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제헌헌법의 초대 기안자, 유진오
[이슈메이커] 제헌헌법의 초대 기안자, 유진오
  • 박지훈 기자
  • 승인 2018.07.24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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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지훈 기자] 

 

제헌헌법의 초대 기안자, 유진오

대한민국 헌법의 뼈대를 세우다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

2018년 7월 17일은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마련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각계 정당은 제헌절 70주년이 되기 전까지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새 헌법에 관한 정당 간 논의는 심도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상정한 개헌안은 투표까지 성립되지도 못했다. 제헌절은 국경일이나 2005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그 존재마저 미미해진 모양새다. 제헌절 70주년을 맞이해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초안을 마련한 유진오의 일생을 담아보았다. 

3·1 운동을 대한독립의 정신으로 평가한 제헌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이는 1948년 7월 12일 제정되고, 같은해 7월 17일 이승만 제헌의회 국회의장이 공포한 제헌헌법이다. 우리는 ‘제헌절’이라 하여 공포한 날을 기리고 있다.

  미국은 제임스 매디슨, 프랑스는 미셸 드 브레를 헌법의 아버지로 지칭하고 있지만, 한국 헌법의 아버지를 들어본 이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 위치에 있는, 이 글에서 소개될 인물의 인생이 한국 현대사의 논란 속에서 전개됐기 때문이리라.

  바로 그 인물은 유진오다. 제헌 헌법의 초안 작성을 요청받은 유진오는 초안을 작성했고, 이는 가다듬어져 1948년 제헌 헌법으로 공포됐다. 그가 만든 제헌헌법 안에 따르면, 삼일운동을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독립정신으로 격상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독립이 ‘단순한 연합각국의 승리와 후원의 선물이 아니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3.1정신과 같은 위대한 정신을 가지고 종시 일본제국주의와 투쟁한 결과’라고 해설했다. 이는 1987년 6공화국을 탄생시킨 현행 헌법의 모태가 됐다.

  하지만 그가 제안했던 안에서 크게 바뀐 부분도 존재했다. 유진오 안은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를 기반으로 했다. 그의 권력 구조안은 대통령제를 주장한 이승만 국회의장과 미군정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부통령제를 유지하는 헌법을 가진 것과 달리, 국무총리를 두어 내각을 통할하게 하고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의원내각제 요소가 상당하다. 이는 유진오 안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유진오가 집필한 제헌헌법 초안
유진오가 집필한 제헌헌법 초안 ⓒ국가기록원

 

좌우를 거친 시대의 풍운아

앞서 언급한대로 유진오가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낯설 수 밖에 없다. 그가 헌법의 아버지로 불릴 수 없던 이유는 그의 과거 행적 때문이기도 하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인 유진오는 좌익 경력이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 모임인 ‘경제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조선사회사정연구회’ 활동을 하고 일본제국에 붙은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노동운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국내에서 활동했던 지식인들이 그렇듯 유진오도 중일전쟁 이후 강해진 조선총독부의 좌익 탄압과 친일파 확대 정책으로 친일 행보를 걸었다. 신문에 친일적인 사상을 기고하고 각종 친일단체에 가입해 친일작품을 썼다. 이러한 친일 행적으로 인해 유진오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오르기도 했다.

  친일행적을 남긴 정치인들은 1960년대 등장한 군부 출신 권위주의 정권에 가담했다. 하지만 그는 해방 후 고려대학교 총장을 15년간 지내다 1967년 정치에 입문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두번째 도전한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고, 윤보선 신한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기도 했다. 이후 야당인 신민당에 속하며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노선을 취했다. 유진오는 비록 친일행적이 뚜렷한 인물이었지만, 민주세력의 이미지를 가져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중적 인기를 가졌다.

  과거 ‘빨간날’이었던 제헌절은 이제 기념만 할 뿐, 2005년 법정공휴일에서도 제외된 신세다. 이에 따라 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분위기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헌법은 국가의 뼈대이자, 국가 정체성을 담은 큰 그릇이다. 제헌절 7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는 정당들은 올해가 다 가기 전, 진지하고 열린 자세로 개헌안 마련에 경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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