영국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 훗날 퍼거슨은 박지성 명단제외가 자신의 감독 이력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의 선수 생활 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칼링컵 우승 3회, 클럽월드컵 우승 1회 등을 견인했다. 특히 강팀 킬러로 명성을 떨친 박지성에게 언론과 팬들은 ‘두개의 심장’, ‘세개의 폐’, ‘희생의 본보기’, ‘완벽한 프로페셔널’ 등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출처 : JS Foundation


누구보다 위대했던 선수, 이제 평범한 삶으로

  2002년의 뜨거웠던 여름이 오기전까지 유럽을 포함한 세계인들은 한국 축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히딩크와 함께 아인트호벤에 왔던 ‘지성 박’은 그 여름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고 특히나 축구로는 전혀 유명하지 않았던 한국의 가장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최근 스마트폰과 K-POP으로 인해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사실 유럽인들에게 딱히 떠오르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거의 없던 지난 시간, 박지성의 유럽 축구 여정은 한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흔치 않은 공통점이었다. 그만큼 출중했고 독보적인 시간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박지성 선수를 영원히 기억하는 것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그의 화려한 공적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참된 이유는 그가 뛰기만 하면 퉁퉁 부어오르는 평발과 왜소한 체격이라는 결함을 극복하고 위대한 선수가 됐다는 점이다. 축구 선수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육체적 조건을 박 선수는 오직 불굴의 노력과 끈기, 도전 정신으로 극복해낸 것이다. 박 선수 자신도 “나의 조건은 보잘것 없었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경기장에서도 박 선수는 동료들의 말처럼 ‘위대한 봉사자’였으며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장을 누비면서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헌신했다. 그는 에인트호번 이적 초기에 적응 실패로 동료나 팬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묵묵한 훈련과 팀을 위한 헌신으로 훗날 ‘구단 천년을 대표하는 선수’로 선정됐다. 올해 에인트호번 마지막 경기에서 박 선수는 성실한 경기 자세로 인해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박지성의 끈기와 노력, 동료를 위한 헌신은 운동선수를 지망하는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청소년에게 삶의 지표가 될 것이다. 모자라는 체격 조건을 극복하고 가장 훌륭한 아시아의 선수가 된 박지성은 모든 청소년들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국 축구의 심장이자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 90분 내내 경기장을 쉴 새 없이 누비고 다니던 박지성은 이제 볼 수 없게 됐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선 박지성의 모습은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제 ‘인간 박지성’을 만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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