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Textbook I] 역사교과서 논란
[History Textbook I] 역사교과서 논란
  • 김재훈 기자
  • 승인 2013.11.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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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재훈 기자]

한국사 교과서 이념 논쟁, ‘산 넘어 산’


정치권·학계·시민사회 대립 이어 교과서 국정전환 논란까지


최근 정홍원 국무총리 등 몇몇 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단일화해 펴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 등 한국사 원로 교수들은 지난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사 교육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전체주의적 통제를 위한 전초 작업으로 해석하면서 국정교과서로 돌아갈 경우 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학계·시민사회 충돌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좌우 이념 논란이 한창이다. 정치권·학계·시민사회가 양쪽으로 갈려 특정 교과서·집필진을 ‘우 편향’ ‘좌 편향’이라고 지목하며 대립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1일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829건의 수정·보완 권고사항을 해당 출판사에 통보했다. 교육부는 늦어도 11월 중순까지 수정·보완 작업을 완료하고, 11월 말까지 8개 교과서 전시본을 각급 학교에 보내, 12월 중순까지 채택이 완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학사 측은 교육부 수정 권고를 따르기로 했지만, 교학사를 제외한 7개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이 10월 31일 623건의 자체 수정안을 공개했다. 교육부가 7종 교과서에 수정·보완을 권고한 578건과의 중복 여부에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수정하겠다는 대목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집필 이유나 근거가 있는 65건에 대해선 수용할 뜻이 없음도 분명히 했다. 7종 교과서 집필진으로 구성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협의회’는 보도자료에서 “교육부의 수정·보완 요구는 적법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며 “다만 한국사 교과서 채택과 보급이 늦어져서 교사와 학생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마음에서 자체 수정안을 냈다”고 밝혔다. 협의회가 공개한 자체 수정·보완 건수는 모두 622건으로 리베르스쿨 152건, 천재교육 103건, 비상교육 97건, 두산동아 82건, 미래엔 65건, 금성 62건, 지학사 61건 등의 순이었다.

한편, 정홍원 국무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등 몇몇 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단일화해 펴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 발행은 여러 개의 민간 출판사에서 자율적으로 교과서를 제작해 정부의 심의를 받아 펴내는 검인정 체제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를 하나의 국정교과서로 펴내자는 주장에 대해 “국가가 정한 하나의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체제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지난 1974년 시행돼 유신정권을 옹호하는 데 악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1997년부터 교육과정 논의를 거쳐 2003년 다양한 검인정 국사 교과서로 바꾸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사 교과서 논란의 내용

국사 교과서 논란의 첫 번째 초점은 사실 오류, 잘못된 표기 그리고 출처가 불분명해 신뢰할 수 없는 정보 등은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오류 및 오기가 교과서마다 수십 건에 달해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논란의 주요 쟁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선택과 평가가 교과서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역사 왜곡 논란의 시작점이 된 교학사 교과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친일 행적을 미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채택한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교육부의 권고수정·권고 명령이 내려졌다. 교육부는 우선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로 3·1 운동의 한계점을 부각한 점과 항일인사 미화 논란을 빚은 시인 최남선,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에 대한 부분을 꼽았다. 교학사 교과서는 254쪽에서 ‘3·1 운동이 갖는 한계점은 무엇이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보는 코너를 마련했지만, 교육부는 적절치 않다고 보고 ‘3·1 운동의 영향이나 의의를 묻는 질문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의견을 내놨다.

교육부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봤다. 276쪽에서 교학사 교과서는 ‘만주의 한국인’을 이승만의 저서라고 소개했지만, 교육부는 ‘만주의 한국인들’이 정확한 제목이고 일본의 만주 침략 과정을 조사한 ‘리튼 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라 이승만의 저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윌슨 대통령을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교수라고 지칭했지만 교학사는 지도교수가 아닌 총장이었다고 수정을 권고했다.

교학사 교과서 355쪽에서 ‘독도’를 ‘무인도’라고 지칭한 부분도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부는 ‘무인도’라는 표현이 일본이 주장하는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에 제시된 표현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이밖에 김일성 남북연방제 제안과 장면정부의 무능을 부각시켜 5·16을 합리화하거나 역대 정부에 대한 기술 중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부정적 표현이 많고 이명박 정부의 비판은 없다는 등의 비판도 제기됐다.

또한 교학사 교과서 탐구활동 지문에 대한 문제도 있다. ‘3·1 운동이 갖는 한계점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일제가 근대적인 시간관념을 보급하기 위해 힘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등의 질문은 자칫 친일사관이나 일제의 식민지배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의하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교학사 교과서 328쪽 탐구활동에서 제시한 이승만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지금도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자 공산당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라는 내용이다. 이어 ‘하야를 결정하면서 무엇이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근심사였는지 생각해보자’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학사 교과서의 탐구활동 내용을 본 학생들은 이승만이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꾀했다는 역사적 사실 대신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오히려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기존 한국사 교과서에는 6·25전쟁 중 북한이 남한지역을 점령했을 때 인민재판을 통한 살상 등의 내용이 빠졌으며,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도 경제발전 등 긍정적 평가는 빼고 독재라는 부정적인 평가만 강조했다”라고 말하며 검정 교과서 집필 기준에 맞춰 어떤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고 어떤 내용은 축소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다양한 교과서를 만들자는 교과서 검·인증 체제 도입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만큼 우리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념의 대립을 넘어서야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선 학교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교과서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10월 중 내년 3월 새 학기에 사용할 교과서를 채택한다. 교과서 선정은 교사들의 추천과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학교장의 선택까지 등 3단계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올해 한국사 이외 과목은 전시본 공급이 지난 9월 14일에 이뤄져 한 달가량 검토한 뒤 원만하게 채택이 이뤄졌다. 하지만 유은혜 민주당 의원이 17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 수정·보완 추진 일정(안)’을 보면 교육부는 수정심의회가 각 출판사의 수정권고 미반영 사항을 수용할 경우와 수용하지 않을 경우 2가지에 맞춰 일정을 세워놓고 있다. 수정심의회가 출판사의 미반영 사항을 받아들이면 11월 25일쯤 수정 승인을 통보하고 일선 학교에 교과서 전시본을 12월 10일쯤 배포해 12월 27일까지 교과서 선정·주문을 한다. 수정명령이 있으면 그사이 수정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한 뒤 승인하는 과정이 추가돼 12월 20일쯤 각 학교에 교과서 전시본을 공급하게 된다. 이 경우 전시본을 보고 선정·주문까지 마쳐야 하는 시간은 7일에 불과하다. 7일 동안 한국사 교사들이 모여 8종 교과서 중에 3종을 추천하고, 학교운영위에서 선정 기준·절차 등을 검토해 학교장이 확정하는 3단계를 모두 거치려면 졸속으로 교과서를 선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생각이다. 한국사 교과서가 채택 뒤에도 내년 3월까지 학습교재와 수업을 준비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역사서술은 근본적으로 역사가의 조사와 연구에 의한 주관적 요소가 개입한다. 이는 같은 사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와 학습자는 모두 역사 해석의 독단을 경계하고 다양한 관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역사 교과서 논란의 핵심은 ‘관점의 차이’가 아닌 ‘이념의 대립’에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자료들이 나와 있고 수십 년 전에는 불분명했던 일들이 지금은 확연히 드러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변화를 교과서에 반영하지 않는 이유는 편향성 탓이 크다. 교과서를 둘러싼 이념적 논쟁 때문에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이념 대립이 아닌 학생들의 역사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교과서를 쓰겠다는 사명감으로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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