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Ⅰ] 시행 100일, 성과 없는 장애인건강권법
[장애인의 날 Ⅰ] 시행 100일, 성과 없는 장애인건강권법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8.04.0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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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시행 100일, 성과 없는 장애인건강권법​

장애에 대한 선입견 버려야 알 수 있는 가치

 

 

 

대한민국의 총인구 중 장애를 가진 인구는 2015년 통계청 조사 기준 249만 406명이다. 이는 총인구 중 약 5%에 해당하는 수치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은 잘 조성돼있지 않다. 매번 장애인 인권이나 처우, 시설, 환경, 의료 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말뿐인 대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료의 경우 그들에게 더욱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이에 장애인건강권법 시행 100일을 맞아 실효성을 알아봤다.

입견은 장애인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한다. 

 

  일례로 일반인들은 삶에 있어 의료 서비스에 큰 비중을 둔다. 장애를 가진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이 다르다. 진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일반인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각 장애를 가진 이들은 진료를 위해 수화통역사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거나, 의사로부터 주의사항을 설명 받는 등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진료상황뿐만 아니라 수술 시 마취과정에도 수화통역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 정식으로 고용한 통역사가 아니고서는 위생 등의 문제로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현재 국내 상급종합 병원 가운데 의료수화통역사가 있는 곳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다. 서울 시내 청각장애인 수는 6만 명에 이르지만, 서울 25개 자치구 수화통역센터에 각각 배치된 공인수화통역사는 4명에 불과하다. 
 

  서울시 중랑구 수화통역센터의 김정환 센터장은 “청각장애인의 소통권 보장을 위한 수화통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필요”라며 “수술 전에 미리 어떤 약이 어떤 시점에 투약되는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상황설명을 해주고, 마취가 될 때까지 수술실에 수화통역사를 대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병원, 장애인들에게는 높은 문턱 

장애인들이 의료 서비스에서 겪는 어려움은 청각 장애뿐만이 아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이들은 검진표나 진단서 등에 있는 내용을 점자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병·의원에서는 점자 진단서나 문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기자의 친인척 중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이가 있다. 1달에 1번 읍내 병·의원에서 시력과 청각 검사를 받는데, 이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했다. 주민센터에 제출할 서류를 받기는 했지만, 무슨 내용인지, 매번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점자책을 들고 다니며 메모할 수도 없고, 간호사가 내용을 일일이 읽어줄 수도 없는 것이다. 점자 문서가 발급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2010년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는 “종합병원들이 시력 장애가 없는 사람만 읽을 수 있는 활자 크기의 종이 사본 형태로만 진료기록부를 제공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당시 해당 병원들은 진료기록부에 점자 번역이 어려운 전문 의학용어가 많고, 병원에 점자프린터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자료 발급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8년이 지난 지금(2018년 2월 기준) 인권위 권고를 받은 8개 병원 중 점자 프린터를 도입한 곳은 서울대병원 한 곳뿐이었다고 경향신문 취재팀이 보도했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본인이 원하는 때 병·의원에 가지 못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19.1%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꼽은 장애인은 4.5%였다. 특히, 자폐성 장애(33.4%), 지적 장애(27.4%), 청각 장애(17.5%)가 있는 장애인들의 경우 대부분 의사소통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응답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이처럼 장애인들이 의료 서비스에 있어 겪는 어려움을 줄이고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30일, 장애인건강권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지원, 장애인 보건관리 체계 확립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장애인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법이 ‘아직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제정 당시 대상자에 대한 기준도 모호했고, 장애인들에게 필수인 방문 진료에 대한 내용도 하위법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의료기관 접근성 보장을 위한 특별교통 수단 지원,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 의사소통 지원에 대한 부분 역시 하위법령에 빠져 있다. 때문에 제정 때부터 ‘누구를 위한 법인가’, ‘허울뿐인 행정’이라는 질타를 받았던 것이다.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 이상훈 센터장은 “법률에 시행령·시행규칙의 가이드라인이 될 만한 내용이나 기준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시행령·시행규칙 제정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인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장애인은 기본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스스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과 환경 조성은 미약하기만 하다. 장애인건강권법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의 제도 마련도 능사가 아니다. 제도권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작은 인식의 변화, 그 변화가 대한민국 5%에게 희망의 가치를 전할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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