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한국 떠난다 ‘新 코리아 엑소더스’
글로벌 기업 한국 떠난다 ‘新 코리아 엑소더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4.02.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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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Economy Issue]  

 

글로벌 기업 한국 떠난다 ‘新 코리아 엑소더스’

 

규제·노조·고임금·세금·환율변동·반기업정서로 악화된 한국 산업 생태계

 

잿빛 도시로 몰락하고 최근 파산 신고까지 하게 된 미국 디트로이트 시의 폐허 벽면에는 ‘신은 디트로이트를 버렸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때 180만 명의 대도시였고 미국 내 최고의 개인소득을 올리던 산업도시 디트로이트는 고비용 구조 때문에 산업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기업들이 떠난 후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은 범죄를 피해 도시를 빠져나갔다. 이를 ‘디트로이트 엑소더스(대탈출)’라고 불렀다. 그리고 2013년 코리아 엑소더스의 우려가 국내에 퍼지고 있다. 기업의 생산 시설은 한국을 떠나 해외로 향하고 있고 이미 해외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국내로 U턴할 생각이 없다.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규제·노조·고임금·세금·환율변동·반기업정서 등으로 얼룩져 기업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생산 공장이 한국을 계속 떠나면 ‘제조업 공동화’ 현상으로 우리 경제는 결국 성장 잠재력을 잃게 된다.

 

 

노동비용 증가, 글로벌 기업에 악재

“한국시장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외국계 금융기관 한 임원의 단언이다. 내수시장 부진에 인건비와 규제 증가로 경영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탓이다. 악화되는 경영환경의 여파로 제조업에서 금융, 서비스업 등 전 분야에 걸쳐 글로벌 기업의 코리아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들의 해외직접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 및 정치권이 각종 기업 규제책을 펼치면서 경영환경 불확실성에 직면한 기업들의 탈출 코리아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경제성장동력을 잃는 한편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판결로 가장 주목받는 곳은 한국지엠이다. 통상임금 확대로 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철수설(說)’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완성차업체 중 유일하게 통상임금 소송을 2심까지 진행했다. 법원은 1·2심에서 모두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지엠은 통상임금 확대로 내년부터 연간 1,500억~2,000억 원가량의 추가 인건비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법원에서 과거 3년 치의 소급 청구를 인정하면 1조 원에 달하는 임금 폭탄을 맞는다. GM이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키로 하면서 한국지엠의 생산량은 20% 이상 줄게 됐다. 수익성이 나빠지는 여건에서 생산비용이 늘면 GM의 ‘한국시장 단계적 철수’는 더 이상 ‘설’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특히 댄 애커슨 GM 회장은 지난 5월 미국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프랑스 르노가 대주주인 르노삼성자동차의 상황도 비슷한 실정이다. 제롬 스톨 르노 부회장은 지난달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임금이 비싸다”며 “가장 경쟁력 있는 공장에 생산 물량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르노삼성은 국내에서 파는 ‘QM3’를 수입 판매하고 미국에서 판매되는 닛산 ‘로그’를 위탁 생산해 수출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르노삼성이 전형적인 하청기지 모델이 돼 점차 생산 물량이 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최원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GM과 르노는 유럽시장이 좋지 못한 경기적 측면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국내에서 이들에게 부담이 되는 제도나 정책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생산기지 이전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생산 시설의 코리아 엑소더스의 우려를 극명히 노출한 곳이 현대·기아차다. 노조 파업으로 툭하면 국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에 대해 최근 미국 주지사가 공장 유치의 러브콜 위해 방한한 것이 알려졌다.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는 지난 8월 21일 정몽구 회장과 만나 현대다이모스 공장 신설을 마무리 짓고 현대차의 조지아 공장 증설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계 일각에선 현대 계열 부품 공장의 미국행이 성사된 것을 놓고 현대차 노조 파업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 성격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거듭되는 노조의 파업, 낮은 생산성, 높은 임금 등의 국내 고비용 생산 환경 때문에 현대·기아차도 무게중심을 해외 생산으로 옮기는 경영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 비중은 2010년 45.2%에서 작년 상반기 54.3%까지 높아졌다. 해외 공장이 예정대로 들어서면 올해에는 해외 생산 비중이 60%에 육박하게 된다.

 

 

글로벌 법인세 인하 경쟁…거꾸로 가는 한국

기업들은 코리아 엑소더스의 원인으로 과도한 규제를 꼽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조사한 2012년 우리나라의 정뷰 규제 부담 및 법체계 효율성(규제 개선 측면)은 평가 대상이 된 총 142개국 중 각각 114위, 96위에 불과하다. 또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13년 우리나라의 기업 관련 법규 분야 경쟁력은 비교 대상 60개 국가들 중 하위권인 39위 수준이다. 경제 규모 세계 13위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너무도 초라한 수치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여기에다가 최근 들어 규제의 강도가 더 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19대 국회 개원 후 2012년 5월 말까지 약 1년간 의원 발의 법안 중 경제활동 관련 법안은 440건에 이르며 이 중 81.4%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으로 밝혀졌다. 하루에 한 건 꼴로 의원들이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은 76건으로 17.4%에 불과했다. 나머지 6건은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과 완화하는 내용이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의 법안 중 이미 국회를 통과해 확정된 법안도 적지 않다. 등기 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일감 몰아주기 처벌을 강화한 공정거래법 등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법이 10여 개에 이른다. 정부 역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법인세 인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인 반면 한국은 이와 반대로 ‘법인세 인상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때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기업들의 코리아 엑소더스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KPMG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 30%였던 법인세율을 2012년 24%까지 인하했으며 향후 2년간 1% 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인하해 2014년 22%까지 인하할 예정이다. 영국은 물론 독일이나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경쟁 국가들도 지속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북유럽 국가들도 속속 인하 계획을 발표 중이다. 스웨덴은 기존 26.3%에서 올해부터 22%로 적용하고 덴마크는 25%에서 22%로 법인세를 인하한다. 또 핀란드는 올해 3월 기존 24.5%였던 법인세를 2014년부터 20%로 낮추기로 했다.

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북미 등 주요 OECD 국가들은 199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법인세를 인하해 왔다. 1990년 OECD 평균 법인세율이 41%에 달했던 것이 지난해 평균 32.6%로 내려갔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같은 글로벌 법인세 인하 추세와는 반대로 비과세 감면 대상을 축소할 계획이며 법인세율까지 올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가 3월 발표한 조세 지출 기본 계획에 따르면 임시 투자 세액공제 등 모든 비과세 및 감면 대상의 일몰 도래 시 이를 원칙적으로 폐지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기준 비과세 및 감면 대상은 174개 항목으로 규모는 29조7,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정치권은 ‘경제 민주화’를 명분으로 이미 법인세율 인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안은 기존 22%에서 25%로 3% 포인트 인상하는 것이고 진보당안은 기존 22%에서 30%로 8% 포인트 인상하는 것이다.

 

 

일본정부 사업 환경 ‘개선’에 기업은 국내 투자 ‘화답’

우리보다 앞서 엑소더스를 겪은 선진국의 사례는 어떨까? 일본은 고비용 경영 환경이 고착되면서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움직임이 지속돼 왔다. 엔고, 높은 법인세, 과중한 인건비 부담, 엄격한 환경 규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연, 전력 수급 불안 등으로 기업 경영의 지속성이 위협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외국 기업들도 이러한 일본 내 기업 환경 악화로 아시아 핵심 거점을 일본에서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옮겼다.

하지만 최근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힘입어 기업의 설비투자가 늘고 있고 일본 내 투자가 증가세를 보이는 등 일부에서 분위기 반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이 지난해 8월 5일 발표한 ‘2013년 설비투자 계획’에 따르면 올해 전체 일본 기업들의 일본 내 설비투자는 총 15조9,454억 엔(약 180조4,54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0.3% 늘 것으로 전망됐다. 소매업과 부동산 등 비제조업 부문의 투자가 눈에 띄었다. 비제조업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10.1% 증가한 10조1,264억 엔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두 자릿수 증가율은 1991년 이후 22년 만의 처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노믹스로 최근 일본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면서 비제조업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제조업 기업들도 국내 투자로 눈길을 돌렸다. 제조업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10.6% 증가한 5조8190억 엔을 기록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법인세를 40%대에서 38%로 내렸고 2015년 35%대로 더 낮추는 등 제조업 지원에 발 벗고 나선 영향이 컸다.

일본 정부는 산업 공동화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 내 투자·사업 환경을 개선하는 등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아베노믹스는 설비투자가 활발해지면 내수가 확대되고, 중소기업을 포함한 국내 전체 경기의 호황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한편 기업 자체적으로 생산 경쟁력을 개선해 활로를 찾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국내 투자를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리는 ‘평형 직접 투자’보다 생산 과정을 여러 단계로 분할해 국내와 해외에서 분업을 실시하는 ‘수직적 직접 투자’가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가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은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가 보완 관계를 가질 수 있어 수직적 직접 투자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반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국내외 병행 투자는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작업 기간을 단축하거나 공장 무인화 등으로 인건비를 절감한 자구책을 마련했다. 신속한 납품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인 에이원정밀이나 공장 무인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이토제작소가 좋은 사례다. 또한 대기업 하청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해외에 진출하거나 기업 연합을 결성해 활로를 찾는 중소기업도 있다.

 

 

국내 투자 활성화 방안 모색에 집중해야

그렇다면 코리아 엑소더스를 막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규제가 너무 많고 성장을 방해하는 쪽으로 정책이 집중돼 있어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성장을 원하지 않으니 국내에서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U턴 정책보다 국내 투자 활성화 방안을 더 모색해야 하며 정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교수는 “창업 위주 정책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영업자 경쟁이 치열해 이윤이 낮아진 게 대기업 탓처럼 돼 버린 게 현실이다. 창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곳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해 주는 쪽으로 정책을 펴는 게 맞다”고 지적하면서 “성장 욕구를 찾아 줘야 한다. 기업이 성장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정책적 인풋보다 기업이 투자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맞춰져야 한다. 재원을 마련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지원형 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성장하도록 하는 유도형 정책이 필요하다. 노사 관계가 1순위일 것 같고 일시적 규제 완화, 투자 여력이 있는 서비스업 투자 등도 언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최근 미국 오바마 정부의 ‘자석 경제론’과 일본 ‘아베노믹스’의 예처럼 선진국들은 해외 공장의 자국 내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기업 환경 개선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우리도 기업들의 국내 복귀 지원을 위해 좋은 경영 환경을 조성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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