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ion Politics II] 대통령이 나와야 지역이 산다?
[Faction Politics II] 대통령이 나와야 지역이 산다?
  • 조명연 기자
  • 승인 2014.05.23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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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지역기반 붕당정치
[이슈메이커=조명연 기자]
[Faction Politics II] 지역기반 붕당정치



대통령이 나와야 지역이 산다?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지역기반 붕당정치




과거 붕당정치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간의 대립하고 각자 다른 이론을 펼쳤다. 그 렇다면 이동수단이 불편했던 시대에 과연 어떠한 인연으로 같은 학문을 수학하고, 연을 맺으며 파벌을 나눈 것일까? 단순한 학연을 넘어 지연으로 파벌을 이룬 그들, 그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지역파벌의 곬을 만들고 있다.




조선 시대의 학연(學緣), 그리고 숨겨진 지연(地緣)

  붕당정치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학파 파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인과 서인에겐 각각의 지역 기반이 있었다. 동인(東人)은 말 그대로 동쪽인 경상도에 기반을 둔 학자들이 정치에 진출한 것이고, 서인(西人)은 경기와 충청도에 뿌리를 둔 학자들이 대다수이다. 동·서인이란 명칭엔 정치 결사적 이미지가 강한데, 학문적으로 동인은 영남학파라 불리었고, 서인은 경기와 호서(충청의 별칭)에서 한 자씩 따와 기호학파라 했다. 자신들의 근거지를 이름으로 쓴 것이다. 동인은 이후 퇴계 이황의 고향인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남인(南人)으로, 남명 조식의 고향인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북인(北人)으로 나눴다. 서인은 보수적인 노론(老論)과 신진 소장파 중심의 소론(少論)으로 갈렸고, 노론은 다시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한 시파(時派)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벽파(僻派)로 나뉜다. 전문가들은 학파들이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성향을 띠고 있으며 그들끼리 당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당의 성향으로는 노소남북 사색붕당 중 북인과 소론은 비교적 진보적이었고 남인과 노론은 보수적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집권여당이던 노론 안에선 시파가 중도 성향이었고 벽파는 강경 보수였다. 오늘날에도 경북 안동이나 충청도는 보수적인 양반 동네란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데, 거기에는 각각 남인과 노론 벽파의 근거지였단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서울·경기의 정치 성향이 비교적 중간에 가까운 점도 예전 노론 시파와 닮았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부산·경남이다. 지금은 대구·경북과 함께 영남 보수 벨트를 형성하고 있지만, 조선 시대 땐 가장 혁신적이었던 북인의 본거지였던 것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거주 이전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에 정치 세력들이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었단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근대 이전엔 나고 자란 곳에서 배우자를 찾고 스승을 구해야 했습니다. 지연이 곧 혈연이 되고 학연이 돼 모든 이해관계의 중심이 되는 구조인 것입니다”고 붕당정치를 연구한 교수는 당시부터 지역의 정치색이 보였다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지연이 학연으로 이어지고 학연, 지연이 인생의 전부인 상황으로 된 것이다. 때문에 조선시대에 지역기반 붕당정치가 더욱더 흥미로운 것이다.


▲지역차별로 인해 관직에 나아가기 힘들었던 홍경래는 1811년 난을 일으켰고, 다음해인 1812년 정주성 전투를 마지막으로 진압됐다.



반란으로 이어지는 지역차별

  과거 조선시대에서는 어느 당의 지지를 받은 왕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당의 흥망이 결정 되었다. 그리고 당색을 지닌 인물이 반란이나 대역죄를 지었다면 그 지역의 인재는 고위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보자면 조선 초기 이성계의 왕립을 인정하지 못했던 북쪽의 함경도나 평안도지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왕조에서는 그 지역 인재는 절대 고위직에 올리지 말라는 명이 내려졌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르도록 북쪽 지방의 인재는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고, 결국 홍경래의 난으로 이어졌다. 역사를 빌어 말하자면 “1728년(영조 4)의 이인좌난(李麟佐亂)은 주도층이 비록 과격한 소론 중심의 지배층이었지만 중간층 및 하층민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기층 세력의 저항이 격화되는 양상을 반영하였다. 특히 평안도는 활발한 상업 활동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 발전과 역동적인 사회상을 보이고 있었으나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지역민들의 불만이 더욱 컸다”라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지역차별은 심각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남인이 옹립한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남인들은 모두 재야로 묻히게 되고 17세기 실학과 천주교가 부각되기 전까지는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는 즉, 경북의 인재들은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다고 역사서에서 전하고 있다.




영남의 새누리당? 호남의 민주당?

  조선 시대에서 시작된 지역 기반의 붕당정치는 한국전쟁이후 대한민국에서 다시 나타나게 됐다. 박정희 정권시절, 김대중 대통령 후보와 박정희 대통령 후보가 가장 박빙의 대결을 보이고 있을 때 수백 년 만에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색이 나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후보가 세의 불리함을 느끼고 고향인 경상도의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성했다”는 일설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 쪽에서 “한번 더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호남에는 미래가 없다”라는 지역색을 조장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어떤 설이 ‘사실이다’라고는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 지역에 정치색이 씌어 졌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 뒤 3김(金)정치가 시작된 후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지역감정이 생겨났다. 

  선거 유세를 하면서 지역기반으로 정당을 지지하게 된 시기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대결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배하다. 1992년 대선은 김대중, 김영삼의 양자대결구도로 압축되면서 지역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당시 민자당 후보인 김영삼 측은 부산의 '초원복국집'에서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비밀 회동 과정에서 "지역감정이 일어야 우리가 승리한다"는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이 비밀 회동 내용이 녹음되어 공개되면서 지역감정에 대한 파문이 크게 일었지만 이것은 오히려 지역감정을 악화시키는 불씨로 작용하였다. 이 선거에서 김영삼이 승리했지만 김영삼의 정계은퇴 압박에 반발한 김종필이 여권에서 이탈하여 자유민주연합을 구성함에 따라 영, 호남의 지역 대결에 충청권이 가세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러한 지역 정당은 현재까지 이어져 “영남의 새누리당, 호남의 민주당, 충청권의 선진당으로 신 삼국지를 형성했다”라는 전문가들의 소견이 있을 정도로 치열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했기 때문에 호남과 영남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1987년 제 13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 득표율. 지역별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강원의 조화가 필요할 때

  지역을 기반으로 정당이 표심을 얻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이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서 지역의 발전 정도가 차이 있기 때문이라고 혹자들은 전한다. 수도인 서울을 제외하고 대통령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은 경상도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한 발전도를 보이고 있는 경상도는 다른 지역에서 차별을 갖는 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우월한 발전도를 지니고 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남 지방이 먼저 발전되었고 그 뒤 호남지방을 계발하려는 찰나에 암살당한 것일 뿐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들은 “LG[호남정유]여수에 건설, 포항 제 2공장을 광양만에 건설시작, 광주에 기아자동차건설, 이리 자유무역지대 추진, 호남, 남해고속도로 건설, 88고속도로  건설구상, 광주고속 육성(아시아나 항공), 광주에 방위산업체 유치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던 중 죽음을 맞이한 것이기에 부족한 발전을 호남지역에서 이룬 것입니다”라는 주장으로 지역차별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역감정과 정치색을 띠게 된 후 여론은 달라졌다. 대통령이 어디서 출생했느냐에 따라서 지역의 발전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재적으로 역대 대통령 중 영남출신이 대다수이다. 박정희,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대다수의 대통령들이 영남 출신이고, 유일한 호남 출신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이다. 실재로 호남인 전라도와 영남인 경상도의 발전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인구수를 비교해본다고 해도 호남은 오백만, 영남지역은 천삼백만 명을 넘었다. 약 2.8배의 인구수이다. 인구수만 따졌을 때에 비율이 약 3배라고 본다면 실재적인 차이는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한 번도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충청도는 오백만, 강원도는 백오십만 이다. 수치상으로 보았을 때, 지역의 발전의 차이는 눈에 띄게 알 수는 없다. 정책적으로도 어느 지역에 편중을 두었다고도 볼 수는 없다. 이를 관망하던 연구자들은 “국민들이 느끼는 무언가에서 차별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일어나는 것이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라며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특정 지역 색을 보이기보다는 올바른 판단과 정책을 보고 뽑는 선진 시민의 모습을 보여야지만 앞으로 지역 간의 대립이 아닌 국가 간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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