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안부, ‘안녕들 하십니까’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안부, ‘안녕들 하십니까’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02.1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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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안부, ‘안녕들 하십니까’

과거 운동권의 상징이었던 대자보, 세상의 부름에 다시 응답하다


“안녕들 하십니까!” 스물일곱 청년의 한 마디가 전국을 들썩이고 있다. 12월 10일 고려대학교에는 두 장의 대자보가 붙었다.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시작된 글은 ‘국정원 의혹’과 ‘밀양 송전탑’, ‘쌍용차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고 재차 묻는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취업난과 더불어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던 2007년. 불안 속에 하루를 살아가던 당시의 젊은이들을 일컬어 ‘88만원 세대’라 불렀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는 “지금의 20대 중 상위 5% 정도만이 5급 사무원 이상의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균 임금 88만 원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비정규직의 평균 월 임금인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임금 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3년 12월. 88만원 세대들은 그간 참아온 울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88만원 세대, 안녕들 하십니까
88만원 세대가 가진 고민과 울분을 토로한 대자보에 전국의 대학가에서는 응답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학내 정경대 후문에 붙였다. 주씨의 대자보는 학내 재학생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그의 대자보 주변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학생들의 ‘응답 대자보’ 60여 장이 내걸렸으며 각각의 대자보는 철도파업, 쌍용차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 현안을 담고 있었다.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성균관대, 인천대, 가톨릭대, 상명대, 성공회대, 광운대, 부산대 등 전국 각지의 대학가에도 대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대자보 행렬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대자보를 촬영한 사진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국내 대학은 물론 UC버클리 등 외국대학에도 대자보에 응답하는 ‘응답 대자보’가 확산됐다.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는 이미 공감을 나타내는 ‘좋아요’ 클릭 25만 명을 돌파한 상태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은 고등학생들 안에서도 큰 울림을 일으켰다. 한 고등학생은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권리조차 무관심하게 만들었다”며 글을 게재했다. 정 군은 이 글을 통해 “언젠가부터 매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면서 “입시와 취업도 물론 중요한데, 두고만 보다가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졌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기성세대들도 글과 댓글 등으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우리 아들딸을 안녕하지 못하게 만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럽다. 젊은 지성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대들 덕분에 잠시 안녕하다” 등의 글을 올렸다




불안감과 초조함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의 외침
주씨는 대자보를 통해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1997~19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을 생각해보라 독촉한다. 그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그것을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든 국민이 절망에 빠졌던 IMF 시대를 살아간 것은 직업 현장에 서 있던 어른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암울한 미래를 감지한 ‘불안 세대’가 바로 ‘88만원 세대’이다. 
  한 대자보에는 “평점이 4.0인데 장학금과는 거리가 멀어서 학자금 대출 연체금 납부 독촉을 받고, 여름방학 새벽부터 자정까지 학원, 스터디를 해도 토익 900점이 못 넘으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 어렵게 취업이 됐지만 전혀 안녕하지 않고, 안녕이라는 것은 애초 우리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대학생의 체념이 적혀 있다. 이러한 ‘안녕하십니까’류의 고백이 전국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이 극단의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불안감은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체감경기가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안 좋은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IMF 외환위기 직전에 느꼈던 어수선함과 불안감이 재연되는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야말로 ‘하수상한 정국’에 ‘안녕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안녕하다!’ -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확산되는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오자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4일 보수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고려대 철도파업 대자보를 찢어버렸다는 글과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일베 게시판에는 대자보를 붙인 학생을 성희롱하는 내용도 올라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대자보 훼손이 문제가 되자, 대자보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15일 새벽에 고려대학교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 공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공개사과문은 같은 날 오후 2시경 삭제됐다. 이에 대해 ‘사과 진정성’ 논란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서강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같은 날 오전 4시경 일베에는 ‘서강대 대자보 민주화(대상을 초토화, 제거, 억압하다는 뜻의 일베 용어) 시키고 왔다’는 제목의 글이 대자보를 찢은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한편 일베에서는 반박 대자보를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반박자보 시안에는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녕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정부가 철도민영화 안한다고 한다”며 “외부인들이 바람을 넣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게시판에 ‘가톨릭대 반박 대자보’라는 제목의 자보 인증샷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게시물을 올린 회원은 “안녕하냐고 자꾸 묻는 사람들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겠다”며 “철도파업을 지지하면 관심이고 지지하지 않으면 무관심인가”라고 썼다. 
  보수 우익 성향의 자유대학생연합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 “요즘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대학가의 선동형 대자보”라고 평하며 “자신의 실명과 소속을 당당히 밝히고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분들을 모십니다”라고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내용은 자유대학생연합이 작성해 주고, 필요한 비용도 연합에서 제공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일부에서는 ‘알바 대필이다’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한편 최초 게시자인 주현우씨가 노동당(옛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주씨는 지난 2월 당시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 서울 지역 대의원에 당선된 뒤 당 홈페이지에 당선 인사를 남기는 등 여러 건의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순수한 대학생의 입장으로 대자보를 쓴 게 아니라 노동당 차원의 의견을 밝힌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주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특정 정파나 단체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올린 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대자보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우려 섞인 시선
대자보 열풍에 놀란 코레일과 정부 측의 반박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코레일은 대자보의 철도파업에 대해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는 직위해제와 해고가 다르다는 점을 주씨가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레일은 “직위가 해제되어도 직원 신분은 유지되며 해제 처분이 풀리기 전까지는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해고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또한 직위해제의 사유는 ‘민영화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법 파업에 참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근로조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면 파업 목적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국철도노조는 “자회사 설립으로 본사에 경영 압박이 심해지면 노동 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합법 파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자보 현상’이 “일자리 불안감 등 젊은 세대의 공통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를 통해 “손으로 쓴 대자보는 현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군중 결집 효과가 크다”며 “아날로그식 의사소통이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대자보에서 SNS로, 다시 SNS에서 대자보 오가는 새로운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이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지만 이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사회학 전문가는 “최근의 현상은 선거 기간마다 젊은 층 사이에 투표 인증샷이 유행하는 것처럼 단기간의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무관심하지 않다’, ‘우리는 모르고 있지 않다’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의 외침이 한두 달 내에 사그라질 불씨로 그칠지, 혹은 거대한 불길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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