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장려, 그에 따른 환경은 아직 미흡
출산 장려, 그에 따른 환경은 아직 미흡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3.01.28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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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을 병원 없어 이웃지역으로 원정 떠난다
[이슈메이커=남윤실 기자]

[Society Focus Ⅰ] 산모들이 애 낳기 힘든 나라

한국의 젊은 부부, 특히 맞벌이 부부들이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며 그들의 도덕적·윤리적 성향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개인 외부 환경적 원인에 의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직장 내 분위기, 고물가와 고용의 어려움, 고용의 불안정성, 여자가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는 전통과 관습 등 이 모든 것은 개인 외부의 사회적 원인인 것이다.


 

 

육아휴가제도, 직장 여성들에겐 무용지물일 뿐
직장 여성들의 출산계획에 발목을 잡는 요인 중에 하나는 일-양립을 위한 육아지원정책으로 도입되어 기대를 모았던 육아휴가제도가 별다른 정책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제도의 이용률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치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산전후휴가자 중에 육아휴직자의 비율은 2002년 16.6%에서 빠르게 증가하여 2008년에는 40% 수준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동일 기준으로 보면, 유럽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80∼90%에 달하고, 우리나라와 직장문화가 비슷한 일본도 89.7%(2007년)에 달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직장 여성들은 육아휴직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이용률은 낮은 요인으로 직장에서의 육아휴직에 대한 반감,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 육아휴직급여의 낮은 소득대체율 등을 꼽고 있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급육아휴직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에 ‘직장 내 눈치’가 51.9%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눈치보기는 무엇보다도 육아휴직제도 자체가 ‘당연한 권리이자 보편적 권리’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인력을 수급함에 어려움이 있고 휴직자의 업무를 기존의 인력이 대신 나눠서 맡기 때문에, 휴직을 원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육아휴직급여의 낮은 소득대체율 또한 육아휴직 이용율 저하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의 육아휴직급여는 통상임금의 40% 수준이고, '하한 50만원, 상한 100만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선진국의 경우, 프랑스는 100%, 스웨덴은 80%의 소득대체율과 보이고 있는데, 이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외에도,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의 연속성이 감소하여 직장 복귀 시 어려움 등이 육아휴직 이용을 기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애 낳으라고 하지만, 막상 난임시술·산후조리 나 몰라라
지난 7월 아이를 출산한 오나영(28)씨가 임신 기간 동안 정기검진에 쓴 비용은 대략 90만원이다. 초음파 검사부터 입체 초음파, 시기별 검사까지 다하면 검진 1회당 7만원가량을 병원에 지불했다. 태아의 위치가 좋지 않아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1인실을 이용해 380만원을 낸 오 씨는 산후조리원에서 350만원을 들여 2주간 받았다. 집에 와서는 80만원을 내고 2주간 산모도우미를 통한 관리를 받았다. 구에서 주는 출산장려금 10만원을 받았지만 오 씨가 출산 준비물을 제외하고 임신 기간부터 출산 후 한 달까지 들인 기본비용만 약 900만원이다.  
  애를 낳았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애를 낳고 기르는데도 경제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미숙(36)씨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경제적인 부분이죠. 첫째는 이제 놀이방을 보낼 나이가 됐지만 한 달에 식비까지 30만~40만원씩 하는 사설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어요. 일단은 내가 집에서 키우고 있지만 여유만 있다면 놀이방에 보내고 싶어요. 둘째는 한 달에 들어가는 기저귀 값만 15만원에다가 분유와 이유식을 병행하고 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또한 어린이용품은 무조건 비싸요. 일반 회사원인 남편의 월급으론 감당하기에 매우 벅차게 느껴져요”라고 토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국내 공공의료비 비중은 58.2%로 칠레(47.4%), 미국(47.7%), 멕시코(48.3%)에 이어 넷째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1.5%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2 성평등복지국가전략보고서를 통해 “현재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며, 여성의 피임과 낙태, 요실금, 산후조리 등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의료계 생존을 위해 자궁적출술, 유방절제수술, 갑상샘암 수술 등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질환에 대한 의료행위가 과다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산후조리와 여성 관련 질환까지 확대하고 유방암 의무검진 시기를 현 40세에서 30세로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자궁적출술, 유방절제술, 갑상샘암 등 빠르게 늘고 있는 여성 관련 질환과 제왕절개 분만 등을 중심으로 가이드 라인을 정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건강보험 적용 범위 확대와 함께 현행 임신과 출산 중심의 정책 방향을 임신 전을 포함한 ‘산전’으로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서 ‘출산 난민' 속출
산모들이 아이 낳을 병원을 찾아 떠돌아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이른바 ‘출산 난민’이다. 갈수록 출산율은 낮아지는데 중소도시 이하급 거주지에선 ‘애를 낳으려면 대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한탄이 나온다. 2012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는 54곳이나 된다. 2011년 이들 지역의 신생아는 1만8769명. 인근 시·군이나 대도시로 원정을 다녀야 하는 원치 않는 ‘출산 난민’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전남 해남군 등 분만 산부인과가 한 곳뿐인 시·군·구 32곳에서도 산부인과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갈수록 출산율은 낮아지는데 중소도시 이하급 거주지에선 “애를 낳으려면 대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한탄이 나온다. 지난해 11월에 출산을 한 경북 철원군에 사는 김미숙(34)씨는 산전 진찰 때마다 대구로 버스 두 번을 갈아타며 왕복 3시간이 걸려 병원에 다녔다. 김 씨는 “애를 낳았지만 철원에는 소아과가 없어 앞으로도 젖먹이를 안고 대구까지 오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분만실을 찾아 헤맸던 ‘출산 난민’ 엄마의 고행길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건양대 보건학과 나백주 교수는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의 산모들을 대상으로 임신합병증을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보다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간질, 발작 발생 위험이 2배가 높았다”며 “병원이 멀리 있어 제대로 임신부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대도시도 형편이 크게 나은 것은 아니다. 서울 등 수도권 인근에선 ‘자연분만’ 산부인과 대신 ‘보톡스 시술’과 ‘모공 관리’를 앞세운 여성의원 간판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에서 52곳의 산부인과가 개업했고 102곳이 간판을 내렸다. 전체적으로 50곳이 줄어들었다. 산부인과 전문의도 줄고 있다. 2000년 250명이던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올해 90명으로 급감했고, 이중 남자는 10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의 45%가 50세가 넘을 정도로 고령화돼 아이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야간에 분만실을 지켜야 할 30대 젊은 의사들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애를 낳은 서수지(32)씨는 “그 병원 생각만하면 끔찍해요. 다신 그 병원에 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 강북의 유명 산부인과를 이용한 서 씨는 산전 진찰 때마다 예약자가 넘치는 병원에서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진료실에 머무른 시간은 단 5분. 서 씨는 “모니터만 바라보고 앉아 기계적으로 초음파 영상을 분석해 주는 의사 앞에서 뭘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환자가 몰리는 대형 산부인과병원들은 3분 단위로 진료를 하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초음파 검진으로 수익을 낸다. 병원에서 권하는 이런저런 검사를 받다 보면 정부의 출산지원금(50만원권 바우처)이 금세 동난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산부인과 진료가 공공의료의 한 축이라는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이 고된 산부인과를 의대생들이 기피해 10년 후에는 애 받을 의사가 급감할 위기인데도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산부인과 의사와 병원이 부족하다면 분만 취약지 응급·고위험 산모들을 위한 의료 안전망이라도 촘촘해야 하는데 여전히 엉성하다. 10년 안에 우리도 일본처럼 응급 상황에 처한 임신부가 입원할 병원을 못 찾아 숨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취재/남윤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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